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자본론’에 골목길의 진짜 자본은 안 보이더라

‘골목길 경제학자’를 자처하는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2017년 저작.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그 골목상권의 흥망성쇠에도 관심이 많은 내가 뒤늦게서야 읽었다.

해외의 사례 소개나 전국의 골목상권들에 대한 소개는 나의 관심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것이라 그냥 건성으로 넘겼다. 나는 골목상권이 생성되고 유지되는 동력의 근원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랐는데 그에 대한 분석은 다소 피상적이었다.

이를테면 저자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C-READI 모델(조선비즈 인터뷰 참조)은 한국의 골목상권을 설명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모델의 구성요소 중 하나는 바로 ‘기업가정신’인데 대체 샤로수길의 성황을 어떤 ‘기업가정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냥 어디 기업이나 관공서 PPT용으로 만든 모델이라는 인상을 떨치기가 어렵다.

저자도 “문화 자원과 이를 통해 형성된 정체성”이 핵심이라는 건 캐치하고 있지만 그러한 문화 자원이 어디서 연원하느냐에 대해서는, 그저 홍대에도 화랑이나 미술학원이 많았고 삼청동에도 갤러리가 많았다는 얄팍한 설명에 그친다.

하지만 저자가 꼽은 서울의 4대 골목상권인 홍대, 삼청동, 이태원, 성수동의 골목상권을 이용하면서 홍대의 미술학원과 삼청동의 갤러리 따위를 연상하는 소비자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기실 서울의 골목상권 중에 ‘문화적 정체성’이 살아있는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청동은 이미 십 년도 전에 정체성을 잃어버렸고 나의 짧은 견문에 성수동은 부동산 투자 관점에서의 입지 요건 덕택에 신흥 테크 자본가들의 돈이 쏠렸을 따름이다.

그나마 문화적 정체성이랄 게 있다고 할 만한 곳이라면 홍대나 이태원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두 지역에는 공통점이 하나있다.

바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지역이 주변으로 넓게 분포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골목길 자본론’의 가장 큰 맹점이 있다.

저자의 골목상권 분석에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상업지구로서의 골목과 주거지구로서의 골목을 전혀 연관짓지 않은 채로 골목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구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주거지와 상업지를 포함한 지역 전체를 고급화했다면, 서울 골목의 변화는 아직 상가에 한정된 상태다. (…) 골목길은 [highlight background=”#feec65″]적어도 아직까지는[/highlight] 거주민의 대규모 전치 현상을 유발할 만큼 상류층과 중상층이 선호하는 주거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종린, 골목길 자본론

내가 하이라이트한 부분이 저자의 분석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한국에서 골목길은 앞으로도 영원히 상류층과 중상층이 선호하는 주거 지역이 될 수 없다. 바로 거기에 한국의 골목상권이 다른 나라와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으며 한국 골목상권의 한계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주거공간에서 아파트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선호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파이낸싱, 건축 규제 등 한국인의 주거를 뒷받침하는 구조가 모두 아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이러한 구조는 확고하게 한국 사회와 경제에 자리잡은 지 오래이고 따라서 대격변 없이는 바뀌지 않는다.

왜 거주 선호의 문제가 골목상권에서 그토록 중요할까? 문화가 형성되려면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곳에 ‘출근’하는 사람 말고.

이제는 흐리멍덩하게 남아있지만 우리가 홍대나 이태원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문화적 정체성이란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그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영업’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실은 그곳에 거주를 같이 해야 어떠한 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일조할 수 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 위치한 빌딩은 대사관부터 세계적인 대기업까지 많은 다양한 조직들이 입주해 있지만 그 자체로 어떠한 문화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그저 출퇴근의 장소일 따름이니까.

골목상권을 진짜 ‘문화’가 있는 골목상권으로 만드는 것은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그곳을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냥 주말에 나들이 가는 곳에 그쳐서는 소비의 터전 외에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대부분의 서울 골목상권의 한계다. 겨우 팬시한 카페 또는 레스토랑이다. 독립서점이라고 가끔 보이기는 하는데 파는 책은 대부분 교보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나마 홍대와 이태원(남산)에서는 이런 부분에서도 나름의 정체성을 조금은 확립하고 있다.

저자는 계속 상업시설의 문제와 주거시설의 문제를 별개로 치부하면서 주거시설의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홍대에 합정, 망원동 등에 펼쳐진 광활한 빌라촌이 없었더라면, 이태원에 보광동의 허름한 주택들이 없었더라면 과연 지금과 같은 골목이 이뤄졌을까? 이런 골목을 단순히 저렴한 임대료로 영업이 가능한 다른 건물로만 인지하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간과하게 된다. 결국 문화를 만드는 건 사람들이다.

저자는 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주거지 임대료 규제는 필요할 수 있지만 상업지 임대료 규제는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어쩌면 역으로 미국 골목의 상업적 성공의 밑바탕에는 주거지 임대료 규제가 원인이 있었을 수도 있다.

실은 그런, 현실 깊숙이 박혀 있는 요인들의 연관성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나는 이 책에서 기대했었다.

저자는 정책 조언으로 가장 먼저 정부가 핵심지역에 ‘문화 인프라’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지금껏 정부가 주도한 문화 사업의 말로가 어땠는지를 떠올려보면 무람한 일이다.

그보다 정부 차원에서 풀어야 할 숙제는 따로 있다. 한국의 아파트 주거문화와 골목상권이 양립할 수 있게 만드는 게 가능할까? 홍대와 이태원 등의 핵심 골목상권의 배후에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쪽방촌’ 같은 처참한 수준이 아닌 주거 상품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게 가능할까?[footnote]무지개떡 건축이 성립할 수 있으려면 한국의 건축 규제 제도에도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사실상 한국의 소규모 건축은 거의 아무런 관리감독을 받고 있지 않아 건물이 수십 년도 버티지 못한다.[/foot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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