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원격근무는 왜 세계 최저 수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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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바꿔놓은 많은 것들 중 다시 예전처럼 돌아온 것도 있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그게 루비콘 강인지 요단 강인지는 각기 다르지만)을 건넌 것도 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유독 한국에서는 거의 변한 게 없는 것도 있는데 오피스 라이프가 그렇다.

영미권에서는 한번 원격근무의 달콤한 맛을 본 직장인들이 심지어 연봉을 깎더라도 원격근무를 적극 보장해주는 직장으로 떠나가는 일도 벌어진다. 그만큼 (최소한) 하이브리드 근무가 보편화됐고 그만큼 오피스 수요가 줄면서 상업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NYC 오피스 건물의 장기 가치가 42% 하락할 전망이라고 한다.)

(같은 영국이라도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의 원격근무에 대한 시각이 정반대인 게 재미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원격근무의 효과나 생산성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가 좀 더 실리는 편이고 FT에서는 원격근무를 옹호하는 기사를 더 많이 보았다.)

한국은 심지어 일본보다도 원격근무가 적다. 그런데 그 일본에서도 (원격/하이브리드 근무를 많이 시행하면서) 근래에는 기업들이 굳이 도쿄 안에 있을 필요를 못 느껴 도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위 링크한 NYT 기사가 소개한 연구는 그 주된 원인으로 주거환경(하지만 그 거대한 집들로 가득한 미국에서도 원격근무=키친 테이블이더라)과 락다운을 경험한 기간을 꼽는데 여기에 스탠포드의 니콜라스 블룸(원격근무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의 가설 하나를 보태면 적당할 것 같다:

의외로 세계 각국의 원격근무 현황을 비교해보면 원격근무가 평균보다 많은 곳의 공통점이 ‘영어’다.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가 독일, 프랑스, 일본보다 더 원격근무를 많이 한다.

영어가 원격근무를 부르는 언어…라는 게 아니라 미국의 경영관리 기법이 개개인의 성과를 측정하는 데 더 능숙하고, 그래서 원격근무에도 유연하며, 이러한 경영관리 기법이 더 빨리 확산된 영어권에서 원격근무가 더 잘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이다.

한국 기업의 개인별 성과 측정이 미흡하다는 건 많이들 공감할 것 같다. 일하는 방식도 주먹구구라 옆에 앉혀놓고 모니터 보여주거나 (그래도 이젠 21세기니 인쇄물에 빨간펜까진 안 쓰겠죠?) 전화로 주절주절 늘어놓지 않으면 업무 지시가 안되는 상사들도 여전히 많을 것이고…

수도권 과밀/지방 소멸이나 저출산 등등, 지금 한국 사회의 촉박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원격근무를 선진국 평균 수준으로라도 올려야 한다. 원격근무가 극소수 테크 기업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J.M. Smucker 같은 F&B 기업도 보다 우수한 인재 확보를 위해 독특한 하이브리드 근무 제도를 고안해 다듬고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서는 아직도 이런 광고나 뜨고 있길래 참으로 답답하여 길게 끄적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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