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여기 내부에서도 모바일 저널리즘(흔히 앞 두 글자씩만 따서 MoJo라고 부른다)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걸 보고 많이 놀랐다.
가장 전통적이고 그래서 보수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조직이 그런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래서 나도 더 늦기 전에 서둘러 #MoJo에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두걸 쇼Dougal Shaw가 선구적으로 모바일로만 촬영한 영상을 BBC News TV에도 몇차례 방송 태운 적 있고 자신의 경험을 블로그와 영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MoJo의 대해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할 말이 많겠지만 그건 일단 차치하고) 내가 항상 불만이었던 것은 이런 모든 종류의 논의와 실천이 다 애플 제품을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음악(사운드)이나 영상을 하는 사람들이 오직 애플 제품에서만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있던 시절도 물론 있었지만 이제는 IBM 호환 / 윈도우즈 머신의 안정성이 매우 좋아진 지 오래다. 그리고 애플의 폐쇄적인 생태계는 나같은 대자유인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윈도우 머신과 안드로이드로도 훌륭한 모바일 저널리즘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상 편집이야 FCPX가 없어도 프리미어 프로나 다빈치 리졸브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윈도우 머신은 성능은 맥보다 훨씬 좋으면서 가격은 더 저렴하다.
딱 한 가지 BBC에서 일하면서 골치 아픈 점은 BBC에서 사용하는 표준 영상 편집 툴이 FCPX라 자막이나 인트로/엔딩 인서트 템플릿이 모두 FCPX 전용만 존재한다는 것이었지만 BBC용 영상을 작업하지 않을 경우에는 문제가 될 게 아니었다.
카메라 성능이 아이폰이 킹왕짱이던 시절도 지난 지 오래다. 구글의 플래그십 모델인 픽셀 시리즈는 새로 나올 때마다 벤치마크 최고점 기록을 갱신한다. 특히 센서의 크기가 작을 수밖에 없는 스마트폰 카메라 특성상 쥐약인 저조도 환경에서 센서 크기의 한계를 AI로 극복했다. 구글의 HDR 처리를 거치면 저조도에서 찍은 사진도 놀라울 정도의 선명함을 보여준다.
픽셀2가 나오면서 이미지 흔들림 보정 기술도 더 발달해서 이제 OIS/EIS를 결합시켜 거의 짐벌이 필요없는 정도의 안정된 영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집념만 있으면 非애플 기기로도 훌륭한 MoJo를 실천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많은 난관에 부딪혔고 지금은 ‘내가 졌다’를 외친 상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1. 관련 액세서리가 모두 아이폰 기준으로 나온다
모바일로 영상을 촬영해보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난관이 바로 사운드다. 모바일 기기의 내장 마이크에는 품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외장 마이크가 필수다. 과거에 거의 모든 기기가 헤드폰 잭을 달고 있던 시절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아이폰7부터 헤드폰 잭이 사라지고 구글도 픽셀2부터 아이폰을 따라가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기존의 많은 오디오 관련 액세서리들이 3.5mm 잭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폰7이 잭을 없앴을 때 아무래도 큰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을 (물론 동글을 쓸 수는 있지만) 했는데… 웬걸 그때부터 라이트닝 케이블을 사용한 오디오 액세서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라이트닝 케이블로 연결되는 마이크 프리앰프부터 3.5mm 커넥터 대신 라이트닝 케이블 커넥터를 단 핀마이크lav mic까지… 반면 아직까지 USB-C로 연결하는 프리앰프나 마이크는 시중에 나온 게 없다.
그밖에도 (필수는 아니지만) 추가로 달아서 쓰는 렌즈 등등도 다 아이폰을 기준으로 해서 나온다.
음… 확실히 애플이 하면 다르긴 하다.
