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내 스스로에게 부과했던 과제는, 그래 이 기회에 영상을 좀 배워보자, 뭐 그런 것이었다.
신생 한국어 서비스가 갖고 있는 유통 채널의 한계로[footnote]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다음 1분, 그리고 BBC 웹사이트가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유통 채널의 전부다.[/footnote] 텍스트 기사의 노출도가 내가 지금껏 언론사에서 일해본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네이버에 ‘입점’을 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도 이 과제의 시급성에 무게를 더했다.
정말로 이젠 비디오가 아니면 내가 만드는 컨텐츠가 별다른 의미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심리적 장벽
나는 이전에 영상 촬영과 편집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심리적 장벽을 극복하는 게 가장 큰일이었다.
안에서 일해보기 전에 갖고 있던 선입견과는 달리 BBC는 의외로 모바일 저널리즘이나 이런 쪽으로는 매우 전향적이었다. 내부적으로 세미나도 꾸준히 진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 시점이 내가 막 BBC에서 일하게 됐을 때와 겹쳤다.
그때 BBC에서 접하게 된, 소위 ‘모바일 저널리즘'[footnote]두 글자씩 이니셜을 따서 ‘MoJo’라고들 이른다.[/footnote]을 선도하고 있던 두걸 쇼의 블로그 글들(2016년, 2018년)이 내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두걸 쇼가 아이폰으로 촬영한 아이템 몇몇은 BBC의 TV 채널에도 방영됐다. 이전에 방송 쪽에서 일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커다란 ENG 카메라쯤은 있어줘야 방송 뉴스를 찍을 수 있다는 선입견의 벽이 높았던 나에게는 큰 도움이었다.
일단은 두걸 쇼가 BBC 내부 세미나에서 소개했던 자신이 사용하는 장비들 리스트와 그가 추천한 교육용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내게 필요한 장비들의 목록을 추려냈고 이것들을 구입했다.
유튜브로 습작
이전에 영상을 다뤄본 경험이 전무했던 내가 처음부터 BBC용 아이템을 만드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 인력이 시행착오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웠던 것도 아니었고 해서 나는 일단 개인 시간을 활용해 유튜브 방송부터 만들어보기로 했다.
뭘 배우기 위해 습작을 좀 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습작’이라고 해서 대충 하면 결국 아무것도 배우는 게 없다. 습작 자체를 하나의 과업으로 여기고 덤벼들지 않으면 안된다.
기왕 하는 유튜브, 전국구급 유튜브 채널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하고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방탄커피와 그와 연관된 섭생법을 소개하는 채널을 만들었다. 이제 한 반년 정도 됐는데 어느덧 구독자 1,000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처음에는 윈도우 머신에서 안드로이드 폰으로 촬영한 후 어도비 프리미어로 편집을 했다. 초반엔 정말 좌충우돌이었다. 4K 해상도로 촬영하려니 파일시스템 등등으로 문제가 많았다.
다들 그렇게 앱등이가 되는 거야.
그래서 이젠 폰은 아이폰, 컴은 맥북프로, NLE는 파이널컷 프로를 쓰고 있다.
폰으로 찍은 영상, 화질이 괜찮을까?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이 200만원 넘는 DSLR로 찍은 것과 견줄 수 있을까? 사실 맑은 대낮에 찍으면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분간이 쉽지 않다.
저조도 상태, 그러니까 야간이거나 실내가 아닌 경우를 제외하면 낮의 야외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영상도 DSLR 못지 않다.
우리집 왕여사가 기획한 인터뷰 촬영을 내가 돕게 되어 마침 그간 유튜브로 갈고 닦은 모바일 저널리즘을 100% 실전 테스트할 기회로 삼았다.
위의 영상은 아이폰8+와 아이폰6S로만 찍은 것이다. 당시 풍광이 너무 좋아서 초반에 배경샷을 일부러 넣었다.
다만 햇볕이 너무 강렬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해가 움직여 중반부터 노출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야외 촬영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어느 정도 구름이 낀 상태라는 걸 크게 깨달았다.
