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이스의 쯔위가 한 방송에서 청천백일기를 흔들었다가 중국의 네티즌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심지어 (소속사가 시킨 것으로 보이는) 공식 사과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사건은 더 큰 화제가 된 것 같다. 워싱턴포스트에서도 이 사건을 다뤘다. 이 사건이 대만의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이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사건의 전개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중국의 부상에 따라 갖게 된 우려를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도 중국에 인접해 있는 데다가 경제적으로도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 미국과 무역하는 액수를 합쳐도 대중국 무역액에 못 미치기 시작한 게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항상 중국의 세력이 커지면 한국이 중국 편에 붙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어왔다. 나의 짧은 견문으로는 아직 한국의 대중 외교 역량이 대미 외교 역량에 비해 형편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그런 우려가 기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정말 일각의 우려대로 중국의 영향력에 (본의와 다르게, 심지어 본의와 반대로) 휩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번 사건을 보면서 했다.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의 지극히 부적절한 대응 때문이다.
아마도 쯔위는 청천백일기가 중국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중국인들이 이를 얼마나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잘 몰랐을 것이다. 이점을 해명하기만 했으면 충분했다. 그런데 JYP는 16세의 여성에게 심지어 ‘하나의 중국’ 발언까지 하게 만들었다. 쯔위가 양안관계에 대해서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야 알 수 없지만 사과 영상의 분위기를 보면 (IS가 인질들 잡아놓고 참수하기 전에 찍는 영상 같다는 촌평도 있었다) 이는 명백한 정치적 폭력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도 이런 식으로 정치적 견해를 강요받아서는 안된다. 위키피디아의 항목을 보면 JYP엔터테인먼트의 대표 박진영은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자유주의를 도대체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 사건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사건의 당사자인 쯔위가 대만 사람이라는 점에 있다. 만약 이런 논란에 휩쓸린 사람이 한국 사람이었다면 소속사가 이런 ‘폭력’을 행사했을까? 수지가 “간도는 한국땅” 같은 발언을 해서 중국 네티즌들이 격노했다고 해보자. 과연 JYP는 수지더러 “간도는 통일 이후에도 영원히 중국땅이 맞습니다”라고 발표할 것을 강요할 수 있을까?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민족주의자들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정치적 폭력을 쉽게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쯔위가 ‘민족적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K-pop은 지금 대한민국이 생산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경쟁력이 높은 제품군 중 하나일 것이다. 대만에서, 중국에서, 태국에서 한국의 보이밴드나 걸밴드를 하기 위해 오는 청소년들도 많다. 경제는 이미 많은 이민족을 끌어들일 정도로 성장했지만 정치는 여전히 편협한 부족 국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 같아, 나는 우리가 조만간에 같은 사건의 다양한 버전들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란 걱정이 든다. 아니, 이미 우리가 보지 못하는 수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결과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