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바머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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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으면 일단 양 극단으로부터는 거리를 두는 게 (물론 게으르다는 비난을 피할 순 없겠지만) 쉽고 편하다. 기술에 대한 ‘금사빠’들과 러다이트-초절주의자들 사이에서 내가 취하는 입장도 그렇다.

예프게니 모로조프가 한참 목청 높여 떠들던 이후 기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내 귀에까지 닿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최근에 요상한 우연의 일치로 테드 카진스키에 대한 이야기가 메아리를 남긴다.

뉴욕매거진의 기사는 테드 카진스키의 강령을 신봉하고 (일부는) 행동으로까지 실천하는 ‘테드의 아손兒孫‘들을 조명한다. 운동, 심지어는 테러 단체로서까지1라틴 아메리카에 에코테러리즘 단체(특히 ITS)가 폭넓게 활동하는지는 잘 몰랐다. 활동하는 단체들이 있는가 하면 기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존 자코비 같은 개인도 있다.

이론의 여지 없이 명민한 사람이었겠지만 어떠한 무브먼트를 제대로 조직화해본 경험이 없는 카진스키가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기다리는 게 레닌인지 고도Godot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2차라리 이석기 RO가 더 가능성의 측면에선 우월했을 게다.

그렇다면 개인의 차원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난 여기쯤에 이르면 종종 존 그레이가 어디선가 쓴 문구를 떠올린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관조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뭐 그런 얘기. 말년의 율리우스 에볼라가 아폴리테이아를 떠올린 것도 그런 흐름의 필연적인 종착지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든 개인이야 관조를 하건 페이스북 그룹에서 ‘아지’를 하건, 나라로카는 어디론가 흘러간다.

핵폭탄 제조 같은 거대 프로젝트에 미국은 처음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핵폭탄을 최초로 개발하게 된 것은 오직 독일이 대신 개발하여 미국을 제압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위협이었다. 당대 산업력에 있어서 미국이 압도적으로 우위였음에도, 전략적 경쟁 국면에서는 단 하나의 가능성도 용납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다가올 2019년에도 비슷한 일이 펼쳐지리라 보는 게 타당하다. 중국의 테크노 디스토피아(혹은 유토피아)를 향한 진군은 분명히 태평양 반대편, 실리콘밸리에 커다란 자극을 줄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거대 플랫폼들은 정보와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에 제약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사업을 할 수가 없다고 정부를 끊임없이 로비한다. 그들은 이대로 손을 놓고 있다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여 첨단 알고리즘과 AI, 생명공학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다고 공포를 주입한다.

임명묵, 베이징, 실리콘밸리, 유나바머 (슬로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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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 아메리카에 에코테러리즘 단체(특히 ITS)가 폭넓게 활동하는지는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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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이석기 RO가 더 가능성의 측면에선 우월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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