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폭력적이던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하며 다짐하다가 어느 순간 아버지가 되어 있는 소년.
왜 어떤 이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것으로부터 도피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또 어떤 이는 왜 그토록 자신이 기피하던 곳으로 기어코 돌아가고야 마는 것일까?((이 두 문단은 내가 수년 전에 써둔 글을 참조한 것이다.))
What Do You Say After You Say Hello? 라는 책이 그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벌써 10년쯤 전에((예전에 내가 써둔 메모를 보니 내 군 생활 막바지에 그 책을 읽기 시작한 듯하다.)) 한 친구가, 재미있는 책이니 읽어보라면서 빌려준 그 당시에는 그게 그런 책이 될 것이라곤 전연 예상치 못했다.
대체 무슨 내용의 책인지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는 아리송한 제목이었지만 그 친구의 안목을 나는 꽤 신뢰하고 있었으므로 읽어보기로 했다. 확실히 놀라운 책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 책의 저자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에릭 번이라는 양반은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에서 계속 활동한 정신분석의이며 교류분석(TA)이라고 하는 자신만의 학파를 만들었다.
교류분석은 인간이 표면에서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이면에서 원하는 것이 전혀 다를 수 있으며,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능숙하게 속일 수 있다고 가르친다.
또한 심리치료가 필요한 문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교류’를 통해 일종의 ‘각본’의 형태로 전달되며 때문에 모든 심리치료는 먼저 자신에게 (무의식적으로) 입력된 각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한다.((이 두 문단 또한 내가 수년 전에 써둔 글을 참조한 것이다.))
이런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 인물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컸지만 에릭 번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그의 베스트셀러 Games People Play는 그의 이름과 TA를 정말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그가 죽고 나서는 그 뒤를 이을 만한 인물을 배출하진 못한 것 같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제는 절판된 전기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에릭 번 생전에 TA에 관심을 가졌던 부부가 함께 쓴 것이다.
이 전기는 특이하게도 그의 탄생이나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의 첫 결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대목은 에릭 번이란 인물에 대해 갖고 있던 기대감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이 전기가 초반에 언급하는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한 대목이 전기의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천재란 어떠한 결여이며 멀리서는 찬란히 빛나 보이는 나비도 가까이서 보면 혐오스러운 벌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의 모든 천재들이 그러하지만) 자신의 결함을 연금하여 천재성을 일구어냈지만 번 자신도 어느 정도는 그 결함을 완전히는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조금의 연금술이 더 있었다면 그가 좀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기 전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다른 심리학자이자 저자였던 조지 바크George R. Bach가 사석에서 번에게 했다는 말이다:
“성격에 대한 모든 이론은 당연히 그 창시자의 성격과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당신의 체계는 편집증적이고 내 체계는 조증(mania)적인 게요!”
물론 번은 이 말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조지 바크는 분명 또다른 천재였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에 대한 아마존 책 목록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런 문서가 남아있지 않다. 뉴욕타임스의 1986년 부고 정도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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