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즈에서 펜 입력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지다
HP 스펙터 X360은 매우 매력적인 랩탑이다. 컨버터블, 혹은 2-in-1으로 일컬어지곤 하는 360º 접히는 터치스크린의 강점은 직접 써보지 않으면 모른다.
X360에 원노트를 띄워놓고 회의나 취재 때 펜 입력으로 메모를 하고 이를 관리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게다가 원노트는 오피스365 구독자에게 필기 인식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윈도우즈 잉크는 현재 화면을 바로 캡쳐하여 그 위에 펜 입력으로 필기를 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이는 특히 업무용으로 활용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수정이 필요한 웹페이지 등에 바로 필기를 해서 피드백할 수 있는 편리함.
그렇지만 X360에도 불만은 있었다
360도로 접히는 화면은 완전히 접어놓은 상태가 아닐 경우 펜 입력시 불편할 수 있다. 펜을 쓸 때마다 화면이 뒤로 밀릴 수 있기 때문.
X360의 힌지는 키보드가 바닥에 놓이게 접어놓을 경우(이렇게 해놓으면 책상에 놓고 펜 필기를 하기에 매우 편하다) 펜 입력시 화면이 좀 밀리는 편이다. 그래서 필기 시에 다른 손으로 화면의 뒷부분을 잡아줘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불만은 따로 있었다. 랩탭의 양쪽 측면에 모두 버튼이 달려 있어서 세로 방향으로 놓고 필기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회의나 취재시에 랩탑을 세로 방향으로 놓고 이를 무릎에 세워서 쓰곤 한다. 나를 비롯하여 보통의 노트 필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위에서 아래로 써내려 가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X360은 양쪽 측면 모두에 버튼이 있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세워도 버튼을 눌러 오작동을 하게 되는 걸 피할 수 없다. 대체 왜 볼륨 버튼을 따로 옆에 달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랩탑의 스피커 성능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서 굳이 필요하지 않을 듯한데…
그래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 가장 기대했던 것은 Dell XPS 13 2-in-1이었다.
XPS 시리즈는 모두가 인정하는 랩탑의 명작. 13인치 버전은 만약 당신이 터치스크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휴대용 랩탑이고 15인치 버전은 성능으로는 맥북 프로 15인치를 압도한다.
때문에 XPS 13의 2-in-1 버전이 나온다고 할 때 나는 많은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정작 나오고 나서 보니 리뷰들이 다들 별로 좋지 않았다. CPU 성능이 너무 기대 이하였던 것이 컸다.
서피스북은 MS가 잘만 만든다면 그야말로 내가 바라던 꿈의 머신이 될 것이었다. 높은 성능과 3:2 화면비(제발 3:2 화면비 랩탑 좀 많이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착탈식 터치스크린! 그러나 QC 문제가 상당히 심각했으며 가격의 창렬함에 있어서는 맥북에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MS는 전생에 부모를 썬더볼트3한테 잃었나 왜 아직까지도 썬더볼트3/USB-C 포트를 지원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애플은 썬더볼트3만 남겨놓고 다 버리고 MS는 아직도 USB-A 타입만 쓰고…
그러던 차에 레노버에서 나온 요가 920을 알게 됐다
인텔 8세대 칩을 써서 성능도 괜찮고 독특한 디자인의 힌지가 보다 튼튼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왼쪽 측면에 아무런 버튼이 없다!
냉큼 요가 920을 주문했고 나는 지금까지 4개월 간 매우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사이즈가 13.9인치로 사실상 14인치인데 차라리 13인치로 가고 무게가 조금만 더 가벼워졌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한 시간 이상 손에 들고 필기를 하기에는 약간 부담이 된다. 아마 여성에게는 꽤 부담이 될 듯하다.
2-in-1의 앞날은 밝다, 윈도우즈 잉크가 있으니까
HP와 레노버는 최근 자사의 라인업에 컨버터블 디자인을 매우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서피스북 스타일의 컨버터블은 아직 보기 드물지만 X360이나 요가 시리즈와 같은 2-in-1 랩탑은 앞으로 더욱 많이 눈에 띌 것이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윈도우즈 잉크. ‘터치스크린’의 가능성을 보다 넓게 확장시켰다.
한때는 최강의 앱까였으나 결국 모종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안드로이드에서 아이폰으로 투항한 나다. 애플의 북한 못지 않은 폐쇄적 생태계는 한동안 랩탑도 맥으로 전향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나를 괴롭혔다.
그때마다 윈도우즈 잉크는 나에게 정신을 차리라는 이성의 보루가 돼 줬다. 그리고 이 보루는 아직까지 견고하다.
취미로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림을 그릴 때도 윈도우즈 잉크는 매우 훌륭하다. 일러스트레이터 CC는 윈도우에서 터치 입력 전용 뷰를 제공하고 있어 상당히 편리하게 작업이 가능하다. 와콤 신티크 같은 걸 대체할 수준은 당장 못 되더라도 굳이 그런 장비를 구매하지 않아도 근사近似한 수준을 구현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을 미술 뿐만 아니라 영상이나 음악 쪽까지 확장하면 어떨까? 옛날 Korg 카오스패드 같은 걸 뭣하러 하드웨어로 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손 놓고 있던 새에 보니까 Ableton도 Push라는 걸 내놓았더라)
윈도우즈 10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 안정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잘하면 크리에이티브 프로페셔널을 윈도우즈 머신에 끌어들이는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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