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의 암종(癌腫) —민간군사기업의 창궐로 본 국가와 인권의 균열

[note note_color=”#f3f3ef”]아시아저널 2012년 겨울호(제6호)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의 PDF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note]

우리나라에서 민간군사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의 약자이나 언론 보도 등에서는 ‘방산업체(defense contractor)’ 등으로 완곡하게 표현되곤 한다.))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지난 7월경 안산의 한 공장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당시 공장 안에서 농성 중이던 노조원들을 사측에 고용된 용역업체의 직원들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노조원들이 무참하게 폭력을 당했다. 얼핏 보면 전경부대로 착각할 만큼 공권력에 맞먹는 수준의 인력과 장비로 무장하고서도, 우리가 공권력의 행사에 응당 요구하기 마련인 책임에 대해서는 ‘민간’에 고용되었다는 핑계로 회피하는 업체, 그리고 이를 묵과하는 정부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용산의 참사는 그나마 어디까지나 (여론 압박이나 정치적 행위를 통한) 비판과 교정이 가능한 ‘공권력(경찰)’에 의해 자행된 일이었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이후 자신의 고향인 경주시에서 19대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도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용역을 맡긴 민간업체의 일이라는 그럴싸한 핑계와 암묵적인 용인으로 대한민국은 자본의 횡포로부터 제 국민을 돌보는 데에도 실패했다.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공권력의 아웃소싱’ 또는 ‘국가의 민영화’라는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민간군사기업은 다른 어떠한 사례들보다도 이러한 현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폭력·강권력을 독점으로 행사하는 정치 결사체’라는, 국가에 대한 막스 베버의 정의를 정면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더는 폭력을 독점하지 못할 때, 국가 외의 존재가 버젓이 (심지어 일부 사례에서는 국가의 의뢰를 받아) 폭력을 행사하는 시대에,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국외의 사례

