존 그레이 –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와 같이 여긴다

―도덕경 5장

책의 원제인 Straw Dogs는 도덕경의 저 유명한 구절을 따온 것이라 한다. 도덕경에는 각기 다른 시대에 엮어진 세 개의 유명한 판본(곽점, 백서, 왕필본)이 있는데 가장 오래된(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견된) 곽점본의 5장에는 저러한 구절이 없다. 하여, 유교의 핵심 덕목인 仁에 바로 내리꽂는 이 구절은 당시에 유가와 경쟁하던 도가 사상가들의 입장이 반영되어 가필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존 그레이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와는 별개로, 그가 이 구절을 자신의 (아마도 가장 유명한) 저서의 제목으로 한 의도를 읽는 건 어렵지 않다. 그놈의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깡그리 짓밟아 버리고 싶은 것이다. 진보의 환상, 구원의 환상과 함께.

책은 총 6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서로 큰 연관 없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디서부터 읽든 상관없을 거라고 저자 자신이 그렇게 말하지만, 한 장 한 장씩 넘어갈수록 그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생각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들에 C4를 감아 하나씩 폭파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지만, 지금 이 시대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있는 믿음에 대담하게 회의를 품는 철학자는 너무나 소중하지 아니한가. 그런 의미에서 수행자에게 무묘앙에오나 U. G. 크리슈나무르티(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리고 이 책에도 등장하는 J. 크리슈나무르티 말고)를 권하듯, 철학자, 아니 모든 이상주의자들에게 존 그레이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근래에 공부하고 또 준비하고 있는 분야가 그렇다 보니 신학과 철학의 연관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 내가 특히 음미한 부분은 기독교의 이상이 어떻게 지금까지 철학에서 유구히 이어져 왔는지에 대한 그레이의 통찰이었다. 저자의 머리말은 이 책의 입장을 여지없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어 귀찮음을 감수하고 여기에 직접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전략) 요즘 철학자들은 신학을 모르는 것을 자랑처럼 여긴다. 그래서 오늘날 탈종교적 휴머니즘의 기원이 기독교에 있다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세기 초, 프랑스 실증주의 철학자 앙리 생시몽과 오귀스트 콩트는 과학에 기반한 보편 문명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인도교The Religion of Humanity‘를 창시했다. 이는 20세기에 등장한 정치적 종교들의 원형이 되었다. 이를테면 생시몽과 콩트의 영향을 받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주의를 현대판 종교로 만들었다. 또 생시몽과 콩트가 마르크스에게 미친 영향은 ‘과학적 사회주의’로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방임laissez-faire 경제를 혹독히 비판했던 생시몽과 콩트는 20세기 말의 ‘전지구적 자유 경쟁시장’이라는 신념에도 영감을 주었다…

…휴머니즘은 구원에 대한 이 기독교 교리를 보편적 인간 해방이라는 기획으로 바꾼 것이다. 진보라는 개념은 신의 섭리에 대한 기독교적 믿음의 세속 버전인 셈이다. 고대의 다신교 철학자들 사이에 진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중략)

진보에 대한 신념이 환상이라면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 하다. 그런데 이 질문은, 인간이란 자신이 세계를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어야만 잘 살 수 있는 존재라고 가정하고 있다… 위 질문은 삶의 목적이 ‘행동’에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대 특유의 독특한 생각일 뿐이다. 플라톤에게는 관상contemplation이 인간 행위의 가장 높은 형태였다… 삶의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오늘날 이것은 위험하고 전복적인 진리다. 정치의 허황함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정치란 소박하고 일시적인 것인데, 21세기 초의 세상은 실패한 거대 유토피아들이 만든 엄청난 폐허로 뒤덮여 버렸다. 좌파가 빈사 상태가 되면서, 이번에는 우파가 유토피아적 상상의 본거지가 됐다.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전지구적 공산주의의 뒤를 이었다. 이 두 가지 비전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오싹하고, 다행히도 비현실적이다. (후략)

2011년 3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썼던 글을 이 블로그에도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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