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개론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살면서 읽었던 것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으레 이걸 내민다.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국개론‘이란 담론(?)의 서두에 나오는 구절이다:

일본에 무사도가 있는 이유는
쪽바리들이 다 겁쟁이라서 그렇다.
영국에 페어플레이정신이 있는 이유는
그색기들은 선천적으로 교활한 색기들이라서 그렇다.
중국에서 공자가 학문과 예를 설파한 이유는
짱깨들이 존나 무식하고 무례하기 때문이고
미국이 맨날 세계평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색기들이 완전 호전적인 개사이코 전투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우는 이유도 알 수 있겠지?

국개론은 무엇인가?

물론 나에게 감명을 주었던 것은 이 글이 주장하는 단견이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이 예시를 하는 방식은 내가 느끼고 있던 것을 분명하게 해주었다.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앉아서 오가는 말들을 귀기울여 들어보기도 했고, 도를 닦겠다고 도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내가 그런 경험을 통해서 느낀 것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느니 하는 흔한 표현보다 더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다는 정도로는, 비록 지금 이 사람이 행하는 것에 비해 아는 것이 더 많아 불충분하게 보일 수 있어도 앞으로 지행일치에 노력하면 훌륭하게 될 수 있다는 느낌 정도만 전할 뿐이다. 되려 나는 아는 것(또는 알고자 하는 것)이 인간을 더 저열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도를 닦는다더니 누가 장난을 걸자 커터칼을 빼들며 광분하던 사람. 자아를 깨야 한다고 늘 사람들 앞에서 되뇌이곤 했지만 누군가 자신의 생활 방식이나 견해에 조금이라도 공박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정색하며 언성을 높이던 사람.

무언가를 소리 높여 외치는 행위야말로 자신에게 그것이 결여되어 있음을 가장 잘 입증하는 방법이다. 가장 도덕과 멀어 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말했다. 집권 성공 원인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과거’와 가장 깊이 얽혀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족적에는 ‘미래(한국미래연합, 미래희망연대, 국가미래연구원, 미래창조과학부)’가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크게 외치지 않는 사람, 어릴 적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따분하고 비루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을 존중하게 되었다. 이는 닻과도 같다. 자신이 얼마나 용렬해질 수 있는지를 헤아려 보지 않으면, 켜켜이 스스로를 반성해보지 않으면, 어떤 나락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나는 이미 충분히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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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올라올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읽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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