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가족은 실수였다. 이제 어떤 가족을 만들어야 하나?

뒤늦게 데이비드 브룩스가 근 5년 전에 애틀랜틱에 쓴 ‘핵가족은 실수였다‘를 읽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미국 사회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이상적인 가족 형태로 여겨졌던 핵가족(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많은 사람들에게 재앙이었으며, 이제는 더 나은 가족 형태를 찾아야 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 과거에는 대가족 형태가 일반적이었으며, 가족 사업을 중심으로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았습니다. 이러한 대가족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아이들을 사회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하고 핵가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핵가족은 안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고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핵가족은 점차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과 출산율은 감소하고, 이혼율은 증가했으며, 싱글 가구가 늘었습니다. 이는 특히 취약 계층, 특히 아이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자녀가 부모 모두와 함께 성장하는 경우가 적고, 이로 인해 교육, 건강, 정신 건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 부유층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이비시터, 보모, 튜터 등의 서비스를 구매하여 핵가족을 유지하지만, 저소득층은 이러한 지원을 받기 어렵습니다.
  • 기사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람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 즉 ‘만들어진 가족(forged family)’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살며 서로를 돌보는 형태이며, 공동 주택, 협동 육아, 종교 공동체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가족 형태는 개인의 자유와 안정적인 공동체 생활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https://masthead.kr/2024/12/27/%f0%9f%8e%b8-%ed%8a%b8%eb%9f%bc%ed%94%84%ec%9d%98-%ea%b4%80%ec%84%b8%ea%b0%80-%ec%9d%8c%ec%95%85-%ec%95%a0%ed%98%b8%ea%b0%80%eb%93%a4%ec%97%90%ea%b2%8c-%eb%af%b8%ec%b9%a0-%ec%98%81%ed%96%a5/

분명 돈으로 모든 걸 구입할 수 있는 극소수를 제외한 현대인에게 핵가족은 실패한 제도다. 내가 굳이 더 설명할 것도 없이 그냥 주변을, 우리들 자신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원문에는 과거의 대가족 형태로 일정 정도 회귀한 사례들도 많이 제시되는데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부분은 이 ‘만들어진 가족’이다. 원시 시대를 보아도 함께 매장된 15~20명의 공동체 안에서 혈연관계가 있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하니 혈족이 아닌 친족kin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 떠오르는 사례는 선라Sun Ra의 오케스트라Arkestra로, 밴드이자 기업이자 가족처럼 운영됐던 독특한 사례인데 아무래도 선라라는 독특한 리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브룩스도 인지하듯 가장 큰 관건은 현대의 가치관—자유, 프라이버시, 젠더평등 등—과 부합하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것인데 선라의 사례는 이런 것과도 잘 어울리는 건 아니다. (‘가족’기업이 아닌 ‘기업’가족도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도 해봤는데 뭔가 아인 랜드Ayn Rand 소설에 나올 이야기 같기도.)

한 십여 년쯤 전인가, 한동안 ‘땅콩주택’ 등으로 친구들끼리 함께 집을 지어 사는 문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렇게 살다가 서로 싸우고 갈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애당초 현대 한국인에겐 서로의 영역 침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영역의 구분조차 흐려지는 샤머니즘의 K-가족과 그 톤다운된 버전의 ‘회사’ 외에는 공동체를 꾸려본 경험이 일천하니 공동체를 꾸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작은 공동체의 사사로운 삶)

근래에는 도시농업의 한 형태가 단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직접 무언가를 기르고 먹어본다는 경험의 큰 가치가 어느 정도의 구심점을 제공할 수 있으면서도 참여자들을 기업보다는 느슨하게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귀농귀촌을 할 수는 없고, 결국 도시에 살면서도 이런 경험을 진지하게 해보고 싶은 사람들의 수요를 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의 장기 목표 중 하나는 대중교통이 용이한 곳에 300~400평 정도라도 땅을 매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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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올라올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읽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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