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 News에 실린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인터뷰는 영문인데다가 주요 내용만을 간추려 넣은 것이라,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전문을 올립니다. 데드라인에 쫓기느라 넣지 못한(그래서 아쉬운) 부분도 있고, 요청에 의해 넣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인터뷰는 10월 14일, 이 전 장관님의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1시간 반 가량 이루어졌습니다.
▶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북핵 문제와 유라시아 교류 협력에 대해 합의했다. 러시아가 남북 관계나 6자회담 구도에서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두 가지 측면에서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고 본다. 첫째로 러시아의 국력 범위 내에서 한반도 정책은 그 우선 순위가 많이 떨어져 있다. 러시아가 자신의 중점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부분이 있다면 미국과 각을 세우고서라도 강하게 나가겠지만 한반도 문제에 대해 그런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둘째로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이 시기별로 일관성이 없었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러시아는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는 자신이 유럽 국가라는 정체성을 많이 드러냈다. 자원 개발 등으로 국가경제가 호전되자 특유의 유럽지향이 강해지고 자원의 유럽수출을 통해 유럽에서 주요한 부를 창출했기 때문이었다. 동북아 정책은 후순위였고 유럽 정책을 우선했다. 다시 요즘에서야 유럽과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동아시아에 자원을 판매하는 문제가 중요해지면서 동아시아가 중요한 것처럼 부각이 되고 있다. 이렇듯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이 유럽지향적 정책과 서로 맞물리면서 그 중요성이 들쭉날쭉했다. 그래서 러시아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 우리가 큰 신뢰를 갖기가 어렵다. 한국의 관료들에게 물어보아도 그 영향력에 대해 회의적이다.
▶ 이번 공동성명에서 러시아는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보다 훨씬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북한 문제에 대해 자유롭다. 그래서 등거리 정책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실제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와 북핵 문제에 대해 논의할 때 공개적으로 언명할 수 있는 부분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북한의 핵을 불용한다거나 핵실험에 대해 우려한다는 것은 이미 유엔 안보리에서 합의하였지만, 박근혜 대통령과의 공동성명에서는 이를 같이 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러시아는 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중국에 비해 훨씬 약하다는 것이다. 그런 발언에 대한 책임에서 더 자유롭다.
한편으로 러시아가 한국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회견에서 푸틴은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강조했다. 러시아는 이런 식으로 등거리 정책을 쓰고 있다. 이는 어느 쪽에도 구속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어느 쪽에 대해서도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 오바마 정부 들어서 미국의 대북 정책에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여태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다.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북한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미국에게 한반도 문제는 중요한 것이기는 하다. 다만 그 중요성이 중동에 미치지 못했을 뿐이다. 미국은 줄곧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었고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발생한 이래 지금까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북한 문제가 1순위에 든 적은 없었다.
참여정부 시절, 내가 NSC 사무차장을 하면서 북핵 문제를 직접 다루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부시 정부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요구했다. 첫째로 미국과 북한이 직접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로 대북 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핵포기로 하자는 것이었다. 셋째로 북한 핵을 포기시키는 것에 대해 포괄적으로 합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거부했다.
당시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 인권 문제라든지 나중에 BDA 사건으로 이어진 불법 자금세탁 문제에 비해 북핵 문제가 우선순위를 차지한 적이 없었다. 핵문제 하나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9.19공동성명에 합의해놓고도 진실조차 무엇인지 애매모호가 끝난 BDA문제로 북한과 대화를 거부하고 제재를 가하면서 핵문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2006년 10월, 북한은 핵실험을 실시했다.
현재 워싱턴 내에는 대북 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해 있다. 북한과는 대화를 해도 성과를 얻을 수 없고, 어떠한 합의를 하더라도 북한이 사기를 치기 때문에 어떠한 성과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회의론은 북한에 대한 강한 혐오 정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미국의 대북 정책에 비합리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북한이 워낙 싫기 때문이다. 미국 자체적으로나 유엔 안보리를 통해서나 북한에 계속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제재가 성공했는지의 여부를 검토해서 효과가 없다면 정책을 바꾸는 것이 정상이다. 실제로는 아무런 성과도 없는데 계속 제재하는 시늉만으로 면피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에 대한 혐오 정서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워싱턴 내의 어떠한 협상론자도 나서기가 어렵게 만든다.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에 대해 창의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동력이 미미하다.
이런 것들이 미국의 대북 정책의 문제이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낮은 것도 문제이지만 워싱턴에 북한에 대한 혐오정서가 만연해 있어 창조적인 대안을 낼 수 있는 동력이 없다.
▶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워싱턴을 견제하는 유일한 힘이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두 가지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북핵이 동북아 평화를 위협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북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북한이 핵개발을 한다고 해서 압박으로 체제가 위험해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 체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하고는 있지만 북중 국경에서의 일반적인 교역은 오히려 증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면서 북한을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국제제재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북한의 경제상황은 비록 조금씩이지만 나아지고 있다.
