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공식적으로 발족하기 전인 2월 27일, 대안언론 운영자들 몇몇을 모아 간담회 비스므리한 것을 가진 적이 있다. 간담회에 특별한 주제가 따로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 언론에서 혁신이란 것이 가능한지로 흘렀다. 내가 했던 (그리고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1. 시장의 왜곡
언론의 혁신을 언론 자체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언론 시장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일대일’로 거래를 하지 않는 독특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뉴스를 생산하여 독자들에게 제공하지만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독자가 아니다. 열에 아홉은 광고라는 형태로 제3자가 비용을 대리 지불한다.
따라서 시장에 왜곡이 발생하기 쉽다.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시장이라면 소비자의 수요는 생산자의 공급에 빠르고 정확하게 영향을 끼쳐야 한다. 그러나 언론 시장에서 소비자의 수요는 생산자에게 바로 전달되지 않는다. 돈을 주는 사람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돈을 주는 사람(광고주)이 뭐라고 하지 않으면 생산자는 굳이 뭔가를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2. 역동성이 부족한 시장
그나마 광고 시장이 역동적이라면 소비자의 선호 변화 등을 세심히 추적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그리하여 소비자의 신호가 생산자에게도 어느 정도 전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광고 시장은 역동적이지 않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해 광고 시장 크기도 작고 그 시장마저도 왜곡돼 있는 편이다. 미국의 경우 산업이나 경제 집중도가 분산돼 있지 않나. 플로리다를 가도 큰 기업 있고 텍사스에 가도 큰 기업이 있다. 광고 시장, 경제의 절대 규모로 인해 뉴스 스타트업에 기회들이 있는 것 같다. 반면 한국은 광고 시장에서 10대 재벌의 점유율이 대략 절반이 넘지 않나. 매출의 원천이 협소하다. 그런 환경을 아는 투자자들이 새로운 미디어가 나온다더라도 지속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대표,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광고 시장 또한 그 나라의 시장 전반의 상태를 반영한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결국 ‘굳이 광고가 필요없는’ 대한민국의 시장 구조가 원인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파고 들려면 우리나라 시장 전반에 만연해 있는 독과점 구조를 파헤쳐야 할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수퍼볼 광고에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했다는 게 뉴스가 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그런 소식을 찾을 수가 없다. 어차피 시장이 독과점인데 굳이 광고에 그런 돈을 쓸 필요가 없다.
이러한 시장 구조에서 (대)기업의 홍보 부서의 주요 업무는 (주요)언론 관리하기가 된다. ‘홍보’에서 Public Relation은 찾기 힘들고 Media Relation(그리고 Government Relation)만 득실댄다. 언론과 광고, 그리고 산업에 만연한 독과점 체제가 서로 결탁하는 것이다.
—광고와 매체, 본 블로그
대한민국에 만연해 있는 독과점 구조가 단박에 해체될 리 만무하고, 결국 광고 시장도 대세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언론 시장에서 혁신이 일어나기는 어렵다.
3. 작은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나는 광고를 경유하지 않는 (보다 ‘직접적’)인 생산자-소비자 관계가 생겨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광고 시장에서의 틈새를 공략하는 것이다.
첫째의 경우는 현재의 방식에 (컨텐츠를 무료로 이용하는 대신 광고를 보는) 익숙한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소수의, 매우 의식화(?!)된 독자들을 필요로 한다. 국민TV를 예로 들 수 있다.
나는 둘째의 경우를 주목한다. 어차피 대기업 위주 독과점 시장에서 활로는 여기밖에 없다. 문제는 대체 어디에 틈새가 있느냐는 것이다. 광고 시장에서의 틈새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광고 방식 자체에서의 틈새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개발이 되지 못했던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방식 자체의 틈새는 요새 네이티브 애드라는 이름으로 이런 저런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새로운 시장 개척은 기존에 광고를 하기가 애매했던 곳들을 저렴한 가격과 정확한 타게팅 등을 내세워서 공략을 해야 할 것이다. 사실 내가 ㅍㅍㅅㅅ에 몸 담고 있을 적에 주목했던 곳은 도서 시장이었다. 일간지 광고는 너무 비싸서 중소 출판사들에게는 힘들고, ㅍㅍㅅㅅ는 도서에 관심이 많은 독자층이 두터웠다.
4. 결론
소비자들은 기존 언론에 대해 염증을 느끼다 못해 이미 신물을 내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쉽게 바뀌기 어려운 것은 언론 시장이 광고주(그리고 결국 산업 전반)가 얽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직접 언론사에 비용을 지급하는 해법은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의식구조가 바뀔 것을 필요로 하는 까다로운 해법이다. 광고 시장의 새로운 틈새를 찾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리라.
물론 이러한 해법은 기성언론이 실행하기에는 무리다. 파이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작은 파이들을 여러 개 야금야금 먹는 전략을 실행하려면 몸집부터가 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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