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우리는 도야지 애호가니까 다시 이천 돼지박물관으로 향했다. (참조: 돼지박물관 기행, 2016년 5월)
사실 원래 계획에 없었던 일정이라 좀 늦은 시간에 당도했다. 그래서 촌장님(여기서는 다들 촌장님이라고 부른다 ㅋㅋ)을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는 별로 안했는데 되려 저녁 자리에도 초대를 해주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촌장님이 아직 정리를 못해 박물관에 전시를 못한 소장품들을 따로 보여주셨는데 깜짝 놀랐다.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것보다 더 멋진 수집품들이 많았다.
당시에 들었던 이야기들을 나중을 위해 기록으로 남겨둔다. 오직 기억에만 의존해 쓴 것이라 부정확할 수 있다.
본래 촌장님은 강원도 태생으로 1984년에 고려대 축산학과에 입학했다가 운동권 활동으로 곧 제적을 당했다 한다.
진로가 막막해져 지도 교수를 찾아갔더니 한 양돈 업체를 추천해줬다고. 그러나 농장일은 험하기만 하고 별다른 보람이 없었다. 그 시절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범법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일단 교수님이 소개해준 곳이니 100일만 일해보자 하고 100일을 버틴 후, 100일간의 작업일지 겸 사직서를 써서 그 업체의 상무에게 냈다. 그리고 짐을 싸서 회사를 나가려는데 갑자기 수위가 자신을 불러 상무가 찾는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양돈업계는 현대화가 덜 된 상태였단다. 상무는 영국에 6개월을 보내줄 테니 거기에서 돼지 인공수정 기술을 배울 것을 제안했다. 촌장님은 냉큼 수락했고 그렇게 고급 기술을 배울 기회를 얻었다. 이때가 1987년이었다고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해서 익힌 인공수정 기술을 바탕으로 나중에는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고 보다 효율적으로 암퇘지의 임신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초음파 검사기기를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도입해 다른 업체에 비해 훨씬 높은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사업은 순조로웠지만 도야지에 대한 애호가 크다 보니 이제는 문화적으로 돼지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제고하고 동물복지 차원에서도 돼지에 대한 대우를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2011년 돼지박물관을 열게 됐다.
이제 개장한 지 7년째인데 아직까지 이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의 40%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드디어 박물관 앞에까지 2차선 도로가 뚫리게 돼 올해는 보다 많은 일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많이 품고 계셨다.
올해부터는 치유농장 사업과 축산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에 대한 지원을 시작할 생각이란다. 나로서도 치유농장 사업은 특히 관심이 가는데 정서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젊은이들로 하여금 돼지를 키워보게 함으로써 정서적 치료를 돕는 것이라고 한다.
방문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적인 접근을 해서 성과를 본 사례들도 얘기를 해주셨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도야지들을 만나고 나서 아이들이 보다 마음을 여는 듯하여 놀랐다.
개인적인 희망사항으로, 돼지박물관이 치유농장으로 발전하면서 한국 유일의 도야지 생추어리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미국 생추어리 말고 한국 생추어리에도 기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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