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삼부작의 마지막 「오컬트 너머Beyond The Occult」에서 콜린 윌슨은 하나 큰 회심(?)을 한다. 육신의 사후에도, 혹은 육신 없이도 영혼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입장이 크게 바뀐 것이다.
이 문제는 여러 초자연현상 중에서도 폴터가이스트와 강령회seance의 근원에 대한 의문과 직결된다. 이를테면 폴터가이스트 현상은 정말 어떤 유령의 장난인 것인가, 아니면 사춘기 소년소녀의 응축된 성적 에너지가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것인가? 강령회에서 불러오는 영혼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영혼일까, 아니면 망자에 대한 참석자들의 기억들을 영매가 읽어내는 것일까?
별 시덥잖은 논의 같아 보이겠지만 어느 쪽이냐에 따라 그것이 초자연적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 진중하게 이런 사안들을 다루는 연구자들은 육신 없는 영혼incorporeal spirit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으로 접근한다. 입증도 어렵지만 많은 경우 오캄의 면도날에 잘려나가기 쉬운, 불필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폴터가이스트와 강령회의 대부분 사례들은 ‘육신 없는 영혼’이란 개념 없이도 꽤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콜린 윌슨도 「오컬트」, 「미스테리」에서는 줄곧 이런 입장을 견지했다. 십대 청소년의 응축된 성적 에너지가 무의식적으로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만든다거나 영매가 참석자들의 기억을 읽는다는 가설은, 어떤 영혼의 존재가 그런 장난을 친다는 설명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보다 열린 정신의 소유자들에게 어필하기도 좋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가설이 통하지 않는 소수의 사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윌슨은 결국, 소수이긴 하지만 육신 없는 영혼의 존재를 배제하면 설명이 되지 않는 사례가 있음을 인정한다.
사실 이전작까지 윌슨은 육신 없는 영혼의 가능성에 대해 일축하면서 주로 구르지에프를 인용하곤 했다. 누군가가 사후에도 영혼이 존재할 수 있느냐고 묻자 구르지에프는 사후에도 존재할 수 있는 영혼을 만드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대부분의 사람이 가진 영혼은 육신이 죽고 나면 흩어져 없어진다고 답했다.
그런데 「오컬트 너머」에서는 여러 차례 구르지에프를 인용함에도 불구하고 이 대목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다. 사실 구르지에프의 이 말은 윌슨이 발전시켜온 인간관과도 매우 잘 부합하기 때문에 윌슨에게는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영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사실 이 문제를 붙들기 시작하면 논의를 해야 할 것이 정말 많아진다. 이를테면 오컬트 삼부작에서도 자주 거론됐던 다중인격 사례에서도 어떤 사례는 정말 빙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시각을 뒤집어 보면 이 다중인격들이 다 각각의 영혼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심지어 어떤 다중인격은 정말로 ‘출생’해서 ‘성장’하여 인격을 획득하기도 한다. 박상륭은 인구증가의 문제를 ‘갈마羯磨분열’로 설명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어쩌면 인구증가의 문제는 (카르마보다는 영혼이란 개념이 보다 단순, 구체적이라는 가정 하에서) 그보다 더 구체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례의 수도, 기존의 가설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는 존재하는데 그렇다고 새로운 가설을 제시할 수 있을만큼 많지는 않아 윌슨도 여기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콜린 윌슨의 오컬트 삼부작은 모든 초자연적 현상들을 통합하는 완전한 가설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물론 이것이 처음부터 가능할리도 만무했다) 오컬트에 대해서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조차도 그간 갖고 있던 관념들을 다시 평가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100년 내에 그의 선구자적인 면모가 재평가를 받게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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