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타국의 시선에 민감하다.[footnote]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 생각하지만(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익힌 인생의 진리 중 하나는,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란 거다) 내가 다른 나라 사람이었던 적이 없어서 확신을 갖고 말하진 못하겠다.[/footnote] 언론은 늘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외신의 논평을 거론한다. 한국에 오는 해외 셀럽들은 이제 김치와 싸이 외에 한국에 대해 좋아하는 것을 언급할 준비를 해놔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해외언론비서관실을 신설했는데 여기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외신에서 한국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도한 내용들만 정리해서 청와대 웹사이트와 유튜브 등에 선전하는 것이다. 가생이닷컴도 이렇게 운영하진 않는다. 아, 그러고보니 가생이닷컴 같은 게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많은 걸 시사하는구나.
한국이 외국, 보다 정확하게는 서구 선진국(하나만 꼽으라면 물론 미국이다)에게 갖고 있는 심리는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 전문가가 필요할 정도로 복잡하다. 일견 존경하면서 그에게 인정을 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금새 격분해 팔뚝질[footnote]내가 번역한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는 불과 십수년 전에는 조선일보까지도 미국을 향해 팔뚝질을 해댔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footnote]을 해댄다. 하지만 한편으론 무시당할 만하니까 무시당한다는 생각도 한다.
처음에 내가 생각하기로는, 결국 경제가 성장하고 해외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처럼) 특정한 마음가짐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겪지 않겠는가 싶었다:
1) ‘그럼요, 백인 으르신들의 말씀이 옳지요. 조선인들은 아직 미숙해 열심히 받들어 모시고 배워야 합니다요’ 2) ‘이제 나도 많이 컸으니 아버지(백인)의 인정을 받아야겠어’ 3) ‘저희 붕가분가하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 세 가지(물론 따져보면 그 이상이겠지만)의 심리가 세대 전반에 걸쳐 이리 저리 혼재하고 있는 양상이다.
문화관광부의 공무원들은 여전히 ‘두 유 노우 김치?’ 수준의 홍보 전략을 수립하고 셀트리온은 150억을 들여 ‘자전차왕 엄복동’을 만드는 한편, 또 어디서는 이런 것들을 두고 ‘국뽕’이라며 비웃는다. 이게 다 지금 같은 시공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다지 길지도 않은 해외 경험을 모든 것의 척도로 삼으며 한국의 모든 것을 폄훼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그런데 꼭 이런 사람들이 그들이 가장 혐오해마지 않는 한국스러움의 끝판왕을 보여주더라), 이미 서구 학계에서 그 바닥 거장들과 쟁쟁하게 겨루는 한국 학자들도 있고, 학문의 오파상들이 무분별하게 수입해 온 서구 ‘담론’들이 역사적 맥락이 현저하게 다른 한국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footnote]최장집의 정당 정치에 대한 집착도 그런 무력함의 반영이라는 지적을 근래 읽었는데 매우 신선했다.[/footnote]
경제 성장의 경험이 매우 압축적이라 세대간의 편차도 큰데다가 그 세대 안에서도 각각의 해외에 대한 경험의 편차는 상당히 큰 편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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