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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od: 예프게니 모로조프의 스티브 잡스 비평

저번에도 소개했던, 제가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예프게니 모로조프가 이번 The New Republic 3월호에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대해 심도 있는 비평(TNR에서 기고문의 무료 게시 기간이 지나서인지 paywall이 걸렸더군요. 아직 빈틈(?!)이 있어 그쪽으로 링크를 수정했습니다)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Form and Fortune이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The iGod: Steve Jobs’s pursuit of perfection–and the consequences라는 새로운 제목을 위에 달았더군요. 보다 눈길을 끌 수 있는 제목을 편집측에서 원한 듯 합니다.

A4로 20장이 넘는 이 상당한 분량의 비평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이작슨의 전기보다 더 낫다” 같은 호평도 받았고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라는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철학적, 사회학적인 부분까지 짚어내고 있어 근래 보기 드문, 훌륭한 비평의 한 사례라고 할 만 합니다. 하지만 이 분량 때문에 아무래도 모두가 다 읽어보기엔 꽤나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도 할 겸, 그 내용을 우리말로 다시 정리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저의 해석과 첨언이 들어있습니다.

사실 이 비평은 기본적으로는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에 대한 리뷰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차피 주제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 전기 자체에 대한 비평은 별로 없고(게다가 거의 다 부정적) 전기에는 나와 있지 않은 잡스의 다른 매체들과의 인터뷰 내용들도 많이 참고하고 있습니다.

모로조프의 비평은 크게 아래와 같이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본문이 이렇게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내용을 보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이렇게 나누었지요:

  • 잡스에 대한 신화 부수기
  • 잡스와 애플의 디자인 철학과 그 함의
  • 애플의 성공 요인
  • 잡스의 탁월함과 그 한계

널리 알려진 contrarian답게 모로조프는 우선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둘러싼 신화 부수기로 비평을 시작합니다. 미디어를 비롯해서 전세계에 걸쳐 과도하기 그지없는 애플과 잡스 숭배에 질린 저 같은 사람들을 배려한 것이겠지요. 아이작슨의 전기도 잡스가 표리부동한 사람이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전기 외의 자료에서 보는 잡스는 그보다 좀 더 합니다. 모로조프는 “덜 우호적으로 말하자면, 원칙도 없는 기회주의자라 할 수 있다”고 하고요.

자기는 애플에서 일하는 게 돈 때문이 아니므로 급여는 $1로 충분하다고 하고서는 나중에 자신의 스톡옵션 실현 시기를 소급적용하려고 해서 美증권거래위원회와 말썽이 생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게 전기에도 나와 있는 이야기인지는 제가 전기를 읽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그 스스로의 신화를 만드는 데에도 열심이었죠. 애플이 작은 창고에서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인터뷰마다 늘 강조하면서 ‘창고’의 순수함을 강조하곤 했지만, 공동 창업자인 워즈니악은 96년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창고에서 한 일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 내가 일하던 HP 사무실에서 컴퓨터 제작을 했다. 대체 창고 이야기가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잡스는 그 주위에 숭배자들만 만든 게 아니라 후한 보조금으로 애플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맥월드 같은 잡지까지 지원하여 애플을 위한 언론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잡스의 통제권(control)에 대한 집착은 유명하지요. 결국 애플 제품을 판매하는 소매점까지 직접 차리게 되니까요.

모로조프는 잡스의 와이어드와의 96년 인터뷰에 주목합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TV를 통해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드려는 음모가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크고 나서 보니 실은 TV가 그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음모론은 차라리 낙관적이다! 나쁜 놈들을 물리치면 되니까.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모로조프는 여기서 경멸과 인간혐오의 정서를 느낍니다. 그리고 타고난 마케터의 세계관도.

모로조프가 보기에 잡스는 탁월한 현대인(Modern Man)이지만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모든 TV가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드는 프로그램만 내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잡스는 (자의든 타의든) 일면적인 세상에서 살기를 택했다는 겁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두 부류만 존재하는 세상. 관념이니 법이니 제도, 정치 같은 더 큰 맥락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잡스는 혁명가였지만 어디까지나 제한된 차원에서만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한된 차원의 혁명가는 정말로 큰 혁명을 일구어 내지는 못합니다.