이미 이러한 경향은 국외의 경우 십여 년 전부터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언론의 주목을 가급적이면 회피하려고 하는 업계의 특성상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사건·사고 사례에 편중되어 있다. 최근의 사례로는 미국의 방송사 ABC가 10월 중순에 보도한 민간군사기업 소속 직원들의 음주 및 마약 상용 사건을 들 수 있다. 조지 사이언티픽(Jorge Scientific)이라는 업체의 내부고발자가 공개한 휴대폰 카메라 동영상에서, 업체의 직원들은 술과 마약에 취해 비틀거린다. 문제는 이들이 관광을 하러 온 게 아니라 미국 정부를 대신하여 아프가니스탄 경찰들을 훈련시키는 4,700만 달러짜리 계약을 수행하기 위해 카불에 체류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방 안에는 총기가 널브러져 있고, 몇몇은 취한 채로 총기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 위치가 알려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안전가옥의 뒷마당에서 이들은 순전히 재미를 위해 불을 피워놓고 탄약이나 소화기를 던져 넣는 짓도 종종 했다고 한다. 카불은 환락가가 번창한 도시와는 한참 거리가 먼 곳이다. 이곳에서 미국인들이 요란스럽게(소화기가 폭발하는 소리는 실제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유사하다 한다) 때늦은 총각파티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카불의 주민들과 반군 세력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그렇다고 이렇게 흥청망청 술과 마약에 절어도 될 만큼 민간군사기업이 수행하는 일이 그리 위험하지 않은가 보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10월초 이라크에서는 민간업체의 호송차량이 폭발물이 설치된 차량의 공격을 받아 네 명이 숨지고 9명 이상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노동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정부와 계약한 민간업체의 직원들 중 사망한 인원이 올해 3/4분기에만 최소 121명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 자료에 따른 것으로, 많은 부분을 비밀스럽게 처리하는 업계의 특성상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임무는 언제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협과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민간업자들의 기강 문란은 줄곧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민간군사기업의 악명을 세간에 각인시킨 사건은 2007년 9월에 있었던 바그다드의 참사였다. 블랙워터(Blackwater)라는 민간업체의 직원들이 미국 국무부의 차량 호송을 위해 도로를 정리하다가 이라크 경찰을 포함한 17명의 이라크인을 사살했다. 블랙워터의 직원들은 처음에 이들이 호송차량들을 급습하여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사살했다고 증언했으나 이라크 당국은 이를 반박했다. 이라크의 민심은 이 사건으로 급격히 악화되었고 마침내 FBI까지 동원되어 수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FBI는 17명의 사상자들 중 적어도 14명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살되었다고 결론내렸다. 이 사건으로 큰 오명을 남긴 블랙워터는 이후에 엑스이 서비스(Xe Services)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다시 아카데미(Academi)로 이름을 바꾸며 지금까지도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블랙워터는 여전히 민간군사기업의 (물론 별로 좋지 않은 의미의) 대명사로 세간의 기억에 남아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점점 더 이러한 민간업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 정부에 의해 고용된 민간업자의 수가 미군보다 더 많다. 보다 정확한 수치와 비율은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국방 전문가 모시 슈월츠의 9월 의회 증언에서 들을 수 있다. 미 국방부의 2008~2011회계연도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업자들은 약 19만 명으로, 미군의 인력 17.5만 명을 상회한다. 전체 인원의 52%가 민간업자인 것이다. 또한 미 국방부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임무를 민간업자에게 도급한 총계약액은 1,320억 달러로, 미국의 여타 정부기관들이 외부에 도급한 모든 계약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비롯한 나토군은 이미 조금씩 철군을 시작하고 있고, 2015년 전까지 모든 병력이 철수할 예정이다. 그러나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정부는 민간업자들과 5년짜리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사라진 이후에도 민간업자들은 계속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민간업자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적어도 소화기만큼은 엉뚱한 데에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둔지에서 기강 문란이나 현지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는 사실 민간군사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군은 정규군 또한 민간업자들 못지않은 전력을 자랑한다. 미군 병력이 주민들의 시체에 방뇨를 하거나 이슬람의 성경인 쿠란을 불태우는 행위를 자행한 사례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이로 인해 격분한 아프가니스탄의 군인과 경찰들이 철군을 대비하여 자신들을 훈련시켜주고 있는 미군 및 나토군 병력에게 도리어 총격을 가하는 ‘내부자 공격(green-on-blue)’ ((green-on-blue라는 명칭은 본래 나토 소속 아군간의 오인사격을 일컫는 ‘블루 온 블루(blue on blue: 나토 깃발의 색이 푸른색인 것에서 유래)’에 아프간 군의 색깔인 녹색을 빗댄 것이다.))도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모든 내부자 공격이 이것 때문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군과 미군 사이를 교란하기 위한 탈레반의 침투 사례도 일부 보고된 바 있다.))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주한미군이 저지른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여론에 불을 지핀 사례가 많다.

민간군사업체의 직원들이 기강 문란 등의 사고를 내는 경우는 많으며 이에 대한 관리 감독이 절실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민간군사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며, 민간군사업체를 둘러싼 문제의 전부도 아니다. 하지만 민간군사업체에 관한 대부분의 언론보도는 이러한 사고 사례에만 편중되어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문제의 핵심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리바이어던의 비유

토마스 홉스의 유명한 저서 <리바이어던>의 표지에는 책의 내용을 한 눈에 보여주는 삽화가 그려져 있다. 세속 권력을 상징하는 검과 종교 권력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쥔 거인의 몸통은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자연 상태를 바라보는 홉스의 시선은 매우 차갑다. 복잡다단한 인간의 욕망과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자원의 희소성을 주시했던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을 그 유명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이란 표현으로 정리한다.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은 국가라는 중앙집권적 권력에 자신의 권리를 양도해야 한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제시한 국가(군주)의 12가지 주권에는 물론 폭력의 권리 ((아홉 번째 권리로, 적절할 때 전쟁 또는 평화를 선언하고 군을 지휘할 권리이다.))도 포함된다. 이것이 근대적인 주권국가의 초석을 세운 사회계약론의 요체라 할 수 있다.

