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박물관 기행

시작은 <검은 사제들>이었다. 뭇여성들은 사제복을 입은 강동원의 자태에 빠져든 듯했지만 나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자꾸 그 새끼돼지가 생각났다. 토실토실한 몸과 귀여운 코, 힐을 신은 듯 우아한 발. 조류에 이어 이젠 돼지가 좋아졌다. 나도 돼지니 이것은 나르시시즘인가

이런 나의 돼지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신이 예전에 취재차 경기도 어딘가에 있는 돼지 농장엔가를 간 적이 있는데 새끼돼지들 만져보고 한 다음에 바로 돼지고기로 소시지 만드는 체험을 하는 매우 독특한 곳이란다. 궁금하여 더 자세히 물어보았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단다. 아쉬웠다. 나도 가서 새끼돼지들 만져보고 싶은데.

그런데 우연히 텔레비전을 켜자 바로 그런 곳이 소개되고 있었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돼지박물관이란다. 이것은 계시다.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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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상 경기도 이천이 맞기는 한데 충청북도와의 경계선에 가까운 곳이라 가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항상 차를 운전하면 느끼는 것이지만 언제나 서울, 그리고 근교를 넘어가는 게 고역이다. 근교 넘어가서 차 렌트해서 움직이는 게 정신 건강에는 최고인 듯.

주차장에서부터 돼지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게 신기했다.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돼지들이 모여 있는 우리가 보였다.

돼지들도 직사광선이 싫어 최대한 그늘을 찾아 쉬고 있었다
돼지들도 직사광선이 싫어 최대한 그늘을 찾아 쉬고 있었다

표를 사면서(대인 각 7,000원) 물어보니 오늘 소시지 체험은 담당자가 예비군 훈련(…)을 간 관계로 없단다. 주말에 가족 단위 방문이 많고 평일에는 단체 위주로만 하다 보니까 (지방의 많은 공원 등등이 다 이렇다) 운영을 안하는 부스도 보였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지 않아서 한적함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런 곳에 오는 단체손님들은 물론 애들이다... 시끄럽다.
이런 곳에 오는 단체손님들은 물론 애들이다… 시끄럽다.

공연에는 돼지들이 이런 저런 간단한 묘기를 보여준다. 뭐 엄청나게 인상적이거나 하진 않다. 그래도 돼지는 귀여우니까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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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 내놔 이 인간아~"
“건빵 내놔 이 인간아~”
원하시면 돼지와 뽀뽀(…)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새끼돼지와의 교감 시간.

사육사가 건빵이 든 통을 흔들면 돼지들이 마구 뒤따른다. 그야말로 피리 부는 사나이.
사육사가 건빵이 든 통을 흔들면 돼지들이 마구 뒤따른다. 그야말로 피리 부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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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안지 않으려던 마눌님도 결국 돼지가 너무 예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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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새끼돼지들이 엄마와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겁도 많고 낯선 사람의 품에 안기니 많이 울고 그래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넘 귀여워서 흑흑…
같이 간 마눌님께서 가로되 근래 제가 이날만큼 밝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같이 간 마눌님께서 가로되 근래 내가 이날만큼 밝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따로 있는 박물관 건물에서는 돼지와 관련된 각종 미술품 등을 볼 수 있는데 너무 많은 기대는 금물. 그렇지만 이토록 귀여운 새끼돼지들을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컸다. 돈 잘 버는 남자가 되어 마당이 있는 집을 사서 새끼돼지 한 마리 키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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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올라올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읽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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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sponses to “돼지박물관 기행”

  1. […] 돼지박물관을 간 이후로 나의 미니피그 사랑은 점점 깊어갔고 페이스북에서 여러 개의 미니피그 관련 페이지를 구독하면서 거의 매일같이 미니피그 사진들을 보기 때문이었을까, 월요일에 나는 드디어 꿈에서 미니피그를 만났다. 그것도 두 마리나. […]

  2. […] 첫날. 우리는 도야지 애호가니까 다시 이천 돼지박물관으로 향했다. (참조: 돼지박물관 기행, 201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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