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대체 ‘공동정범’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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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호평을 받은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도중에 계속 떠오른 질문이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그 의문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공범이면 공범이지 공동정범은 또 뭐란 말인가.((공범공동정범은 다른 개념이다.)) 이 낯선 법률용어를 용산 참사와 결부지어 이해하려면 공동정범이란 개념이 어떻게 성립하는지, 그리고 공동정범이 성립하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를 알아야 한다. 판례는 이렇게 말한다:

[quote cite=”대법원 1988. 3. 22. 선고 87도2539 판결” url=”https://casenote.kr/%EB%8C%80%EB%B2%95%EC%9B%90/87%EB%8F%842539″]공동정범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highlight]반드시 공범자 전원이 범죄의 실행행위에 가담할 필요는 없고 적어도 공범자들 사이에 범죄에 대한 공동가공의 의사가 있는 경우[/highlight] 즉 상호간에 범의의 연락이 있고 그 공범자 일부가 범죄의 실행에 당한 경우에는 결국 전원이 공동일체로서 범죄를 실행한 것이 되고, [highlight]스스로 직접 그 실행행위를 분담하지 아니한 자도 그 범죄 전체에 관하여 공동정범으로서 책임[/highlight]을 진다.[/quote]

용산 참사는 2009년 1월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와 전국철거민연합회의 연대 투쟁 중 발생했다. 문제의 건물 세입자 2명과 전철연 소속 3명,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했고, 살아남은 농성 투쟁자 중 5명이 구속 기소돼 ‘공동정범’으로 모두 실형을 살았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공동정범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어렴풋하다. 나는 그것이 일부러 더 파고들지 않고 멈춰선 지점이라는 의심이 든다.

아무런 내레이션이 없는 이런 다큐멘터리에서는 화면 가운데 깔리는 자막이 거의 유일한 연출자((다큐멘터리일지라도, 아니, 오히려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연출자’라는 표현이 합당하다.))의 ‘눈에 띠는 개입'((바꿔 말하면 그 외의 모든 것이 눈에 띠지 않는 개입이다.))이라 할 수 있는데 중반에 보면 이런 내용의 자막이 나온다:

[note note_color=”#f3f3ef”]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 사람들은 남일당 빌딩 옥상(참사 현장)에 망루를 세울 계획을 세웠으나 연대 투쟁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안상의 이유로 이를 알리지 않았다.[/note]

이 부분이 당시 법정에서도 명확하게 규명될 수 있었다면 연대 투쟁에 참가한 전철연 사람들에게는 공동정범이 성립되지 않았을 수 있지 않을까? 입증된다면, 망루를 세우는 것에 대한 ‘공모’는 용산4구역 대책위에만 해당이 될 테니까.

용산4구역 대책위 사람 중 유일하게 구속 기소된 이충연 위원장은 법정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부인한다. 영화는 그가 특정 혐의를 인정했으면 전철연 사람들이 실형을 살지는 않았으리라는 인상을 준다(영화를 같이 본 이도 동의했다).

그런데 본래 ‘망루 투쟁’이 전철연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과연 그것이 합당한 논점인지 의심이 든다. 과연 전철연 사람들은 이 농성이 ‘골리앗’으로 이어지리라는 걸 몰랐을까?

영화는 그 ‘공동정범’들이 출옥한 이후 겪는 아픔과 갈등을 지켜본다. 함께 투쟁했던 사람들을 이제는 외면한다고 전철연 사람들은 이충연 위원장에게 아쉬움을 표한다.

이충연 위원장은 자신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며 항변하지만 영화는 잠시간 그가 남일당에서 쫓겨난 이후 새로 차린 크래프트 비어 펍을 오픈하고 그곳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얘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먼지가 자욱한 철거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동지’들의 모습과 (은연중에) 대비된다.

처음에는 이충연 위원장을 주인공으로 점찍고 촬영했다는 감독(들)은 촬영을 하면서 그에게 많은 실망을 했다고 한다. ‘공동정범’은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 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그 노력은 전철연의 (예전부터 논란이 많았던) 투쟁 방식 그 자체에 대한 반추에까지 닿지는 않는다. 그것까지 생각하기엔 너무나 피사체에 오랫동안 가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용산 참사는 한국 사회의 많은 병폐들이 뭉쳐 생긴 참극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공동정범’을 키워드로 잡았다면 이 영화가 보여준 것으론 성에 차지 않는다. 관찰이 부족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부러 그런 것들까지 접근을 삼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석연찮은 기분이 남는 까닭은, 문제의 본질이 복잡다단하기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는 연출자의 호미가 운동의 ‘대의’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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