그리하여 한반도에는 하나의 교착 국면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제재하고 있다는 명분을 갖고 있으며, 중국은 북한을 어느 정도 견제하고 또 지원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지는 않게 하고 있다. 북한은 또 나름대로 제재는 당하고 있지만 핵은 보유하고 있으며 그럭저럭 먹고 살 만은 하다.
미국에서는 창의적인 대안이 나오지 못하고 있고, 중국은 현재의 교착 국면을 만드는 수준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결정적인 변수는 결국 우리 정부뿐이다. 한국 정부만이 확실하게 미국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내부에서 북한과의 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강하고 북한에 대한 혐오 정서도 강하지만, 한국 정부가 대화를 권유하고 주도권을 행사하면 이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본다.
▶ 부시 행정부가 2006년 10월의 북한 핵실험 이후 입장을 급격히 바꾸어 2007년 2.13 합의를 하게 되었다. 그 계기는 무엇인가?
부시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주장했던 세 가지 원칙(북미 직접 대화, 핵문제 최우선, 포괄적 합의)에 대해 모두 부정적이었는데 갑자기 입장이 바뀌어 우리도 무척 놀랐다. 2006년 11월의 중간선거 결과 때문이라고 본다. 공화당이 참패를 당하면서 부시 대통령도 강경 군사주의는 곤란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결국 럼스펠드가 경질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한다. 박근혜 정부가 무엇에 영향을 받을까 생각해 보면 역시 선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결국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우리 정부가 아닌 국내 정치라는 말인가? 과연 미국 정부가 우리 말을 들을까?
북핵 문제에 대해 나와 같은 시각을 가진 사람이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미국을 설득하는 쪽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지금 선거결과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자신들이 잘하고 있으며, 미국과도 잘 공조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의 이런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 미국에 대해 뭔가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반도 문제는 한국이 핵심적인 당사자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이 워싱턴에 이야기하면 워싱턴 또한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부시 정부는 역대 미국 정부 중에서도 동맹국 관계를 가장 악화시키고 일방적인 군사주의를 추구했다. 반면에 오바마는 동맹을 중시하며 동맹의 말에 귀 기울일 자세가 되어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좋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바마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려는 기본적인 정책 방향은 갖고 있다. 다만 북한과의 협상에서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과 워싱턴에 팽배한 회의론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 정부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 보수를 표방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상대적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에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진행을 살펴보면 원론적인 이야기만 있고 구체적인 실행이 아직도 불투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나도 기대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중한 성격이라고도 하고, 또한 과거에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으니까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굉장히 격앙되어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핵문제 때문에 남북관계와 대북정책 전반이 다 말려들어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이번 정부에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대북정책의 체계가 없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통일부에서 작성한 자료를 보면 온갖 좋은 말들은 다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대해 어떠한 청사진을 갖고 있으며 5년 동안에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정책적 수단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배열할 것인지 그 과정을 그리고 있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나마 DMZ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겠다는 게 눈에 띄는 구체적인 정책 수단이다. 그런데 그 치열한 DMZ에 평화공원을 만들 정도의 남북관계를 이루겠다면 NLL 문제 같은 건 이미 해결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NLL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로드맵도 없다.
역대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 중에서 ‘프로세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처음이다. 프로세스를 우리말로 옮기자면 ‘과정’ 정도가 될 것인데 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정작 ‘프로세스’는 없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푸틴 방한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이 풀어야 하는 것인데 러시아의 대통령에게 주도권을 준 꼴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초에도 인도네시아에서 시진핑을 만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발전에 주력하도록 설득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 또한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남한의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북한에 이렇게 해달라고 말하면, 중국에게 남북한을 다 활용할 수 있는 레버리지를 주게 된다. 남과 북의 문제는 남과 북이 대화를 해서 풀어야 대중, 대미 외교에서도 우리가 힘이 생기는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체계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 지난 개성공단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언론에서는 개성공단 문제에서 우리 정부의 정책이 주효한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북한에 대해서 훈계적인 정책을 쓰면 이번처럼 다시 저자세로 나올 것이라는 잘못된 교훈을 주는 것 같아 우려된다.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인력을 철수시킨 것이 핵실험을 감행한 것보다 더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인력을 철수시키는 일이 벌어지자 현재 그들이 국가 핵심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경제발전을 위한 외자 유치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를 깨닫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 저자세로 나왔다. 그렇지만 북한은 다시 이산가족 상봉을 무기한 연기시켰다. 우리 정부의 훈계적인 접근법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변한 게 없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한다. 훈계적인 정책을 쓰려면 정책 대상자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북한에 대해 어떤 영향력이 있는가. 그나마 유일한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영향력일 텐데, 5.24조치는 우리 기업들만 도산시키고 실패했다.
