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사무소 폭파 후에도 대북전단을 보내실 건가요? 이는 윤리적으로 부당한 질문이다.

North Korea demolishes the Inter-Korean Liaison Office in Kaesong

남북관계는 김여정의 6월 4일 담화문 발표 이후 16일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의 폭파까지 2주도 안되는 기간동안 급격히 악화됐다. 남북관계에 인덱스라는 게 있다면 거의 코인급으로 하락했다고 봐도 과장이 아닐 터.

그 시작점에는 박상학 씨의 자유북한운동연합으로 대표되는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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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민군 차원의 움직임도 발표돼 당분간 분위기는 더욱 안 좋아질 것 같다보니 여기저기서 박상학 대표에게 ‘연락사무소가 폭파됐는데 당초 발표한대로 25일경에 삐라를 뿌릴 계획이냐’는 질문을 한다. (나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아무리 생각해도 취재윤리상 적절치 않다. 나의 논지는 이렇다:

  • 약자에 대해 부당한 비난이나 공격이 향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저널리스트의 취재 윤리다
  •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는 소수자이자 약자의 위치에 있다
  •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 등의 도발에는 객관적인 인과 관계가 없다
    • 시간 순서상, 그리고 북한 측이 주장하는 원인으로서의 ‘상관’ 관계는 있으나 이는 객관적인 인과로 볼 수 없다 (correlation doesn’t imply causation)
    • 왜냐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합당한 표현 행위에 대해 북한은 부당하게 협박과 도발을 했기 때문이다 (참조: 국가인권위, 대북전단활동 제지에 대한 의견 표명, 2015)
      • 북한의 대응은 법률이나 교전수칙에서 중요시하는 ‘비례성의 원칙’에 크게 어긋난다
      • 한국 정부가 전단 살포를 안 막는다고 비난하고 자신들도 대남전단을 살포하는 선에서 멈췄다면 비례성을 인정할 수 있겠으나
      • 북한은 한국의 납세자가 180억 원 가까이를 부담한 건물을 폭파했고 그 이상의 협박을 가하고 있다
    • (부차적인 사항이지만) 현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대북전단 문제는 핑계에 가까웠다고 분석하고 있다 (참조: 안드레이 란코프, 국내 전문가들)
  •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에도 대북전단 살포를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은 일종의 유도신문이다
    • 둘 사이의 ‘객관적인 인과 관계’를 상정하기 때문이다
    • 이러한 질문에 취재원이 답을 하게 만들면 독자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위협은 무시하고 전단 살포를 하겠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 이미 이번 사태로 한국 내 공론장에서 탈북자에 대한 혐오 감정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에서 이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의 도발을 연결짓는 질문은 소수자·약자 혐오에 기여할 수 있는 윤리적으로 부당한 질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질문을 해야할까?

대북전단에 대해 연락사무소 폭파와 군사적 긴장 조성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를 먼저 따지고(당사자에게 묻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전문성 있는 제3자의 의견도 들어어 햔다) 그 다음에 여전히 계획대로 할 것인지를 묻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 기사에서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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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 responses to “연락사무소 폭파 후에도 대북전단을 보내실 건가요? 이는 윤리적으로 부당한 질문이다.”

  1. 조남준 Avatar
    조남준

    안녕하세요, 글을 읽다 궁금증이 있어 댓글 남깁니다.

    시간 순서상, 그리고 북한 측이 주장하는 원인으로서의 ‘상관’ 관계는 있으나 이는 객관적인 인과로 볼 수 없다 (correlation doesn’t imply causation)
    왜냐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합당한 표현 행위에 대해 북한은 부당하게 협박과 도발을 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논지가 어떻게 성립되는 것인지 궁금한데요. 여기서 합당한ㅡ부당한 은 대한민국 내부에서 성립되는 기준이고, 설령 북한이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에 표현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현 상황에 맞추어볼 때 북한은 실질적인 규약 준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이 행위한 연락사무소 폭파에 있어 더욱 합당ㅡ부당의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데요. 합당ㅡ부당을 적용할 수 없을 때에는 저 논지가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왜냐면 합당ㅡ부당으로 인과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행위자 또한 같은 기준을 준수하고 지키려는 의지와 그에 대한 표명이 지속적으로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 추가적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1. 제가 북한의 대응이 ‘부당’하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비례성의 원칙에 크게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행위 자체의 정당성은 말씀하신대로 한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만 성립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북한이 과거 고사포 사격으로 대응했던 것이나 이번에 연락사무소 파괴+ 등으로 이어지는 대응을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부당합니다.

      지금 북에서 대남전단 살포하겠다고 인쇄도 하고 그러고 있는데 연락사무소 파괴 전에 이렇게 했다면 (대북전단의 정당성 문제를 떠나) ‘합당’한 대응이었겠지요. 비례성을 지키고 있으니까요.

  2. […]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대북전단 문제에 대한 글을 썼을 때도 이런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중간의 논지를 짜봤다. 그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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