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는 역대 최고인 약 80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다. 광장에서 시복 미사를 집전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가톨릭 국가가 아닌 한국에서 이러한 인기는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자료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10%(약 5백만)가 가톨릭이라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숫자는 가톨릭이 한국에서 갖고 있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엘리트에 가톨릭 신자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사회 계층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찾을 수 있다.
좀 이상한 일이다. 가톨릭이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부분의 비유럽권 국가들은 가톨릭을 식민지 시절에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국은 가톨릭도 아니고 기독교는 더더욱 아닌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한국에서 가톨릭의 경이적인 성공은 오직 한국 가톨릭 교회의 200년 역사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정치와 사회 부문에서 가톨릭 교회가 지켜온 입장이 오늘날의 한국 가톨릭의 성공을 가져왔다.
근대성의 종교
18세기말과 19세기초, 조선에서 가톨릭은 근대성(modernity)과 과학의 종교로 여겨졌다. 특이하게도 조선에 가톨릭 교리는 선교사들이 아닌 책을 통해 전파되었다. 유학의 추상적이고 경직된 담론에 진저리가 난 젊은 양반층은 보다 좋은 총을 만드는 법이나 더 큰 건물을 짓기 위한 기중기를 만드는 법과 같은 현실적인 지식을 원하고 있었다. 당시 양반층의 문화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하찮은 지식으로 배척했기 때문에 1700년대부터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파된 서구의 서적에 의존해야했다.
당시의 서구 문헌들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 한문으로 번역이 되어 있었고 (자연스레) 가톨릭에 대해 우호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은 가톨릭에 관심을 갖게 되어 관련 서적을 읽고 귀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790년대 말경에는 조선에 수천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가톨릭 신부를 본 적도 없었고 물론 세례를 받은 적도 없었다.
조선의 정부는 가톨릭이 점차적으로 번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서구 제국들에게 이용될 잠재적 위험도 있었고, 신자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를 거부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컸다. 그리하여 수 차례의 박해가 있었다. 그렇지만 가톨릭은 계속하여 성장했고 교육을 받고 진보적인 성향의 조선인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조선에서 가톨릭이 서구 근대성의 상징으로 비쳐지고 있던 시기에 서구에서는 가톨릭이 점차 반근대적이고 반동적인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민주화 운동
가톨릭이 18세기와 19세기에 근대와 과학의 종교로 여겨졌다면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한국을 지배하고 있던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의 종교로 여겨졌다.
1960년대 가톨릭이 진보적 변화의 사상과 연관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한국의 가톨릭 교회는 좌향좌를 시작했다. 한국이 군사독재로 운영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가톨릭 교회는 민주화 운동의 편에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1968년 서울의 추기경이 되었고 나중에는 추기경이 된 스테파노 김수환이 특별한 역할을 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리더십 하에 가톨릭 교회는 언제든지 정부와 정부의 반대세력 탄압에 대해 비판하는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이에 격분한 중앙정보부는 공개적으로 군사정권을 비판하던 다니엘 지학순 주교를 체포했으나 국내외 가톨릭 그룹들의 압력에 의해 그를 풀어주어야 했다.
가톨릭 교회는 반정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나 노동운동가들의 망명지로 사용되곤 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한국의 법은 교회에 그러한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으나, 실상 당국은 가톨릭 교회와 공개적으로 싸움을 벌이고 싶어하지 않았고 대체로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1987년에 군부독재가 종결되고 드디어 한국이 민주국가가 되었을 때, 가톨릭 교회의 역할은 널리 인정받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인식은 가톨릭의 인기를 높였다. 가톨릭이 전세계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신도가 줄어들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유달리 번성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가톨릭 신자가 한국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했지만 20년이 지난 오늘날은 거의 두 배에 가까운 10%가 되었다.
한국 가톨릭 지도자들은 두 차례 역사의 올바른 방향에 섰으며 그 결과 가톨릭은 한국 사람들에게 계속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