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의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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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한국어 서비스 런칭팀이 꾸려지고 런던에서 내부 교육 중일 때의 일이다. 서비스 런칭 이벤트를 위해 이런 저런 콘텐츠를 준비하는데 팀 멤버들의 인터뷰 영상도 있었다. 고풍스러운 Old Broadcasting House 옥상이었던가에서 팀원들 각각의 짤막한 인터뷰를 촬영했다.

사진첩 검색을 해보니 바로 나오네 ㅋㅋ

혹시 몰라서 한국어, 영어로 두 차례 인터뷰를 했는데 영어로 촬영 중에 프로듀서가 크게 웃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똑같은 내용인데도 내가 한국어로 말할 때와 영어로 말할 때 제스처부터 표정까지 다 달라진단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내가 모국어로 말할 때도 그리 정적인 사람은 아닌데 영어로 말을 하면 더욱 몸짓이나 표정, 어조 등이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그건 내가 영어를 흡수하게 된 계기들이—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듣고 본 영어 화자들이—그랬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학습하는 것은 곧 그 언어권의 문화를 학습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나는 한 술 더 떠서, 외국어 학습이란 그 언어권의 문화를 습득하면서 새로운 개성, 성격을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에는 틈틈이 일본어를 공부하는데 틀림없이 일본어로 말하는 나는(아직 요원한 일이지만) 그 어조는 물론이고 손짓과 표정조차도 한국어나 영어로 말할 때와는 다를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익히고 그것으로 내를 표현하는 게 새로운 자아, 새로운 영혼을 주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더 재밌어진다.

(한편, 당시 런던에서 촬영한 영상을 어디엔가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땐 그런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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