리바이어던이 출간된 1651년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평가받는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된 1648년과도 시기적으로 가깝다. 지리적인 경계(국경)를 갖고 그 내부의 일에 대해서는 타국의 간섭을 거부하는 주권국가 개념의 성립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횡포로부터 자기결정권을 보호받는 국제정치의 행위자(국가)를 탄생시켰다.

여기에 폭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국가의 개념을 보다 명징하게 덧칠한 인물은 19세기 초 프로이센의 위대한 군사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였다. 그의 역작 <전쟁론>에서 클라우제비츠는 최초로 전쟁을 국가 간의 충돌로 정의했다. 베버가 주창한 ‘폭력을 독점하는 국가’로서의 국가개념은 클라우제비츠에게서 연원한 바 크다. ((John Gray, Al Qaeda and What It Means to Be Modern, 2003, p. 72)) 그러나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폭력의 권한을 전적으로 위임받은 국가의 개념을 제시한 17세기부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을 출간한 1832년까지도 국가는 실제로 폭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지 못했다. 국가의 권능은 아직 미력했다. 런던정경대(LSE)의 교수 존 그레이는 국가가 독점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시기를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보고 있다. ((ibid., p. 72))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부터 소비에트 연합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무력분쟁은 대체로 국가 대 국가의 것이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소비에트 연합의 붕괴 이후 국제정치의 무대에서는 늘 보던 주연배우(국가)에 더하여 새로운 배우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러한 비국가 국제정치 행위자의 목록에서 크게 눈에 띄는 둘 중 하나는 알카에다와 같은 국제 테러 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서 다룰 민간군사기업이다.

민간군사기업의 역사 ((이 단락의 내용은 피터 W. 싱어의 <전쟁 대행 주식회사>의 제2장 ‘민간 군대의 역사’를 주로 참고하였다. 2003년작이지만 지금까지도 민간군사기업이 제시하는 문제를 가장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는 명저이다.))

국가가 아닌 단체가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 역사가 매우 깊다. 근현대적 국가 관념에 익숙한 우리들은 민간 부문이 전쟁을 수행하는 상황을 무척 예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렇지만 실상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오히려 ‘폭력의 독점’이라는 베버적인 국가개념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예외적이다. 앞서 말했듯, 근대적인 주권국가(sovereign state)는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에 형성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국가는 전쟁의 많은 부분을 민간 군대, 다시 말해 용병에 의존해야 했다.

