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책 열댓 권을 읽었더니 부동산 책이 필요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간 부동산 관련 책을 한 열댓 권 정도를 사서 읽었다.

요새 뜬다는 소위 ‘여의도 학파’의 책도 읽어봤고 그냥 전통적(?)인 부동산 전문가의 책도 읽어봤으며 부동산의 가치에 대해 건축가가 공들여서 해설한 책도 읽어봤다.

이제 서른 후반을 향해 가다 보니 동년배나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부동산이 종종 화제로 오르는데 가끔 주변 사람들이 내가 그렇게 부동산 책을 많이 읽고 있다는 걸 알면 어떤 책을 추천하겠느냐고 묻곤 한다.

만약 부동산에 대해 단 한 권의 책만 택하려면 어떤 책을 택할 것인가? 그런 질문을 받은 후부터 나도 줄곧 그런 생각을 해왔다.

부동산 관련 좋은 책들은 많아서 딱 한 권만 고르기는 어렵다. 그런데 문득 내가 부동산 관련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실은 부동산 관련 책은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왜냐면 내 세대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갖는 질문에 대해서는 굳이 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세대에서 부동산을 ‘투자’ 대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게다. 적어도 내 주변엔 없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실수요자’인 게다. 대부분은 현재 전월세로 살고 있으며 청약 통장을 바라보고 있을 터.

지금 집을 사야 하나? 사야한다면 어디를 사는 게 좋은가? 겨우 이런 정도가 내 세대에서 가질 의문인데 이에 대한 답은 거의 명확하다:

살 수 있으면 사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살고 싶은 곳을 사야 한다.

투자 목적이라면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살펴야 하지만 실수요자에게는 이 이상의 답이 필요치 않다.

내 세대에는 (다른 세대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왜 전세로 사는 것보다 자가로 매입을 해서 거주하는 게 더 나은지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매우 적절한 표현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읽었다.

‘1주택 자가 점유가 중립 포지션이고 전세로 거주하는 것은 향후 집값이 떨어지는 데 베팅하는 것이다’

물론 전세로 거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향후 집값이 떨어질 것이다’라고 확신을 해서 전세로 거주하는 건 아니다. 집을 자가로 매입한다는 게 (어떤 식으로든) 부담이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뿐이다.

그런데 처음에 느낄 수 있는 부담감을 떨치고 전세로 거주할 때와 대출을 써서 자가로 거주할 때의 장단점과 비용/편익 분석을 해보면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자가 거주가 더 나은 것으로 나올 것이다.

과도한 대출이 부담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1금융권에서 대출이 가능하다면 대부분의 경우 심각한 부담은 아니다.

어디를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책들을 읽어보는 건 무의미하다.

왜냐면 사실 그것에 대한 정답은 우리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라, 사실 나에게 가장 적합한 지역이 어딘지는 당연히 나밖에 모른다.

강남이 좋은 거 누가 모르나. 하지만 거기 아파트를 살 여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니다.

그럼 결국 직장과 가까운(교통이 편리한) 곳,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교육환경, 그외의 주변 시설 등과 나의 자금 동원력(당연히 가장 중요한 변수다)을 고려해서 결정하게 된다.

사람들의 필요라는 건, 특히 서울(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서울Greater Seoul)이란 도시에서는 큰 편차가 없어서 결국 내가 선호하는 곳이면 다른 이들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투자 목적이 아니라면 무슨 입지 분석이니 청약 방법이니(우리 세대 나이에서 청약이 될 가능성은 로또 1등보다 낮을 듯) 하는 책들은 읽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이 필요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정부 정책 분석이다. 동사무소 한 켠에 둔 10년된 윈도우XP 컴퓨터처럼 이리 저리 꼬여있어 오랫동안 정책의 흐름을 지켜봐 온 사람이 아니면 새로운 정책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채상욱 애널리스트가 최근 내놓은 이 책이 그래서 훌륭하다

그런데 이런 정책 분석이 실제로 필요하게 되는 때는 1주택 보유자가 된 이후다. 주택 보유자가 되고 나서야 정부 정책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니까.

요새들어 너무 자주하는 말이지만 문재인 정부, 아직 만 2년이 안됐다. 5월 10일이 되어야 만 2년이다. 그러고도 꼬박 3년이 더 남았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집착을 고려할 때, 엄청난 대격변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지금의 규제 레짐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역으로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는 기회가 좀 더 많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신혼부부에게는 기회가 괜찮은 편이다. 향후 몇년간 꾸준히 공급될 예정인 신혼희망타운[footnote]이것은 1순위 청약이 아닌 오직 결혼한 지 만 7년까지의 부부만 대상으로 한 것이라 청약보단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나 이미 위례에서 보았듯 거의 로또 확률…[/footnote]도 있고 무주택 요건을 충족하면 서울 안에서도 보금자리론으로 LTV 7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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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올라올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읽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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