모바일로 촬영을 하다보면 오히려 영상 자체보다는 음성 녹음이 훨씬 까다롭다는 걸 알게 된다.
뉴스 아이템은 거의 대부분 근접 인터뷰에 의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다.
나는 핀마이크lav mic를 사용하여 3.5mm 헤드폰 잭을 갖고 있는 옛날 아이폰 모델과 아이패드로 오디오를 따로 녹음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footnote]3.5mm 헤드폰 잭을 갖고 있는 구형 아이폰 모델들은 와이어리스의 훌륭한 대용품이 된다. 물론 어디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footnote]
BBC에서 시도한 것들
편집을 오롯이 혼자서 한 첫 BBC 아이템은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너무나 안타까운 일을 겪고 있는 이찬호 씨의 사례였다. 워낙 촬영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그 다음에 시도한 것은 최근 발행된 불법주차 신고 앱 소개였다. 내가 직접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CG(어도비 애프터 이펙트를 썼다)로 그래프 애니메이션도 보여주는 시도도 했다.
촬영은 우리 피디님의 촬영이 주가 됐고(GH4에 로닌S 김벌까지 들어가니 그야말로 ㅎㄷㄷ) 내 아이폰으로 촬영한 부분을 몇 군데 추가했다.
대단한 스킬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촬영과 편집을 할 줄 알게 되니 사전에 아이템의 선정과 기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기획을 잘 해놓아야 현장에서 시간 낭비하는 일이 확실하게 줄어든다.
향후 계획과 목표
다음번에는 순전히 아이폰만 갖고 촬영한 후 편집과 CG까지 혼자서 다 처리하는, 그야말로 옛날 약장수처럼 혼자서 북치고 장구쳐보는 게 목표다. 결국 모바일 저널리즘이라는 건 음악으로 치면 원맨 밴드 같은 것이니까.
보다 장기적으로는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ation의 다양한 양식을 소화하고 구사하고 싶다. 저널리스트가 전문가 행세할 수 있던 것도 옛날 일이다. 이젠 얼마나 복잡한 현실을 보다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보여줄 수 있느냐가 더욱 주된 임무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위한 훌륭한 수단 중 하나가 데이터 시각화란 생각을 요새 많이 한다.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면 HTML5 등을 익혀서 유튜브나 페이스북의 플랫폼의 구속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싶다. 모바일웹을 그대로 앱으로 구현해도 될 것이고 이걸 Firebase 같은 것으로 매끄럽게 연결할 수도 있을 테다.
왜 모바일 저널리즘인가
‘모바일’ 저널리즘이란 표현 때문에 아무래도 스마트폰을 먼저 떠오르기 쉽지만 꼭 MoJo가 스마트폰으로만 이루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MFT 사이즈만 해도 충분히 mobile…할 수 있다.[footnote]하지만 나는 몇가지 이유로 결국 스마트폰이 모바일 저널리즘의 핵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혼자서’ 할 수 있으려면 스마트폰이 아니면 좀 어렵다.[/footnote]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모바일 저널리즘의 정의란 장비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컨텐츠 생산의 전 과정을 저널리스트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에 결국 저널리스트로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해야 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컨텐츠 생산에 투입이 가능한 자원의 양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처럼 TV나 신문이 저널리즘 컨텐츠의 거의 유일한 채널이던 시절에는 개별 컨텐츠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이 클 수 있었다. 어차피 담을 수 있는 컨텐츠의 개수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이제는 상황이 너무 다르다. 채널도 많아졌고 담을 수 있는 컨텐츠의 개수는 무한에 가깝다.
이렇게 되면 개별 컨텐츠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은 당연히 급격히 줄 수 밖에 없다.
물론 제아무리 유튜브 시대라도 덩치가 큰 레거시 미디어들은 아이템 하나에 작가 하나, 촬영 담당 하나, 편집 담당, CG 담당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은.
하지만 결국은 저널리스트가 다 해야 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술이 좋아져서 그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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