2. 안드로이드 파일 시스템의 한계 (치명적)
사실 관련 액세서리가 많지 않아도 어쨌든 외장 마이크를 쓸 수는 있고 그래서 기본 이상의 촬영은 안드로이드로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로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는 걸 4K로 촬영을 하다가 깨닫게 됐다. 바로 파일 용량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여전히 과거의 FAT32 파일 시스템을 쓰고 있다. 윈도우즈에서 쓰고 있는 NTFS나 고용량 플래시 드라이브 등에서 쓰는 exFAT 같은 파일 시스템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적재산이라 사용료를 내야 쓸 수 있다.((루머에는 이게 기기 하나당 $15라고도…))
FAT32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한계는 바로 파일 하나의 용량이 4GB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1080p 해상도로 촬영을 하더라도 4GB 용량 한계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4K 해상도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단순 계산을 해봐도 1080p에 비해 용량이 4배는 커진다. 실제로 촬영을 해보면 7분~12분이 지나면 이미 4GB를 초과하게 된다.
안드로이드에 기본으로 내장된 구글 스톡 카메라부터 많은 서드파티 앱들이 파일용량이 4GB가 넘어갈 경우 자동으로 새로운 파일을 만들어 계속 촬영하는 기능을 제공하지만 DSLR 카메라 등과는 달리 그 이음새가 거칠다. 기존의 파일을 닫고 새로운 파일을 여는 과정에서 끊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4K로 촬영할 경우 12분 이상의 (끊김 없는) 롱테이크는 불가능하다는 게다.
4K 촬영이 중요한 까닭: 카메라 하나로도 여러 대의 효과
MoJo에서 4K가 중요한 것은 4K 해상도로 재생을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4K 해상도로 촬영한 게 있으면 편집 과정에서 이를 확대하여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사실상 두 대 이상의 카메라를 사용한 것 같은 효과를 한 대로 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카메라를 고정시켜놓고 촬영할 때 유용하다. 기동성을 위해 한 대만 놓고 촬영해도 이를 2~4배 확대시키면 편집 과정에서 다양한 구도를 연출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4K 촬영이 연속으로 10분 이상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큰 약점이 된다.
반면 아이폰은 애플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파일 시스템 APFS를 쓰고 있으며 여기에는 개별 파일 용량의 제한이 사실상 없다. 4K로 60fps를 하더라도 일단 내장 메모리가 하용하는 범위 안에서는 얼마든지 촬영이 가능하다.
하도 답답해서 레딧에 글도 써봤고 플래시 드라이브나 SD카드를 외장으로 연결하여 쓰는 괜찮은 방안도 들었지만 구글 픽셀2 XL은 외장 메모리도 무조건 FAT32만 인식을 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격파하는 21세기에 이게 무슨 막장이냐 구글아…
(한편 삼성 갤럭시에서는 외장메모리에 대해 exFAT을 지원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는 직접 테스트를 해보지 않아서 확인하지 못했다)
결국 구글이 정신차리고 FAT32 이상의 파일시스템을 지원하도록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개선하든지 어떤 귀인이 나타나 촬영 중인 비디오 클립이 4GB 이상 될 경우에도 끊김이 없이 새로운 비디오 클립을 만들어 주는 앱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냥 제기럴 내가 아이폰을 사서 쓰는 게 더 빠르겠다.
[box title=”업데이트 (2018-01-30)” box_color=”#777777″]”촬영 중인 비디오 클립이 4GB 이상 될 경우에도 끊김이 없이 새로운 비디오 클립을 만들어 주는 앱…”
그런데 그런 앱이 나와버렸습니다. 아이폰 비디오 촬영앱의 절대강자 FiLMiC Pro의 안드로이드 버전입니다. 최근 업데이트 되면서 클립의 용량이 4GB가 넘으면 자동으로 새로운 클립을 생성하는데 직전 클립과 30초 정도 겹치게 만들어 놓아서 나중에 매끄럽게 이어붙이기가 더 좋습니다.
처음에 이 기능이 제 폰에서 잘 작동 안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제작사에 문의했더니 클린 인스톨을 다시 해보라고 해서 그리 했더니 잘 되는 거 같네요. 휴유~ 앱등이 안되어도 돼서 다행ㅋ[/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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