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레이, 리버럴 세계 질서의 트럼프적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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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존 그레이 성님은 리버럴 두들겨 팰 때 가장 빛난다 ㅋㅋ 역사에 정녕 일정한 내러티브가 있다면 이번 미국 대선은 트럼프의 승리로 끝날 듯.

존 그레이의 뉴스테이츠먼 2024년 2월 7일 칼럼(원문)을 번역함.

서구의 그 누구도 다가올 대재앙에 대비돼 있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더 이상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그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트럼프가 자신의 위협을 실행에 옮긴다면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서방이 주도해온 국제체제는 갑작스럽게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가 제안한 것처럼 미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해 10% 관세가 붙게 되면 자유무역은 종말을 맞는다. 나토 또한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재림은 조 바이든 스타일의 리버럴리즘에 대한 반발이다. 민주당은 사법체계를 동원하는 것으로 트럼프에 대응했다. 쏟아지는 재판도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그의 핵심 지지층은 트럼프를 제거하기 위한 엘리트들의 음모가 있다고 확신한다. 리버럴들에게 이는 미국 유권자의 상당수가 철저하게 비합리적이라는 그들의 신념을 확인시켜줄 따름이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더 잘 부합하는 비합리성은 리버럴 자신들의 비합리성이다. 트럼프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법체계를 무기로 활용했지만 오히려 트럼프를 더 강하게 만들었을 따름이다. 왜 이렇게 비생산적인 전략을 고수하는가? 그 답은 리버럴들이 일종의 반복 강박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프로이트식 정신분석학에서 밝힌 것처럼 해로운 행동을 재현하려는 병리적 충동이 있다. 자신들이 바로 사회의 도덕적 수호자라는 걸 주장하는 데 집착하면서 스스로를 실패의 악순환에 가두고 있다.

많은 미국인에게 트럼프는 반전 후보다. 트럼프는 근래에 미국을 외국 전쟁에 끌어들이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이것이 바로 리버럴적 개입주의자이자 네오콘의 홀로그램 같은 존재였던 니키 헤일리가 아이오와 주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리버럴 공화당원들은 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많은 국민을 소외시킨 비참한 전쟁을 물려받는 걸 줄곧 옹호하고 있다.

트럼프의 재선을 보장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슈가 있다면 바로 미국-멕시코 국경의 혼돈일 것이다. 이는 트럼프 핵심 지지층을 넘어 많은 국민들에게 우려가 되고 있다. 불법 이민자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인해 텍사스, 뉴욕은 물론이고 시카고와 같은 ‘성역 도시'(중앙 정부의 이민 정책을 따르지 않는 도시)에서도 다양한 인종의 커뮤니티가 불법 이민자 유입이 공공 서비스에 미치는 영향에 반대하며 불화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많은 민주당 활동가들에게 대규모 이민에 대한 유권자들의 저항은 대중적인 인종차별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리버럴은 오만한 태도로 동료 시민들을 무시해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불러일으켰던 걸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은 과거에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혔던 행동을 반복하면서 고대 신화에 묘사된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다. 소설가 앤서니 파월은 12권 짜리 ‘시간의 음악에 맞춘 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인 ‘친절한 이들’(1962)에서 1930년대 후반 영국의 불길한 분위기를 포착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 종교에서 복수의 여신Furies들을 소환한다. 복수의 여신들은 인간의 범죄로 인해 어둠의 영역에서 소환된 지하의 신적 존재들이다. 그들이 가장 엄하게 처벌한 범죄는 맹세 위반으로, 그들은 이를 인간이 스스로에게 내린 저주라고 여겼다. 전반적으로 복수의 여신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파괴적인 정열에 따라 행동하도록 부추겨 파멸로 이끌었다. 파월은 썼다. “그리스인들은 복수의 여신들을 너무나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들의 끔찍한 분노를 달래기 위한 아첨으로 그들을 유메니데스, 즉 ‘친절한 이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전쟁, 역병, 불화를 가져와서 신들의 복수를 가했다… 양심의 가책으로 고문도 가했다.”

파월의 소설에서 복수의 여신들은 영국이 2차 세계대전으로 표류하는 과정을 주재했다. 주인공들은 권력에 대한 사랑, 자부심, 정의에 대한 환상 등의 욕망에 이끌려 자신의 삶을 비참한 운명으로 만들고 비극적이거나 잔인한 희극적 비난으로 이끌었다.

트럼프와 그를 혐오하는 리버럴들은 모두 복수의 여신들의 노리개다. 서구의 리버럴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우월한 이성과 미덕에 대한 자만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인류의 스승으로 상상했다.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한 그들의 계획은 환상으로 드러났고 동맹국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은 공허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자국을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씁쓸하거나 조롱 섞인 경멸의 시선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리버럴들을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겠다고 제안한다. 중동의 분쟁이 확전되면서 제3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 위험은 충분히 현실적이지만 더 실현 가능성이 높은 다른 시나리오가 있다. 피로가 반복의 악순환을 깰 수 있다. 무기고와 금고가 거의 고갈된 상황에서 서구는 전면전의 가능성을 회피하는 대신 세계 속에서 그 입지가 영원히 좁아지는 걸 감내할 수도 있다.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이미 진행 중이던 후퇴의 일환일 수 있다.

미래의 견본은 1939년 9월(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같은 적대 행위의 발발이 아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지금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의 포기가 될 수 있다. 우려했던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리버럴 세계 질서가 최종적으로 붕괴되면서 서구는 불가능한 임무에서 해방될 것이다. 독재에 맞선다는 모든 잡음 이면에 숨겨진—자기 자신도 모르는—서구 지도자들의 가장 깊은 욕망은 권력의 짐을 덜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친절한 이들’이 그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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