보통 부족 단위로 각국의 왕실에 고용되던 용병들은 14세기가 되면 봉건 시대의 전형적인 군대 운영 방식을 대체하게 된다. 과거에는 전쟁이 발발하면 군주가 각 지역의 영주들을 소집했고, 영주들은 자신의 관할 구역의 주민들을 무장시켜 소집에 응했다. 전문적인 훈련이 부족했던 소집병에 비해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 용병 부대는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고, 이를 경험한 군주들은 서둘러 자신들의 군대를 용병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군사 기업가’라는 새롭고도 독특한 계급이 등장한다. 자비로 군대를 모집하고 무기와 장비를 갖추어 군대를 각지의 군주들에게 ‘임대’하는 기업가였다. 이들을 오늘날의 민간군사기업의 시초라고 일컬을 수 있다. 이들을 통해 자국 내에서 동원으로 인한 부담을 감수하지 않고서도 손쉽게 상당한 규모의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진 군주들은 보다 활발하게 전쟁을 벌였다. 그리하여 이들 군사 기업가들은 상당한 부를 그러모았다.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 백작의 경우, 군사 사업을 통해 유럽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고 하니 그 위세가 오늘의 민간군사기업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는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면서 용병의 전문성이 전쟁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바로 머스킷 총이다. 과거의 화승총, 석궁 등은 제대로 활용하는 데에 수년이나 걸렸던 반면, 머스킷 총은 짧은 기간의 훈련으로도 충분한 화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자국 내 국민을 징병하여 짧은 기간만 훈련시켜도 상당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전쟁 수행 이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오히려 평화시에는 골칫거리가 되는) 용병 부대에 의존할 필요가 줄게 된다. 18세기말의 나폴레옹 전쟁은 바로 이러한 추세를 보여주는 전환점이었다. 징집된 시민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혁명군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용병군을 격파한 것이다. 프로이센은 이를 경험하고는 신속하게 자국의 군대를 시민군으로 개조하였고, 시민군 모델은 순식간에 국제적인 모델이 되었다.
과거의 지배자들에게는 국민을 무장시킨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두려운 일이었다. 무기를 든 민중이 봉기한 사례는 비단 우리나라의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우려했기 때문에 군주들은 더욱 용병에 의존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시민들도 짧은 기간의 훈련으로도 용병 못지않은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사회계약론 등의 계몽주의 사상이 전파되면서 시민들의 애국심이 고취되어 시민군의 사기는 돈만을 보고 모여든 용병들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제는 장기적으로 볼 때 국내 정세 안정을 위해서도 징병을 하는 것이 용병을 고용하는 것보다 더욱 유리했다. 이를 깨달은 군주들은 이제 국민들에게 무기를 쥐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국민들에게도 일정한 권리가 주어졌다. 시민과 국가의 관계가 새로이 설정됨에 따라 각각의 시민들 또한 자국의 대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가는 징병제를 통해 용병 없이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고, 시민은 직접 무기를 들고 병무를 수행함으로써 국가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더 강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때부터 전쟁포로를 다루는 태도 또한 크게 변화하는데, 과거에는 사로잡은 포로를 재물과 교환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나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혐오스러운 것으로 바뀌게 된다. 과거에는 재물과 동격이었던 인질이 국가의 관념이 강화되면서 하나의 ‘인권’을 갖춘 국민으로 대접받기에 이른 것이다.

국가는 징병제를 통해 군대를 운영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적인 부담을 크게 지지 않고서도 대규모의 군대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용병을 부릴 경우, 모집이나 해산에 드는 비용이 상당하다. 게다가 이들은 전쟁을 수행하지 않는 동안에는 자국의 국민을 약탈하여 생계를 이어나가는 등, 정치적인 부담도 상당했다. 규모가 큰 용병단의 경우에는 심지어 고용한 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만든 사례가 역사에 남아있다. 그러한 부담을 덜게 된 새로운 국민국가는 보다 큰 규모의 군대로 더 큰 전쟁을 수행하며 그 국력을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국가의 성장, 중앙집권화는 보다 심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여러 개로 쪼개져 있던 독일의 공국들을 비롯한 소규모 국가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민간군사기업은 이러한 국민국가/주권국가의 균열 속에서 발아했다. 그 시작이 냉전의 종식, 다시 말해 소비에트 연합의 붕괴였다는 사실은 무척 역설적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심지어 ‘역사의 종말(프랜시스 후쿠야마)’를 외쳤던 일부 논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과 소련의 두 초강대국이 미묘하게 이루고 있었던 세력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면서 이들 초강대국으로부터 안보를 제공받아 왔던 국가들 또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국가’로서의 틀을 온전히 성취하지 못한, 이제 막 식민지 상태를 벗어난 아프리카의 신생 국가들과 이전부터 분쟁의 씨앗을 품고는 있었으나 소련이라는 거대한 존재의 압력으로 어느 정도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던 동유럽의 국가들이 바로 그러하였다. 민간군사기업은 아프리카와 동유럽에서 그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초기의 대표적인 민군군사기업인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Executive Outcomes)와 MPRI는 각기 아프리카와 동유럽의 분쟁지역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면서 주목을 받았다.

