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서는 신년을 맞이하여 ‘통일이 미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세계 유명인사들과 통일에 대해 나눈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다(그밖에도 풍부한 기획기사들이 따르고 있다). 중앙일보의 기가 차지도 않는 ‘품격 대한민국‘ 보다는 훨씬 훌륭한 어젠다이다 (동아일보는 아예 어젠다라는 걸 내걸지도 않았다. 새해 첫 기획이 ‘당신의 말, 세상을 바꿉니다‘였다. 그것도 최고 막말방송 채널A와 함께).
조선일보 신년 기획의 첫 인터뷰 대상자는 바로 위르겐 하버마스였다. 지면으로 보았을 때는 별다른 먹을거리가 보이지 않아, ‘뭐 하버마스가 북한 전문가도 아니니까’ 하면서도 내심 실망스러웠다. 반면에 북한의 투자 가능성과 통일 한국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오늘의 짐 로저스 인터뷰는 괜찮았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지만) 같은 이야기를 정동영이 하는 것과 ‘세계적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가 하는 것에 여론이 반응하는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짐 로저스 인터뷰의 골자를 영문으로 옮기다가 하버마스의 인터뷰 전문이 조선일보 웹에 올라와 있는 것을 읽어보았다. 엉성하게 편집된 지면 버전보다 훨씬 좋았다. 국제정세 전문가가 아니고 북한 전문가가 아닌 하버마스의 인터뷰를 마치 IR/북한 전문가의 인터뷰인양 편집을 했으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일보가 편집에서 놓쳤으나 이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 한상진
그러나 현실을 보자면,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중국의 광활한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경제거래를 하면서 중국의 인권이나 민주주의 문제를 거론합니다.
▶ 하버마스
나의 심정은 착잡합니다. 거래를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독일과 중국도 이런 길을 걷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주된 관심은 거래에 있으면서 수사적 차원에서 인권을 거론하는 것은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규범적으로 내용이 텅 비어 있어 나로서는 받아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당신도 여러 이유로 이런 입장에 상당히 가까운 것 같군요.
▷ 한상진
유럽의 헬싱키 협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협정으로 서구는 동구권에 경제, 과학, 기술협력을 하면서 정치체제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기본인권을 신장시키는 효과를 냈고 이것이 동구의 변화를 촉진했습니다.
▶ 하버마스
이제야 나는 당신이 왜 나를 인터뷰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접근이 동구에서 새로운 발전을 가져온 것은 인정하지만, 이것을 북한에 적용하려면 많은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하버마스는 한상진 교수의 적확한 지적에 대해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흔들리는 유럽연합과 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현실’주의에 대한 이상주의적 자유주의의 무력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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