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코 브라헤의 수상한 사인(死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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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note_color=”#f3f3ef”]2012년 4월 19일에 이글루스 블로그에 썼던 글을 약간 수정하여 올립니다.[/note]

어릴 적에 보았던 교육 애니메이션(틀림없이 일제를 우리말로 더빙한 것이었다)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다루면서 튀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케플러가 갈릴레이의 선구자격인 천문학자라 언급했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항상 케플러가 갈릴레이보다 앞선 세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동시대인이더라.

당시에 본 교육 애니에서는 ‘티코’ 브라헤라고 언급한 튀코 브라헤는, 사실 케플러나 갈릴레이에 비하면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은데 그 귀여운(?) 이름 때문에 내 기억에 희미하게나마 계속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내가 대학 다닐 때의 작은 사건 하나로 보다 크게 증폭되어 영원히 내 기억 한 구석에 자리하게 된다.

소문난 책벌레(물론 그 소문의 진원지는 나다)답게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나는, 그 책에서 튀코 브라헤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어느 왕이 주최한 연회에서 오줌이 마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예의범절(이라 쓰고 ‘가오’라 읽는다)을 중시하여 끝까지 화장실을 안 갔던 브라헤는 결국 요독증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대의 학문적 거인의 최후로서는 얼마나 안타까운 죽음인가…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나의 기억 속에 작은 사당을 세워두고 거기에 튀코 브라헤를 모신 다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며 그를 기리겠노라 다짐하였다.

(방광에 관련된 재미있는 심리학 연구도 있다. 오줌이 마려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기절제에 강하다는 황당해 보이는 결과. 여기에 대해서는 예전에 소개한 내 옛날 블로그 글이 있다)

근래 끄적이는 글에서 케플러를 다룰 일이 있어 케플러에 대해 읽다가 문득 궁금해져 튀코 브라헤에 대한 위키피디아 항목을 좀 읽어보았다. 다른 건 다 건너뛰고 死因만 보았다. 사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예이츠가 원숭이 고환을 이식했었다는 이야기처럼 사실무근인 것일까봐… (튀코 형, 미안 ㅋ)

하지만 역시 우리 튀코 형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날짜도 명확하다. 프라하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하고서 그 11일 후인 1601년 10월 24일에 방광 또는 콩팥의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케플러의 증언(바로 이 이야기가 케플러에게서 연유한 것이었다!)에 따르면, 그는 연회 중에 자리를 뜨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고 나서부터 더는 오줌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극심한 고통과 함께 미량의 오줌만 눌 수 있었다고. (이렇게 쓰는 지금, 내 오금이 저린다)

기록에 따르면 자신의 묘비명을 “현자처럼 살고 바보처럼 죽었노라”라고 쓴 것은 브라헤 본인이라고 한다. (음, 전자에 대해는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아마도 만장일치로 동의하지 않을까…) 당시의 의사는 사인을 신장결석이라고 진단했지만, 1901년에 실시한 부검에서는 신장결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는 요독증으로 인한 죽음이라고 보고 있는 것. 그런데 300년이 지나서도 이런 부검을 하는 것을 보면 역시 튀코 형의 죽음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다른 학설(?)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그의 콧수염에서 치사량의 수은이 발견된 것. 그래서 수은중독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브라헤도 (당연히) 연금술사였으니 금속들을 다루면서 수은을 많이 흡입했을 수도 있고, 그가 착용했던 수많은 인공 코 ((“덴마크의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년)는 코가 없었다. 그의 코는 1566년에 덴마크의 귀족 만데루프 파르스베르그(Manderup Parsberg)의 날카로운 칼에 잘려 나갔다.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의 수학 실력이 더 좋다고 우기던 끝에 벌어진 일이었던 것 같다. 당시 19세였던 브라헤는 그 후 금과 은으로 코를 만들어 달았는데, 1601년에 죽을 때가지 이 코를 잘 썼다.” —마크 뷰캐넌, <사회적 원자> (h/t: grumbule) )) 의 원료인 금속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프라하 시청에서는 2010년에 덴마크와 체코 연구가들에게 연구용 샘플을 가져갈 수 있다는 허가를 내주었고, 그래서 연구자들이 뼈와 털, 그리고 옷의 샘플을 가져갔다고 한다. 역시 범상치 않은 죽음이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심지어 케플러가 브라헤의 연구실과 화학약품들을 노리고 스승을 독살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나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4세가 브라헤가 자신의 어머니와 불륜 관계라는 소문에 격노하여 브라헤의 사촌인 에릭 브라헤를 사주하여 독살했다는 가설도 있다. 여튼 남다른 죽음은 4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 남다른 관심을 불러 모은다.

(참고: 11 Craziest Tycho Brahe Moments—이 글에 쓸 사진을 찾다가 이 글을 발견했다. 역시 튀코 형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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