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요새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의 <리얼 노스 코리아>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란코프 교수를 만나 저녁을 같이 했어요. 내년에 책의 페이퍼백 버전을 내는데 책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부분이 수정되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영어 문장의 스타일 문제라고 하더군요. 덧붙이는 내용은 김정은 정권이 개발독재(박정희 시절처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논의(이 부분을 과거 저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 있습니다)라고 하고요.
몇몇 리뷰에서 란교수가 구사하는 영어 스타일을 문제 삼았나 봅니다. 그리고 (이건 무척 의외인데) <리얼 노스 코리아>를 출판한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원고를 거의 편집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출판부에서도 북한 핵실험 및 (수사학적) 도발로 떠들썩할 때 빨리 내겠다는 요량이었는지 모르겠지만요. 제가 번역하면서 볼 때에는 그렇게 이상하게 여겨지는 문장이 안 보여서, 아직 나도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알고 지내는 외신 기자에게 물어보니 그도 몇몇 문장이 투박하긴(clunky) 하지만 원어민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매우 훌륭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아무래도 원어민이 아닌 이상 구사하는 문장에서 완벽을 기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긴 합니다. 그런 걸 보면 한국인보다도 한국말 문장을 잘 쓴다는 평을 듣는 박노자 교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금 느낍니다. 게다가 영어를 비롯한 다른 주요 유럽어와는 달리 우리말은 익힐 만한 교재도 시원치 않은데 말이죠.
이럴 때마다 제가 떠올리는 인물은 영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Heart of Darkness>를 쓴 조셉 콘래드입니다. 콘래드는 본래 폴란드 태생이고 소년기를 프랑스에서 보냈습니다. 영어는 그의 세 번째 언어였고 20대가 되어서야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영문학의 거장이 되었죠. 실로 대단하지 않나요? 한편으론 그를 영문학의 거장으로 만든 데에는 프랑스어를 배운 것과 (오히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던 것도 어느 정도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글을 써서 파는(?) 일로 연명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영어를 구사하여 훨씬 폭넓은 (잠재)독자군을 확보하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인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글을 영어권에 팔아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하겠어요.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영어 문장을 손쉽게 접하고 읽고 새겨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콘래드 형님, 제게 힘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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