민간군사기업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

이미 냉전 질서가 무너지면서 국가의 기틀을 갖추지 못하고 있던 아프리카의 신생국들과 기존에 이미 분쟁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동유럽의 국가에서 민간군사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언급은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이 민간군사기업에 더욱 의존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통상적으로 국가가 강권(폭력)을 행사할 때에는 기존에 스스로에게 부과한 의무, 다시 말해 규정과 절차를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 이는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설파한 초기의 사회계약론에서도 미약하게나마 드러나는 부분이다. <리바이어던>의 2부에서 홉스는 국가(군주)의 12가지 주권을 열거하면서 “모든 (군주국의) 국민은 국가 행위의 근원(author)이므로, 국가가 하는 어떠한 일도 국민을 해할 수 없다” ((Thomas Hobbes, Leviathan, Chapter XVIII, 원문은 오레곤주립대의 웹사이트(링크)에서 참조, 번역은 필자))고 역설한다. 홉스의 주장은 다소 군주에게 편향되어 있기는 하지만 군주가 하는 행위의 근원으로 국민을 분명히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규모가 비대해지고 민주주의의 체제도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독식되는 모양새를 띠면서, 국민 전체의 이해와 정치 엘리트들의 이해가 대치될 때 정치 엘리트들은 국가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의무를 회피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것이 ‘국가의 민영화’가 우려되는 주된 이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이러한 단면을 안산에서 볼 수 있었다. 국가는 이제 자국민을 보호하는 데에도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군사 분야의 외주 도급이 활발한 미국의 경우, 여론의 압박을 의식하고 이를 회피하려는 이유로 민간업자들을 많이 활용한다. 특히 이러한 성향이 강화된 것은 클린턴 정부 시절, 소말리아에 투입된 미군이 사망하면서 급속히 악화된 여론에 시달린 이후부터였다. 군사 작전에서 민간업자를 활용하면 행여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여론의 질타를 피할 수 있다. 거의 유일한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리면서, 자의든 타의든 미국은 국제적인 안보 이슈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아프가니스탄 전쟁 같이 9/11 테러 이후 강경화된 여론을 등에 업고 수행한 전쟁이나 자국의 국익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일이라면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국익이라는 것은 언제나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정부의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적어도 외면적으로나마) 순수하게 인도주의적인 임무를 수행할 경우에는 국민들을 설득하기가 더더욱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민간군사기업의 활동에 대해 살펴보면서 알게 되는 불편한 진실 중 하나는, 유엔이 수행하는 인도주의적 사업의 많은 경우에서 유엔측 직원들의 안위를 대부분 민간업자들이 책임진다는 것이다. 어떠한 나라도 직접적인 이득이 되지 않는 인도주의적 업무 수행에 자국군의 목숨을 걸고 돕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 불편한 진실이고, 그래서 인도주의적 임무가 온전히 수행되는 데에 민간군사기업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 불편한 진실이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은 이미 국가의 균열을 비집고 들어온 민간군사기업을 무작정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군사활동이 국외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자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쪽으로 나아간 경우는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러나 군사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정보 분야의 경우 자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 있다. ‘국가의 민영화’의 폐해를 잘 보여주면서도 국내에는 아직 잘 안 알려진 민간 정보기업 스트랫포(Stratfor) ((이 회사의 본래 이름은 Strategic Forecasting이나, 약자인 Stratfor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의 사례를 살펴보자.

스트랫포는 국내에서도 몇몇 책들과 함께 잘 소개된 바 있는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이 1996년 설립한 민간 ‘씽크탱크’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씽크탱크로서의 기능보다는 국제 정세에 관련된 정보수집과 분석에 더 비중을 두어 수행한다. 스트랫포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것은 9/11 테러 이후에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분석 자료를 언론에 제공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스트랫포가 ‘그림자 CIA’라든지 ‘CIA보다 낫다’는 평을 들으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민영화가 비대한 정부조직에 효율성을 가져다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부시 정부에서, 그중에서도 특히 민영화에 대한 거의 신앙에 가까웠던 확신을 갖고 있었던 럼스펠드 국방장관 아래에서 스트랫포는 정부로부터 많은 계약을 수주할 수 있었다.

