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교수의 5분 국제정치학

[note note_color=”#f3f3ef”]연일 전세계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국제 뉴스. 국내 뉴스에 비해 배경이 되는 국제정치의 맥락을 모르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버드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는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스티븐 월트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국제정치학의 핵심 원리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글을 올려 이를 소개한다.[/note]

오래 전 SNL에는 ‘5분 대학’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평범한 대학생이 졸업 후 5년 후에도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5분 내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경제학의 경우는 ‘수요와 공급’이고 신학의 경우에는 ‘신은 당신을 사랑한다’이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국제정치의 매혹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단 5분 만에 가르쳐 주고자 한다.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리지만 않으면 5분 이상 걸리지 않을 것이다.

1. 무정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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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무정부상태가 보통 어떠한 혼란을 가져오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제정치는 국내정치와 달리 중심적인 권력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주의 학파가 아니더라도 이는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다.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도 없고, 국가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위 있는 법관이나 법원도 없다. 사고가 생기면 119에 전화할 수도 없다. 국가들을 보호할 수 있는 중심적인 권력기구가 없기 때문에 강대국들은 안보를 자급자족하고 훗날 있을지 모르는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무정부상태가 협력이나 이타주의적 행위 자체를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전보장은 늘 어려운 상태에 있으며 국제정치의 전반에는 공포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 있다.

2. 세력균형

중국의 급부상은 미국이 주도하던 세력균형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해군의 훈련모습
중국의 급부상은 미국이 주도하던 현 상태(status quo)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해군의 훈련모습

무정부상태에서 국가들은 누가 더 강한지, 누가 자신을 따라잡고 있는지 누가 뒤쳐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영원히 열등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세력균형론(the balance of power)은 국가들이 어떻게 잠재적 협력자를 식별하는지, 그리고 전쟁이 발발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지 낮아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려준다. 세력균형에서 생기는 큰 변화는 대체로 위험하다. 부상하는 세력이 현재의 질서에 도전하기 때문일수도 있고, 뒤쳐지고 있는 세력이 예방적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세력균형이 변화하는 시기에는 누가 더 강한지를 알기 어려워 판단착오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력균형’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있어왔지만, 세력균형을 빼놓고 국제정치를 이해하려는 것은 마치 배트 없이 야구를 하려는 것과 같다.

3. 비교우위 (무역을 통한 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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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우위론은 자유무역 옹호론의 주요한 근거이다. 사진은 한미 FTA 실무협상 모습 / 주한미대사관

국제경제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면 비교우위론의 기본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간단하다. 모든 국가들이 각자가 보다 더 잘하는 것, 다시 말해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를 갖고 있는 품목의 생산에 집중하고 각자의 생산물들을 교환하는 것이 더 이롭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나라가 모든 품목의 생산에서 우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들이 ‘비교’ 우위가 가장 높은 품목에 집중하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비교우위론의 논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 논리가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약 200년의 시간이 걸렸다. 보호무역주의의 거부와 보다 개방적인 무역의 실시는 오늘날의 세계화의 근간이 되었다. 또한 이는 200년 전보다 오늘날의 세상이 보다 풍요로운지를 설명해 주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4. 오해와 오판

쿠바 미사일 위기는 국제정치에서 오해와 오판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 중 하나이다. 사진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국가안전보장회의집행위원회(엑스콤) 회의 모습
쿠바 미사일 위기는 국제정치에서 오해와 오판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 중 하나이다. 사진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국가안전보장회의집행위원회(엑스콤) 회의 모습

무정부주의와 세력균형은 공포에 관한 것이다. 자유무역(비교우위론)은 탐욕의 유익한 효과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멍청함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자주 서로를 오해하고 종종 매우 멍청한 짓을 저지른다는 걸 인식하지 않으면 국제정치와 외교정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 국가가 위협을 느끼고 방어적으로 반응하는데 다른 국가들은 이를 잘못 해석하여 이 나라가 위험한 야망을 품고 있으며 이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때로는 정반대로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국가가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이 나라가 큰 야심이 없다고 여기게끔 만들기도 한다.

국제정치학 학위를 취득한 학생이라면 국가의 지도자들이 심지어 수많은 뛰어난 참모들을 거느리고 거대한 정부 부서들과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을 때에도 종종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다는 걸 알아야 한다. 왜일까? 정보가 불완전하고, 다른 국가들이 허풍을 떨거나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며, 관료들과 참모들도 모두 인간적인 결점들(비겁함, 출세 제일주의, 제한적 합리성 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5년이 지나고 나면 자세한 것들은 기억나지 않겠지만 이것만큼은 꼭 명심하길 바란다. 책임자들은 종종 자신들이 무얼 하는지 모른다.

5. 사회적 구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부상과 붕괴는 한때 강력한 영향력을 구가했던 사상이나 가치체계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부상과 붕괴는 한때 강력한 영향력을 구가했던 사상이나 가치체계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구성주의자는 아니지만 국가들과 기타 인간 조직들끼리의 상호관계는 변화하는 규범과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곤 한다는 걸 인정한다. 이러한 규범과 정체성들은 결코 하늘에서 정해져서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규범과 정체성은 그 자체로 인간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사회의 현실은 물질적 세계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민족주의, 노예제의 폐지, 전쟁의 법칙, 그리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부상과 붕괴를 비롯한 중요한 세계적 현상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규범이나 정체성, 믿음 등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이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 일견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는 듯했던 통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일에 완전히 무지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이 다섯 가지 개념이 국제정치학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밖에도 억제(deterrence)와 강제(coercion), 제도, 선별 효과, 민주평화론, 국제 금융 등의 여러 가지 개념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세계 역사에 대한 지식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고 특정 정책분야에 대한 전문성 또한 그러할 것이다.

만약 국제정치학 학위를 보유하고 있고 이 분야에서 일할 계획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세대는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골칫거리들을 남겨뒀다. 여러분은 적어도 우리가 했던 것보다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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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올라올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읽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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