언제나 애플의 제품은 유려한 디자인으로 칭송받았지요. 모로조프는 디자인에 대한 잡스의 집착이 상징하고 있는 애플의 디자인 철학으로 넘어갑니다. 인터뷰에서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잡스는 순수함(pureness), 본질(essence)을 늘상 강조하곤 했습니다.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인 조너선 아이브가 서독 시절의 가전기기 회사인 브라운Braun과 그 제품 대부분을 디자인한 디터 람스Dieter Rams에게 열광적으로 집착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입니다.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제품들이 작년에 국내에서도 전시되었지요. 그때도 애플 제품과의 연관성에 대해 많은 설명이 곁들여졌었습니다. 디터 람스는 바우하우스의 ‘기능주의functionalism’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디자이너인데 잡스 또한 바우하우스에 매우 깊은 관심과 공감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우하우스 기능주의의 핵심은 ‘형상form은 기능function을 좇는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보기에 아름다운 것이 관건이 아니라 그 제품이 갖고 있는 ‘기능’, 즉 그 제품의 쓰임새의 핵심(이는 곧 잡스가 늘상 강조하던 ‘순수’와 ‘본질’과 같습니다)에 형상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바우하우스와 애플의 디자인 철학은 그 결과물의 외양만 유사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모로조프의 지적입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부분이지요.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산업시대의 플라톤주의’와도 연관됩니다. ‘기능’, ‘순수함’, ‘본질’, 곧 이데아는 우리가 사는 비루한 현상계 너머에 있고, 디자이너는 그 이데아를 보고 이 현상계에서 이를 표현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플라톤주의에 담긴 엘리트주의적 함의는 애플의 철학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기능주의는 사용자들의 바람이나 요구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는 기능주의 철학의 당연한 논리적 귀결입니다. 제품의 디자인, 곧 ‘형상’은 어디까지나 ‘기능’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지 고객이나 사용자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바람이나 요구 따위에 신경 쓸 이유란 없는 것이지요. 잡스가 소비자들에게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의 관점에서, 소비자들은 자기들이 뭘 원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잡스에게 시장 조사라는 건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그 스스로를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 애플의 한 매니저는 애플의 시장 조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스티브는 매일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죠.”

아이작슨 또한 전기에서 잡스의 전 여자친구가 한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티브는 우리의 일이 사람들에게 미학을 가르쳐 주는 거라고 믿었어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거죠.”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항상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자신들이 카운터컬쳐의 전사인 것처럼 선전해 왔지만 이런 이야기는 실상이 그와 다름을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티모시 리어리와 1970년대의 캘리포니아보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과 매튜 아놀드가 더 어울리지요.

만약 이상적인 기기의 ‘형상’이 현실 바깥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식론적으로 우월한 디자이너들이 발견하는 것입니다. 디자이너는 보다 높은 진리에 접근 가능한 사제와도 같은 것이고, 애플의 종교는 디자이너 숭배이지요. 애플은 디자이너가 우리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한 가지 가정 하에 움직이는 회사입니다. 물론 그 디자이너-사제 계급의 정점에는 스티브 잡스가 위치하고 있고요. 잡스가 아이팟의 우월함을 설명했던 방식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린 우리 스스로를 위해 아이팟을 만들었다.” 애플의 제품은 신들이 신들을 위해 만든 것. 그리고 우리가 이 신들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애플의 제품을 사는 것입니다.

