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답을 신경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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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워크샵에서 생각지도 못한 글쓰기 퀘스트가 등장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관점에서 어떠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것이었다. 제시된 주제 중에는 기후변화도 있었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초래한, 전지구적인 영향을 미칠 대격변이다. 그 영향에 대한 추산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최근의 연구는 2100년까지 해수면이 최대 1미터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기존의 추산이 과소평가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뉴스들 읽는 게 업무의 일환이라 조금은 더 안다.

최악의 경우 해수면은 2미터까지도 상승할 수 있단다. 해수면이 2미터 상승하게 되면 인류의 식량 상당량을 생산하는 지역들이 물에 잠긴다. 시리아 내전 때는 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지만 해수면이 2미터 상승하면 그 200배의 난민이 발생한다.

하지만 또다른 문제 중 하나는 이제 이런 경고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귀에 딱지가 앉고 있다는 게다. 나는 그래서 (내게는 Antony Hegarty란 이름으로 더 친숙한) ANOHNI의 4 Degrees란 노래가 참으로 신선했다.

그는 여느 환경론자들처럼 보호의 필요성을 호소하지 않는다. 되려 칼리 여신의 목소리를 빌려 단 4도만 더 올리면 땅이 불타고 물고기가 배를 내놓고 죽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Hudson Mohawke와 Oneohtrix Point Never의 후방지원을 받아) 소리친다.

워크샵에서 제시한 주체들 중에는 물이 있었다. 만약 물의 관점에서라면 (물에 ‘관점’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부터가 너무나 인간중심적이긴 하지만) 해수면 상승은 어떻게 보일까. 4 Degrees 같은 생경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처음에 바다 속에서 단세포 생물이 진화 이후 뭍으로 올라간 것이 가장 이르게는 30억 년 전쯤이라고 한다. 이것은 박테리아나 균류 생물의 얘기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양서류 형태의 육상 생물은 4억 년 전쯤 등장했단다.

현생동물들의 세포 안에 있는 액들은 여전히 생명이 태어났던 당시의 바닷물 농도를 유지하고 있다지 않는가. 바다와 우리는 그러니까 헤어진 이후 약 4억 년 간 재회한 적이 없는 게다.

모든 생명이 물에서 왔다고는 하지만 우리와 물은 오래된 가족마냥, 너무 오랫동안은 가까이 있지 않는 편이 좋다.

목욕 정도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인간은 물에 며칠 정도 지속적으로 노출돼 있으면 피부가 박리되기 시작한다.1오히려 최근의 발견은 어떻게 해서 피부가 몇시간의 노출에도 주름지고 불기만 할 뿐 박리되지 않는지를 규명하는 데 있었다. 물 자체가 완전히 멸균 상태라 하더라도 모공이 벌어지면서 그 안에 있던 균과 박테리아에 의한 감염이 시작되고 물의 압력으로 인해 사지의 말단부터 점점 혈액을 받지 못하게 된다. 중국 정부는 정치범들을 목까지 물에 담가놓는 고문을 하곤 했는데 단 며칠만 물에 넣어놔도 몇주 동안을 제대로 서있지도 못할 정도로 몸의 근육을 제대로 못 쓰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물이 알 바가 아니다. 그에게는 그저 4억 년만의 재회일 따름일지도 모를 일인 걸. 피부의 박리와 근육의 위축과 호흡의 곤란, 사지 말단의 괴사로 하나의 개체로 기능하던 생물체는 그 작동을 중단하게 되고, 생명의 벽이 무너지고 나면 그 신체를 이루고 있던 세포들은 하나씩 기존의 조직과 분리돼 바닷물과 4억 년만의 뜨거운 해후를 나눌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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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최근의 발견은 어떻게 해서 피부가 몇시간의 노출에도 주름지고 불기만 할 뿐 박리되지 않는지를 규명하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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