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광고에 대한 메모

광고는 결국 뉴스여야 한다. 뉴스가 아니라면 쓸모없다.
—아돌프 S. 옥스 (1858~1935), 뉴욕타임즈 발행인

아돌프 옥스의 금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시대가 지나면서 무엇이 뉴스인지, 다시 말해 ‘정보성(소구력)’을 갖는지는 계속 바뀌어 왔다는 게 중요하다.

옥스의 시절의 광고는 차분하게 광고 대상이 독자에게 얼마나 유용한지를 설득하는 기사식 광고가 많았다. <뿌리깊은 나무>의 발행인으로 잘 알려진 한창기 선생이 냈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광고가 당시에는 파격으로 통했는데 이는 미국식의 광고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광고. 한국 브리태니커 광고를 찾을 수 없어서...
<뿌리깊은 나무> 광고. 한국 브리태니커 광고를 찾을 수 없어서…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곧 기술)가 바뀌면서 어떠한 방식이 가장 높은 소구력을 갖는지도 (혹은 가장 주된 소구방식이 되는지) 또한 바뀌어왔다. 신문의 시대에는 차분한 설득조의 광고가, TV의 시대에는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의 광고가 그랬다. 그렇다면 온라인과 SNS의 시대에는 어떠한 광고 방식이 그런 위치를 점하게 될까?

자발적인 공유를 유도할 수 있는 광고가 새로운 시대에 가장 높은 소구력을 갖는 광고가 될 것이다. 이 ‘자발적인 공유’라는 짧은 표현에는 많은 함의가 담겨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인지되지는 못하고 있다. 당장 떠올릴 수 있는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 뉴스의 가치는 ‘새로운 것’보다 ‘먹기(이해하기 or 즐기기) 쉬운 것’으로 더 빠르게 변화한다
  • 컨텐츠를 공유’하는 행위가 바로 독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행위의 일환이 된다
    • 컨텐츠의 공급자와 소비자의 눈높이는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
    • 다시 말해, 공급자가 소비자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대변하여’ 말해야 한다
  • 미디어는 메시지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것보다 더더욱
    • 소구대상의 세분화는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의 채널별로 (혹은 그 이상) 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왜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 것일까? 지난 100여 년동안 인류의 정서에 대격변이 있었던 것인가? 정반대다. 다만 변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매개(기술)일 따름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비용이 급격히 감소하자 기존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존에는 ‘자본화’를 상상할 수 없던 분야에서도 자본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은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다. (어느 정도는 오프라인에 기반한) 사람들끼리의 관계망을 온라인에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면, 이제 그 관계망을 관리한다는 위치는 대단한 자본이 된다. 페이스북은 그냥 이 제품을 좋아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내 친구가 이 제품을 좋아한다고 일러줄 뿐이다. 이쪽이 더 광고 효과가 크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의 문제 ((나는 가끔씩 위키피디아 같은 식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소셜네트워크를 상상하곤 한다))는 차치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현재진행형의 변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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