애플의 가장 놀라운 트릭은 그 철학과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역사를 만드는, 일종의 영적-역사적 엘리트인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모로조프는 이제 애플의 성공 요인에 대해 논합니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쫓겨났던 시절의 침체기를 제외하면 항상 잘 나가는 회사이긴 했습니다만 특히 바로 최근의 10년은 그야말로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의 것이었지요. 미국의 지난 10년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닷컴 버블이 붕괴되었고, 9/11 테러가 있었죠. 세계에서 가장 기술을 잘 다루는 기술군이었던 미군이 완전히 당한 겁니다. 게다가 AT&T의 도청 스캔들도 있었죠. 그전까지는 언제나 장밋빛 희망을 보여주던 ‘기술’이란 것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데다가 억압적이기까지 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때 애플은 단지 기계를 파는 게 아니라 기술을 매개로 한 테라피를 하고 있었다는 게 모로조프의 분석입니다. 미국처럼 질병을 쇼핑으로 치료하는 나라는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고요. 휴머니즘, 카운터컬쳐적인 ‘해방’의 이미지, 누구도 잡스만큼 휴머니즘을 세일즈하는 기술을 습득하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애플의 사례는 유일한 것이 아닙니다. 영국의 역사가 폴 베츠Paul Betts는 <The Authority of Everyday Objects>라는 저서에서 브라운의 제품 또한 전후의 서독 사회에서 유사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애플에 대해, 매우 독특하고 예외적이며, 예측불허라 어떠한 범주의 틀을 쉬이 씌울 수 없다는 통상적인 견해는 소위 말하는 테크 애널리스트들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플의 성공은 단순히 디자인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잡스는 그 스스로도 컴퓨터가 아닌, 꿈을 판다는 생각을 깊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애플은 그저 고객의 꿈을 실현시키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객이 갖고 있지 않던 꿈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지요. 애플은 그야말로 consumer engineering의 모범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은 차지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

정말로 흥미로운 것은 위에서 언급한 디자이너-사제의 엘리트주의처럼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회사가 어떻게 카운터컬쳐의 아이콘인 것처럼 행세할 수 있었는지입니다. 잡스는 자신은 컴퓨터의 세계에도 ‘민중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실천 방법은 모든 가구로 하여금 애플의 제품을 사용하게 하여 무지한 대중들에게 미학을 가르치겠다는 것이었지요. 위로부터의 해방인 셈. 당연히 민중주의와는 정반대입니다.

대중매체와 광고의 시대 이전을 살았던 바우하우스와는 달리 애플은 광고에 매우 집착했습니다. 주간 회의 때마다 잡스는 모든 TV와 지면에 나갈 광고를 직접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잡스의 가장 훌륭한 업적이 있습니다. 사슬에 묶인 대중들에게, 동굴에서 나오지 않고서도 이데아를 볼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지요. 마케팅의 힘은 종종 사실을 왜곡하고 대중을 호도하는 것으로 평가절하되곤 했습니다만, 잡스는 마케팅을 진실로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제품을 알리는 복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그가 자본주의의 무기(광고)를 갖고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일 수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잡스는 그가 그렇게 존경하며 롤모델로 삼던 HP 같은 회사마저 자기 성공의 희생양이 된 것을 너무나 두려워 했다고 합니다. 그는 특히 크리스텐슨의 <혁신기업의 딜레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두 가지의 선제조치를 취했습니다.

하나는 아무리 잘 나가는 제품이라도 하나의 제품군에 결코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 주기적으로 신제품을 발표하고 심지어 신제품이 기존 제품을 위협하는 것일지라도 꾸준히 그리 한다는 것. 아이폰은 아이팟에 전화 기능을 포함한 것이었고, 결국 아이팟 판매량을 떨어뜨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단기적인 손해는 그나마 기업에게 낫다는 걸 알고 있었죠. 정말로 위험한 것은 성공에 안주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내부의 직원들도 끊임없이 긴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장 내에서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것. 그래서 최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는 것에 유난히 집착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소매점까지 직접 차리게 되지요. 부품 공급자들도 한쪽에 쏠려서 통제력을 잃지 않도록 최대한 다양하게 유지했습니다. 애플이 올해 초에 처음으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공급처는 156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럼 모로조프는 잡스를 최종적으로 어떻게 평가할까요? 줄곧 잡스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모로조프이지만 잡스의 탁월함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계 또한 분명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고요.

기술에 대해 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하곤 합니다. 반면에 잡스는 우리가 쓰는 가전기기 등에도 가치가 깃들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모로조프는 잡스의 가족이 세탁기를 구입하려고 했을 때의 일화를 길게 인용합니다. 우리가 세탁기에서 가장 원하는 기능은 무엇인가를 두고 2주간이나 저녁식사 때마다 토론을 했다고 하는군요. 잡스의 이런 태도는 하이데거부터 엘륄에 이르는 도덕주의적 기술철학자들에게 칭찬 받을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잡스는 이들 철학자들이 간파하지 못한 것까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기술이 도덕을 구현한다는 것(technology embodies morality).