그간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이는 모든 국가의 일을 대행하는 모든 민간업자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기업의 문제점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은 바로 해킹에 의해서였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해커 집단인 어나너머스(Anonymous)는 작년말 스트랫포의 서버를 해킹하여 유료회원의 신상정보를 비롯한 내부 정보들을 훔친 다음 이를 유포했었다. 어나너머스는 이때 기업 내에서 직원들이 주고 받은 이메일 내역도 입수하였으나 이를 즉시 공개하지는 않았고 올해 2월,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했다. 이 이메일의 내용은 그 즉시 논란이 되었다.

공개된 이메일에는 정부의 위탁을 받았으나, 충분한 감시 감독을 받지 않는 민간업자들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막대한 계약금액에 비해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국방부를 비롯한 의뢰자의 당초 의도에 부합하는 결론을 일부러 내놓음으로써 애초에 민영화의 주된 이점으로 제시됐던 효율성이나 공정성을 잃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 민간 정보기업이 정부와 기업을 대리하여 민간인을 염탐하는 일도 자행했다는 사실이다. 스트랫포의 직원들은 작년부터 미국 전역을 혁명의 열기로 뜨겁게 달구었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의 운동가들을 추적하기도 했으며, 각종 사기업들의 의뢰를 받아 해당 기업의 영업에 방해가 되는 활동가들의 동향을 파악하여 보고하기도 했다.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기록되어 있는 보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활동가들을 미행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트랫포는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민간군사기업에 대한 우려: 개인과 국가

이러한 사건들은 민간군사기업에 대해 국내에서도 꾸준히 제기되어 온 우려를 다시 확인하여준다. 다시 <리바이어던>으로 돌아가 보자. “공동체를 형성하는 계약은 국민들이 스스로를 위해 행동할 권리를 국가에게 주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므로 국가는 이를 파기할 수 없다.” ((Thomas Hobbes, Leviathan, Chapter XVIII, 필자 번역. 그러나 홉스는 바로 이 다음에 “그러므로 국민은 국가의 행위를 이유로 계약에서 벗어나길 주장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국민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공동체를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국가에게 그러한 권리, 여기서는 특히 폭력의 권리를 양보하였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고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서만 폭력을 사용하여야 했다.

민간군사기업의 등장에 대한 우리의 우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미국의 스트랫포 사건과 우리가 안산의 한 공장에서 목도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주권국가가 형성된 기반이 된 ‘계약’을 저버리고 국민을, 그리고 인권을 위기에 빠트렸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통상적인 국가의 권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국제정치에 혼란의 파문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민간군사기업의 등장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자.

조셉 드 메스트르는 일찍이 “국가의 탄생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원시 시대부터 가장 발달된 문명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쟁은 항상 발견된다” ((Joseph de Maistre, Considerations on France, Chapter III, 번역은 필자. 원문 출처: 링크))며 전쟁의 항구성을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총기의 개선)하면서 전쟁이 변화(용병 전문성의 쇠퇴)하였고, 전쟁이 변화하면서 정치 또한 변화(징병제 실시,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하였다. 다소 과장된 언명이 될지 모르나 결국 근대적인 시민주권, 국민국가 개념의 기반을 만든 것은 이러한 전쟁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전쟁포로를 다루는 입장의 변화에서도 읽을 수 있듯, ‘인권’ 개념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전쟁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국가’와 인권을 지닌 ‘개인’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긴밀하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개인과 인권의 개념을 확립한 것은 계몽주의 사상의 확산이지만 이를 유지하고 보호한 것은 징병제를 통해 국가 상비군을 확립한 근대 국가였다. 어떠한 논자들은 국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을 말하지만 적어도 근현대 국가를 형성한 기반이 되는 사회계약론과 현실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의 ‘개인’은 국가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과연 국가가 해체되면 개인은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

