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소셜 네트워크에서 때 아닌 냉장고 바람을 일으켰던 강신주의 칼럼을 기억하는가(이에 대한 나의 오마쥬도 있다). 많은 비아냥을 듣기는 했지만 ‘냉장고’는 썩 괜찮은 상징이었다. 음식물을 냉장(냉동)하여 자연 상태보다 훨씬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되자 ‘자연스럽지 않은’ 축적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것이 병폐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병폐
‘축적’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만든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열심히 부어댄 적금에 약간의 욕심을 더해 빚을 내어 겨우 집을 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IMF 시절과 같은 큰 경기침체가 일어났다. 빚을 제때 갚지 못해 결국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그간 돈자루를 틀어쥐고 있던 알부자 한 분께서 내가 치른 금액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집을 가져간다.
왜 똑같은 경기침체를 맞았는데 이렇게 불평등하게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는 걸까? 한 쪽이 화폐를 더 많이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우, 화폐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이는 침체기에 자본을 헐값으로 사들일 수 있는데,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충분한 화폐를 보유하고 있지 못한 서민들이다.
문제는 화폐에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한번 ‘화폐’의 개념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보자. 세상의 모든 재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떨어진다. 유일한 예외는 화폐다. ((토지도 있긴 하지만 이건 또 색다른 예외이다)) 결국 모두가 재화 대신 화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100만 원짜리 쌀 한 포대와 100만 원 지폐 중에 당신은 무엇을 선호하겠는가?
문제는 이것이 시장 자본주의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결국 재화가 시장에서 꾸준히 교환되어야 발전하고 유지될 수 있는 체제이다. 그런데 모두가 재화가 아닌 화폐만을 보유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시장에서의 교환은 줄어들 것이고, 결국 경기침체가 반복된다.
화폐의 감가상각을 주장한 실비오 게젤
자본주의의 병폐의 근원으로 바로 이 화폐를 지목하고, 화폐 또한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값어치가 떨어져야 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펼친 사람이 있다. 바로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독일의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이다. 게젤은 본래 아르헨티나에서 상업을 하던 사업가였으나, 아르헨티나를 강타한 대공황으로 사업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경기침체와 통화제도의 상관관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다.
게젤은 1916년에 자신의 화폐 및 토지 이론을 정리하여 <자연 경제 질서>라는 저서를 발표한다. 그의 토지 이론은 헨리 조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었지만 화폐 이론은 매우 독창적이었다. 게젤의 화폐 이론은 경제학의 거인 중 하나인 존 메이너드 케인즈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의 <일반 이론>을 읽어보면 케인즈가 한 챕터를 할애하여 게젤을 소개하는 부분을 볼 수 있다. 케인즈가 경제학에 공헌한 것들 중 하나인 화폐유동성 개념에서 게젤의 영향을 짙게 느낄 수 있다. ((케인즈가 게젤을 표절했다는 주장도 있다))
게젤의 화폐론
게젤이 저서에서 제안한 대안은 구체적이다. 100달러 지폐를 예로 들면, 1월 1일에는 정확히 100달러이지만, 일 주일이 지날 때마다 10센트 짜리의 인지를 사서 지폐에 부착하여야 100달러의 값어치를 유지할 수 있다. 한 해가 다 지나가면 5.20달러를 추가로 지불해야 100달러의 값어치를 유지하게 된다. 화폐가 연간 5.2% 감가상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화폐 제도(게젤은 이 화폐를 자유화폐freigeld라고 일컬었다)가 정착되면 정부 당국은 통화량 조절만 하는 것으로 모든 경제 정책을 대신할 수 있다. 통화량 조절 또한 간단하다. 통화량 증대를 위해서는 화폐를 더 발행하면 되고, 감소를 위해서는 가만히 있거나 증세를 하면 된다.
왜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지금 우리 경제체제에는 통하지 않을까? 정부가 아무리 통화량을 늘리고 세금을 깎아도, 대기업들은 돈을 풀지 않는다는 기사를 자주 접했을 것이다. 돈을 쓰지 않고 축적하고 있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다른 재화들은 가지고 있으면 가치가 떨어지지만 돈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
화폐는 어디까지나 시장에서의 재화의 교환을 용이하게 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 시장경제가 화폐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이것 뿐이다. 그런데 화폐의 자연스럽지 않은 특징 하나가 화폐를 교환의 매개로 활용하는 것보다 부의 축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게 만들었다. 시장에서의 교환을 촉진시키기 위해 만든 화폐가 오히려 교환을 방해하는 모순이 생겨난 것이다.