세탁이가 물을 적게 쓰는지의 여부 등을 따진다는 것은 오직 그 사용자가 물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고요. 잡스의 탁월한 점은 바로 이를 간파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잡스가 애플의 제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일까요? 제일 먼저 그가 스스로도 즐겨 말한 ‘해방’이 있을 수 있겠죠. 번거로운 수작업으로부터의 해방, 뮤직플레이어로 음악만 들을 수 있다는 제약으로부터의, 전화기로 인터넷 서핑을 하지 못한다는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그렇지만 이러한 가치와 윤리의 문제는 생산자-소비자의 일차원적인 구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사는 공동체의 가치와 습속(habit)까지 통틀어서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잡스는 세탁기에 대해서는 그런 점을 세세하게 고려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만든 제품에 대해서는 그러한 고려를 하지 않았(또는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한계입니다. 세탁기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선택에 따른 윤리적 고찰을 하던 철학자가 자기가 만든 제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다시 바우하우스의 디자이너-사제의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애플이 제시하고 있는 ‘앱app 패러다임’의 미래는 결국 인터넷을 그 희생양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이미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러나 모로조프는 애플이 웹을 죽이고 앱을 택하는 것이 혁신innovation에 나쁘다는 흔한 비판과는 거리를 두며 자신의 비판을 이어나갑니다. 종종 ‘인터넷 개방성’이란 모호한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런 비판을 하곤 합니다만,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애플만큼 혁신에 집착하는 기업도 없습니다. 오직 ‘혁신’만이 유일한 가치라면 오히려 애플이 하듯 앱을 선택하고 웹을 죽이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혁신’만이 중요한 가치는 아닙니다. 윤리적, 미학적 고려 또한 논의의 중요한 추진력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혁신만이 인터넷에 대한 논의의 중점이 된다면 애플에겐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고로 모로조프는 이러한 ‘생태적’, 그러니까 공동체적 측면에 대한 관심을 NYT 기고문 <사이버산보객의 죽음The Death of the Cyberflâneur>에서 이미 표한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라든지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처럼 ‘산보객’처럼 탐험하던 초기 인터넷의 ‘생태계’가 페이스북과 구글의 ‘개인화’된 맞춤형 웹서비스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는 흥미로운 지적을 하고 있지요.)

문제는 애플이 사용자 외에는 그들이 속한 공동체라든지, 자신들이 인터넷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자세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고민도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애플은 어떤 행사라든지, 기술에 대한 논의나 연구에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구글은 (물론 여기저기서의 압력에 마지못해 하는 측면도 있긴 합니다만) 최소한 비판에 관심을 갖고 대응을 하려 하는 반면에 애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사용자이지 사회가 아니라는 듯이요.

긴 비평문의 말미에 모로조프는 흥미롭게도 루이스 멈포드를 인용합니다. “미국인들은 새로운 것은 새로워서 좋고, 낡은 것은 낡아서 좋다는 사고방식에 젖어있다… 진보란 유기적인 의미에서 누적적이어야 한다.” 멈포드의 입을 빌려 인터넷의 ‘생태계’에 대한 고민 또한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잡스는 롤링스톤과의 94년 인터뷰에서 인터넷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받자 대답을 피합니다. 그냥 알아서 되게 두자는 입장을 취하지요. 기술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난 그냥 음악 이야기나 하고 싶다. 그런 큰 문제들에 대한 이야길 시작하면 나는, 쿨쿨(코 고는 시늉)~” 독일의 일간지 슈피겔은 잡스에 대한 기사에서 그를 두고 ’21세기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붙인 적이 있습니다. 모로조프는 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면서 “하이데거와의 인터뷰를 길게 싣기도 했던 슈피겔은 과연 잡스에게서 어떠한 철학을 발견했는가?”를 묻습니다. 모로조프가 보기에 이 질문에 대한 잡스의 대답은 그의 코 고는 소리에 있습니다. “과연 21세기의 철학자로다.” 모로조프는 짧은 조소로 긴 비평문을 끝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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