아무리 북한이 밉더라도 협상 상대로서 인정을 하고 협상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훈계적으로 나가면 앞으로도 남북관계에서 진전을 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북한과 일본 사이의 대규모 경협 이야기 등이 나오고 있다. 이러다가 남한이 영영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북미관계가 어느정도 진전되지 않고 북한과 일본 사이의 대규모 경협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 일본과 북한 사이에서 여러 가지 움직임이 보이기는 하지만 결국 일본은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과거에 유사한 전례가 있다. 1990년에 일본 정계의 실력자였던 가네마루 신이 자민당, 사회당, 공명당 3당 연합 북한 방문을 주도한 적이 있다. 당시 김일성도 만나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지만 이후 북핵 문제가 터지면서 미국의 견제를 받아 모두 흐지부지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북핵 문제가 진전이 되지 않고 있는데 일본이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걸 미국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 북한 문제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북한 문제는 두 단계의 층위로 나누어서 파악해야 한다. 첫째는 생존, 현상 유지의 단계이다. 이를 흔들기 위해 북한의 핵실험 등에 대해서 국제사회가 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재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도 드러난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북한과 중국 사이에 국경이 열려 있고, 중국의 거대한 경제 규모 때문에 북한은 중국과의 교역만으로도 최소한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북한이 지금 다시 핵실험을 한다 하더라도 이 첫째 단계의 현상 유지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 위에 둘째로 경제 발전의 단계가 놓인다. 김정은은 현 상태에 만족하지 못한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생래적인 정통성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걸 알기에 정통성 확립을 위해 경제 발전을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핵과 경제를 병진시키겠다는 이야기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김정은이 경제 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 원하는 것은 단번의 도약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국의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구상들은 결국 대외 관계가 좋아지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최소한 6자회담 구도에서 북한 핵문제가 긍정적으로 진전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북핵 문제가 걸려 있는 층위가 첫째 단계가 아닌 둘째 단계라는 데에 있다. 만일 북핵 문제가 북한이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생존 전략’의 차원에 걸려 있다면 북한도 핵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양보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북핵 문제는 이를 가지고 서방이 제재를 가해도 북한의 생존을 위협하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 북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것이다. 대신에 경제발전에는 치명적인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즉, 북핵문제는 이제 북한의 경제 발전 전략과 연동하여 풀어가는 것이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 앞으로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북한의 경제 발전 전략이 핵문제로 인해 교착되면 결국 실패할 것이다. 그럼 북한은 다시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참 어려운 문제이다. 북한이 하고 싶어하는 경제 발전 전략을 실현하게끔 해주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쪽으로 유도해야 하는데 이제는 핵 포기가 옛날보다 더 어렵게 되었다. 리비아의 카다피를 보라. 핵을 포기하면 정권을 보장하겠다고 하여 핵을 포기했고 심지어 김정일에게도 핵을 포기할 것을 권했다. 그런데 결국 나토의 공습을 받고 카다피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렇지만 북한 핵은 동결시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아직까지는 북한이 핵을 무기화시키는 단계에 이르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북한은 대내적으로 핵 보유를 선전할 수 있고 국제사회 무기화되기 전에 핵을 동결시킬 수 있는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다. 국제사회는 그 지점을 잘 잡아서 북한을 협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즉, 북핵동결을 1단계 목표로 삼고, 그 뒤 북핵을 완전 폐기하는 2단계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나 5.24조치 같은 제재가 별다른 효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점검하고 평가하지 않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북한에 대한 혐오 정서 때문이다. 이러한 혐오 정서가 역설적으로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는 한미 양국의 부도덕함을 낳고 있으며, 우리의 국가이익을 훼손하고 있다.
▶ 최근에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남북관계가 발전하면 할수록 인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지리라 본다. 그런데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 인권문제만이 계속 부각되면 정부 차원에서는 남북관계에도 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다. 왜냐면 정부는 남북관계를 전체 국가전략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동참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민간은 이런 측면에서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 국내의 일부 민간 단체에서 북한에 전단지를 날리자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하여 문제가 되었던 적도 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단지 살포를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과연 적절한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참여정부 떄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이 열리고서 NLL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교전을 중단하고 상호비방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상대방에게 전단지를 날리는 행위도 상호비방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이후에 전단지가 날아 왔다며 북한이 강력하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알아보니 탈북자 단체에서 그런 것이었다. 여기서 탈북자들은 민간인이라는 이유로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시 우리 군에 북한에서 보낸 전단지를 군인들이 습득한 게 있으면 가져다 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북한에서 보낸 게 있다면 우리도 그걸 내밀면서 맞대응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열흘 후에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답이 왔다.
북한 인권문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권문제만이 북한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인권문제를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방법론의 문제이다. 정부와 민간은 자신의 처지에 맞게 다양하게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전단지를 날리는 방식은 군사적 긴장완화와 최소한의 평화 유지를 위해 남북이 합의한 사항을 우리가 어기는 일이 되기 때문에 재고해야 한다고 본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어렵게 만든 안전 보장 장치 중의 하나 아닌가.
▶ 민간 차원에서 건설적으로 남북관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남북관계는 정부 혼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정부는 물론이요 민간에서도 할 일이 많다. 우리가 북한을 정말 변화시키기를 원한다면 광범위한 접촉이 필요하다.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과정 속에서 민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민간과 정부가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는 부분을 잘 찾아서 배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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