게젤의 화폐 개혁은 어떤 변화로 이어지나
화폐는 현행 시장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이다. 화폐의 성격이 변하면 시장경제 자체도 급격히 변할 수밖에 없다. 게젤은 자신의 저서에서 자신이 제안한 화폐제도가 도입될 경우 시장경제가 어떻게 변하게 될 지를 자세하게 서술했는데 그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
이자가 사라진다. 러시앤캐시 무이자 행사 이야기가 아니다. 게젤은 이자의 근원을 독특하게 규정한다. 화폐는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재화에 비해 (부당한) 우월함을 갖고 있으며, 화폐의 보유자가 그 우위를 이용하여 ‘삥’을 뜯는 것이 바로 이자라고 말한다. 화폐가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이제 삥을 뜯기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다고 저축과 대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 가치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다면 이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내 수중에 있는 100만 원은 1년이 지나면 95만 원이 되지만 이것을 은행에 예치하거나 친구에게 빌려주면 1년 후에도 100만 원 그대로로 돌려받을 수 있다. 이제 은행은 물론이고 개인들도 앞다투어 (이자 없이도) 대출을 해주려 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로 이어지는데, 바로…
임대료가 사라진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임대료, 경제학에서는 지대(rent)라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되는 이것은 따져보면 ‘자본에 대한 이자’와 같다. 다른 사람들은 보유하지 못한 ‘자본(빌딩, 공장 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에 대한 사용료를 받는 셈이다. 그런데 대체 이 ‘자본이자’라는 것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게젤은 여기서 또다시 매우 독창적인 주장을 펼친다. 자본이자 또한 화폐이자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돈을 가지고 있으면 매년 5% 가량 ((게젤은 화폐가 ‘갈취’하는 이자가 역사적으로 평균 4~5% 정도라는 결론을 내렸다))의 이자를 얻을 수 있는데, 빌딩(자본)을 지어서 얻을 수 있는 임대료 수익이 그보다 적다면 누구도 자본을 건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화폐제도 아래서는 자본(빌딩, 공장, 아파트 등)의 공급 수량이 임대료로 화폐이자 수준의 수익을 낼 수 있을 수준으로만 제한된다.
그렇다면 이자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자본에 대한 투자도 (저축과 마찬가지로) 처음에 투자한 돈을 나중에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될 때까지 확장된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월세를 아예 안 내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관리비와 건물의 감가상각비 등 기본적인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는 뜻이다.
공황이 사라진다. 공황이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주택, 주식 따위를 차라리 팔고 현금을 보유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모든 보유자, 투자자들에게 확산될 때 발생한다. 모두가 닥치는대로 주식을 팔아치우고 현금을 보유하려고 하면 주식 시장은 공황에 빠진다. 주택 시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현금은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화폐제도에 따라 투자자들은 똑같은 악재를 만날 경우에도 상반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현행 화폐제도 아래에서는 시장에서 불안한 기색이 보인다거나 나쁜 소문이 돌게 되면 쉽게 현금 보유를 선택할 수 있다. 적어도 현금은 그 가치 자체가 떨어져서 손해를 입히지는 않을 거니까. 그러나 만약 현금 보유를 해도 가치가 떨어지는 걸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공황이 일어나듯 히스테릭한 반응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어차피 현금도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투기가 사라진다. 투기꾼(자본가)들의 사업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사고 또는 악성 루머가 발생하기를 기다렸다가(가끔 직접 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시장이 공황에 빠지면 헐값으로 서민들이 내던진 자산들을 사모은다. 공황이 회복되고 시장 가격이 돌아오면 다시 이를 조금씩 팔아치운다.
화폐의 개혁으로 시장경제가 안정되면 공황을 틈타 부의 ‘부당한 재분배’를 노리는 록펠러와 모건 같은 소인배 ((실제로 게젤은 저서에서 이러한 투기꾼의 전형으로 록펠러와 모건을 언급한다))들이 설칠 공간이 없어지게 된다. 지대, 임대료 등으로 일하지 않고 소득을 챙기는 불로소득자들이 설 공간도 없어지게 된다. 프롤레타리아들도 (임대료와 공황으로 돈을 날리는 대신) 스스로의 자본을 건설할 수 있고, 모든 기득권을 타파하고 오로지 능력 본위로 자유 경쟁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게젤의 이상이었다.
게젤 경제학의 의의와 한계
경제학의 역사에서 게젤이 점하는 위치는 매우 기묘하다. 현행 자본주의 경제제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경제 문제의 근원이 이자(화폐)에 있다는 것을 간과한 마르크스의 대안은 제대로 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게젤은 시장의 자율성과 경쟁의 필요성을 신봉하면서도 화폐로 대변되는 기득권을 철저히 혁파하여 민중의 삶이 개선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게젤의 제안은 너무나 급진적이다. 지금껏 게젤의 이름이 묻혀 온 이유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도 각기 다른 경로로 게젤과 유사한 통찰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발도르프 교육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루돌프 슈타이너는 자신의 강의에서 소멸하는 화폐 개념을 제시한 바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전통에 있는 미할 칼레츠키는 이자율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게젤과 유사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다.
좌우파 어느 쪽과도 온전하게 맞물리지 않는 게젤의 사상은 앞으로도 줄곧 무시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근래에는 (특히 일본의) 대안(지역)화폐 운동가들 사이에서 게젤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도 이런 측면에서 게젤을 바라본 글을 수 년 전 시사인에 기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게젤의 화폐론이 지역화폐와 온전히 양립하는 것은 아니다. 폐쇄되지 않은 공동체들 사이에서 일부 공동체만 화폐 개혁을 할 경우, 무역으로 인한 외부 공동체의 영향을 받아 개혁이 무위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게젤은 철저한 자유무역의 신봉자였다. 하지만 게젤의 이론이 실제로 빛을 볼 수 있을 가능성은 김종철 선생이 인용하는 오스트리아의 한 소도시의 경우와 같은 지역화폐에서나 찾을 수 있을 듯하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