개인은 언제나 불안하다. 사물화되고 파편화된 삶 속에서 마주치는 타인이 불안하고, 이제는 손이 닿기 어려울 정도로 비대해진 리바이어던이 불안하다.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끈 <테이큰>이나 <아저씨> 같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도저히 영화에서만 가능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초인적인 체력과 전투력으로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모든 타인들을 제압한다. 이를 개인의 무력감과 불안감의 한 표현이라고도 읽을 수 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기억상실로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을 노리는 국가권력과 싸워야 한다. 심지어 대영제국의 빛나는 권능의 상징이었던 제임스 본드마저도 근래의 시리즈에서는 국가 내부의 적과 원인을 모르는 투쟁을 시작했다. ((영화 본 시리즈와 007 시리즈를 통해 개인과 국가의 상보적인 관계를 조명하는 것은 전적으로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에서 자기계발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이원석 씨의 착상이다. 이 글의 전반적인 논점 또한 그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여기서 언급한 모든 영화의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능력의 배경에 하나같이 국가가 있다 ((<테이큰>의 주인공(리엄 니슨 분)은 미국의 정보요원 출신이고, <아저씨>의 주인공(원빈 분)은 정보사 소속의 특수부대원 출신이다.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 또한 국가의 정보요원 출신이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다 과감하게 언명하건대, 개인이 주권을 가질 수 있는 배경에는 국가가 있었다. 국가가 없이는 오늘날과 같은 개인도 없었다.

알카에다와 블랙워터: 리바이어던의 암종

이미 알카에다와 민간군사기업 같은 비국가 국제정치 행위자가 창궐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소련이 붕괴하면서 국제정치의 균형이 흐트러졌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서는 국가에 비해 극히 소규모에 불과한, 그래서 과거에는 무시해도 충분했던 행위자들이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갖고 있는 중량감을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다.

이미 역사 속에서 용병이 자신의 전문성으로 누리던 이점을 꺾어버린 적 있는 기술의 발달은 이제 소규모의 조직으로도 국가 못지않은 물리력과 조직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알카에다는 위성전화와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조직을 전세계적으로 확장시켜 왔으며, 첨단 기술의 산물 중 하나인 여객기와 대중매체를 활용하여 테러 행위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동유럽과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민간군사기업을 보고 군침을 흘렸던 이유에는 민간군사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갖가지 첨단 기술이 있다. 단지 정교하고 파괴적인 무기나 빠르고 안전한 이동수단 뿐만이 아니다. 그 조직구조와 그에 걸맞은 군인을 훈련해 내는 기법 또한 기술이다.

기술의 발달은 초국적인 자본 또한 탄생시켰다. 이미 국제금융시장은 국가의 통제권을 벗어난 지 오래다. 또다시 세계를 당혹시켰던 지난 7월의 리보 금리 조작 사건은 이러한 실태를 반영하고 있다. 2008년의 금융 위기의 주범이었던 모기지 파생상품의 관리 부실은 심지어 이 복잡한 금융공학을 설계한 장본인들조차도 이 체제를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자본의 세계화, 초국가화는 민간군사기업들이 보다 다양한 조건으로 더 많은 ‘고객’들을 상대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과거의 용병 부대를 떠올려 보자. 만일 어느 봉건 군주가 아직 채굴을 시작하지 못한 금광을 줄 테니 인접국을 침략하는 데 힘을 보태어 달라고 요구했다면, 과연 일개 부족 단위의 용병이 이를 수용할 수 있었을까? 좀 더 기업화한 17세기의 군사 기업가 폰 발렌슈타인이라면 조금 고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1세기의 민간군사기업에게는 아무런 고민할 필요가 없다. 많은 민간군사기업이 거대 다국적 기업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다. 이들 모기업은 오히려 이러한 조건을 반기며 적극 계약에 응할 것이다. 과거에는 즉각 수용할 수 있는 현물을 내걸지 않는 이상 성립하기가 어려웠던 계약의 경우에도, 각종 금융기법들이 발달하고 거대한 다국적 기업이 여러 사업 부문의 선단들을 거느리는 오늘날에는 충분히 수익성 있는 사업이 될 수 있다.

