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와 냉장고, 김정운과 강신주

자신의 견해, 글이 인정을 받고 널리 청중을 확보하게 되면 가속이 붙는다. 그리고 때로는 그 가속에 취해서 선을 넘기도 한다. 선이란 것은 특별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듣고 적어도 고개를 주억거릴 수는 있는 범위를 넘어버리는 것이다.

선을 넘는 것이 틀렸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강신주의 유명한 ‘냉장고’ 글은 비록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글이기는 하지만, 냉장고라는 비유 자체는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강신주는 그 냉장고를 타고 사람들의 공감의 ‘마지노 선’을 넘어버렸다.

Maginot Line
Maginot Line

 

이런 선을 두고 ‘냉장고 선’이라고 일컬어도 좋을 것이다. 김정운 소장의 이 글(‘뒤로 자빠지는 의자’를 사야 한다!)도 냉장고 선을 넘었다.

스마트폰을 매개로 하는 상호작용으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이 황량한 ‘장소 상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ㅋㅋㅋㅋ’ ‘ㅎㅎㅎㅎ’를 죽어라 반복하고, 각종 심란한 이모티콘을 제아무리 화려하게 구사해도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결코 시공간적 구체성을 가진 ‘장소(place)’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소에 대한 감각이나 경험은 기술로 인해 꾸준히 바뀌어 왔다. 우리가 보는 잿빛 도시의 거리는 20세기 초의 시인이 바람이 택시처럼 거리를 쏘다닌다고 찬양했던 ((그런데 이 시인이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리저리 검색어를 만들어 넣어봐도 알 수가 없다. 기억하시는 분의 제보를 기다린다.)) 그 도시의 거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너무 타박을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논의를 위해 하나의 비유물을 들었으며, 그것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쉬이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것이 강신주의 냉장고와 매우 닮았다:

의자를 사야 한다! 뒤로 약간 자빠지듯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그런 의자를 사야 한다. 의자야말로 ‘공간’을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드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쪽 팔로 턱을 괴고 기품 있게 사색하거나, 턱을 만지작거리며 우아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세 나오는’ 의자여야 한다. 의자는 성찰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맞은편 사람을 그윽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폼 나는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 따위를 만지작거리는 일은 정말 없어야 한다.

(근데 이 양반은 왜 이렇게 스마트폰을 싫어하는 것일까? 아이폰 액정이 깨져 애플 서비스 센터를 방문하기라도 한 것일까?)

냉장고와 의자. 의외로 잘 어올리는 조합이다.
냉장고와 의자. 의외로 잘 어올리는 조합이다.

 

그런데 ‘뒤로 자빠지는 의자’와 책만 있으면 사이버스페이스의 무저갱에 잠식당하고 있는 ‘장소(place)’의 복원이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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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올라올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읽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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