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역사는 건물과 거리,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 사이에 남는다. 어제의 번영과 오늘의 쇠락이 겹쳐 보이는 도시는 시일이 지난 후에도 깊은 인상을 새긴다. 내가 사는 도시의 번영도 영원하지는 못하리라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그보다도 그 어제와 오늘의 대비가 뒤섞여 있는 모습이 묘한 감동을 준다. 마치 텐션 코드처럼.
지난 남미 여행에서 나는 전연 의도치 않게 그런 도시 두 곳을 만났다. 하나는 칠레의 발파라이소, 그리고 다른 하나는 페루의 이키토스.
뻔한 여행기는 쓰고 싶지 않아서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도 아무것도 쓰지 않다가, #망했어요 여행기라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뒤늦게 써본다.
발파라이소Valparaiso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2~3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동네다. 해안가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조건과 동네 곳곳에 보이는 벽화(그리고 그래피티) 등으로 한국 관광객들에겐 유명하다.
산티아고의 내 친구는 발파라이소의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를 하고 있는 자신의 친구 어니를 내게 소개해줬다. 거의 아무런 정보 없이 무턱대고 남미에 온 나에게 어니의 가이드는 매우 큰 도움이 됐다. 그가 영어를 거의 못해 친구의 통역을 빌려야 했던 것이 아쉽다. 스페인어도 꾸준히 익혀야 할 것인데…
보통 인접해 있는 비냐 델 마르Viña del Mar를 같이 관광하곤 한단다. 우리가 만난 곳도 비냐 델 마르의 한 대형 쇼핑몰 앞에서였다. 이곳은 나중에 보게 될 발포(발파라이소를 이렇게 줄여 부른다)보다는 보다 규모가 작고 잘 정비된 신도시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디나 다 그렇겠지만 해변쪽으로 갈수록 비싸보이는 건물이 많고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허름한 느낌이 든다.
발포나 비냐 델 마르 모두 항구 도시다. 특히 비냐 델 마르는 설탕의 무역 통로로 과거에 크게 번성했단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가 생기면서 다 망했다.
해변에서 접선용 다리와 크레인을 하나 볼 수 있지만 이제 비냐 델 마르의 해변에는 배를 하나도 볼 수 없다. 이 다리와 크레인도 설탕 무역으로 잘 나가던 과거의 잔해에 불과하다.
비냐 델 마르에서 버스를 타면 한 20~30분 안에 발포에 도착한다. 칠레의 버스 기사들은 한국의 버스 기사들보다 더 광폭한 운전을 한다.
발포에 당도하자 거창한 유럽풍의 건물들이 눈에 띈다. 비냐 델 마르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다. 둘 다 과거에 번영했던 도시라지만 발포의 영화는 비냐 델 마르와는 차원이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칠레 해군 청사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하팍로이드의 건물이었다. 고전적인 형태의 건물 안에 통유리로 만든 구조물을 심어놓았다. 거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모노리스 느낌이라 그 대비가 더 강렬하다.
그러나 어니의 설명에 따르면 발포의 경제는 이미 수년전부터 망한 상태다. 파나마 운하 때문에 물동량도 별로 없다고 한다.
중심가를 걸어보면 실감이 난다. 그 거창한 유럽식 건물들 태반이 ‘임대문의’ 간판을 달고 있다. 건물들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으니 그래피티 낙서도 많다.
한편으론 그런 벽화나 그래피티가 거의 예술의 경지까지 다다르고 나니 그것 때문에 관광명소가 된 거 같기도 하다.
해안가를 벗어나 좀 더 안쪽으로 향하면 언덕이 시작된다. 아마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일 듯한데 (적어도 서울은 그렇다) 꼭 이런 곳에 달동네처럼 빈한한 계층의 집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그런데 남미의 달동네는 퍽이나 알록달록하다. 벽화들도 그렇고 집 외벽의 색깔도 그렇고, 여기 사람들은 색을 대담하게 사용한다.
해안가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관광객들로 붐빈다.
여기까지가 관광객용 발파라이소의 모습이다. 좀 더 북쪽으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색창연한 유럽식 건물과 화려한 벽화에 가려진 발파라이소의 민낯이 드러난다. 어니는 진짜 발파라이소로 우리를 안내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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