이는 오늘날의 테러조직들이 번성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알카에다는 세계화로 인한 초국적 자본의 이동으로 인해 제 구실을 못하게 된 중동과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세계화로 꽃피운 국제적인 마약 거래 네트워크는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같은 단체들의 재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들이 정규군 수준의 장비를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민간군사기업을 살펴보면서 깨닫게 되는 최후의 역설은 바로 민간군사기업이 일반 상비군에 비해 누리는 모든 이점이 바로 국가에서 나온다는 데에 있다. 노동력, 전문성, 기술력을 비롯한 모든 점에서 그러하다. 민간군사기업의 직원이 일반 군인에 비해서 훨씬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해당 직원들이 모두 전직 군인으로서 충분한 경험과 전문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전문성은 모두 국가의 군인으로서 복무하면서 얻은 것들이다. 훈련과 실전 경험 습득에 드는 모든 비용을 고려해 보면 오히려 민간군사기업은 헐값에 인력을 부린다고 말할 수 있다. 민간군사기업이 보유한 기술력 또한 각국의 정부들이 열심히 방위산업에 예산을 쏟아 부은 결과나 다름없다.

알카에다와 블랙워터로 대표되는 비국가 국제정치 행위자들이 국가로 대표되는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은 적어도 당분간은 없을 것이다. 이미 국가는 이들 행위자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책 등도 논의되고 있다. 균열이 가기 시작한 국민과 국가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균열이 더해질 경우 민중은 다시금 이에 저항을 시도할 것이다. 헤겔이 찬탄해 마지않았던 국가의 이상이 이토록 쉽게 무너질 성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이 한계를 모르고 팽창과 축적을 거듭하여 온 국가라는 이름의 리바이어던이 앓게 된 암세포와 같다는 사실은 앞으로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것이다. 징병제를 통해 상비군을 확보한 근대 국가는 양적으로 팽창을 거듭할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이라는 고비를 거친 후 국가는 냉전 시대의 군비 경쟁을 통해 기술과 자본 또한 신속하게 축적했다. 그랬던 국가가 이제는 스스로가 축적해 온 기술과 자본에 의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는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확장을 계속하면서 결국 모체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암세포와 닮았다. 이반 일리치는 현대 산업사회에 대해 ‘대응-생산성(counterproductivity)’라는 흥미로운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학교가 오히려 무지를 양산하고, 병원이 오히려 질병을 만들어 내며, 사법제도가 오히려 불의를 영속화시키는 역설을 표현한 것이다. 일리치는 분별없는 성장이 가져올 병폐를 미리 꿰뚫어 보았다.

이미 성취한 팽창은 쉽게 돌이킬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기는 쉬워도 다시 돌아오기란 어렵다. 우리 사회는 지금껏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여 얻은 번영과 그에 뒤따르는 후폭풍을 안팎으로 맞이하고 있다. 이제 성장과 팽창의 신화에서 눈을 돌려 우리가 처한 현실과 역사의 교훈을 비판적으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아프리카나 동유럽의 국가처럼 허약한 국가를 모국으로 삼고 있지 않으며, 수십 년간 효율적으로 살상을 수행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3, 40대의 전직 군인들이 제2의 삶을 힘겹게 도모하고 있는 미국과도 다르다. 그러나 민간군사기업의 존재는 우리에게도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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