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재선을 징후로 삼는 여러 가지 흐름 중에서 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문화전쟁’에서 이제 우파가 우위를 점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누가 선거에서 이기고 어떤 정책이 시행되느냐의 ‘정치’보다 더 넓은 차원인 ‘문화’의 문제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고 무릎을 꿇는 제스처가 처음 등장해 화제가 됐던 NFL 경기장에서 이젠 ‘트럼프 댄스’를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일까? 나는 론 디샌티스가 일련의 문화전쟁 관련 포석으로 한창 주가가 오르던 시절에 문화전쟁에서 처음으로 우파가 제대로 반격을 시작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보다 눈이 밝고 견문이 넓은 사람은 보다 일찍 포착했을지도 모른다.)
왜일까? 11월 트럼프의 대선 승리 이후 트럼프 캠프가 젊은 남성들이 많이 청취하는 팟캐스트, 유튜브 채널 등에서 맹활약했던 것을 들면서 미국 좌파(보다 정확히는 미국 민주당)가 이쪽에 대해 제대로 투자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종종 보였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문화 분야는 거의 압도적으로 좌파가 장악하고 있었다. 팟캐스트, 유튜브에 정말 좌파 인플루언서가 없어서 졌겠는가.
정치의 연장선으로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결국 ‘진지전’ 개념으로 압축되는데 이 관점에는 하나 큰 맹점이 있다. 지금 시대의 문화는 쏟아져 나오는 양부터 분야, 장르까지 너무나 많아 그람시가 생각하던 것처럼 이를 ‘조직적’으로 수행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과연 그 시절에도 가능했을지 의심스럽다.)
문화의 헤게모니를 잡는 쪽이 정치에서도 승리한다는 건 분명 핵심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지만, 조직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어떠한 사상이 정치 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서 헤게모니를 잡게끔 만드는 건 일루미나티 정도나 되어야 가능할 테다. 음모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의 트렌드가 우파쪽으로 기울긴 했어도 좌파가 점령한 고지들 상당수는 건재하다. 미국에서 동성혼에 대한 인정이나 낙태 문제에서 여성의 선택권에 대한 옹호는 그 어느때보다 높다. 탈종교 성향 또한 그렇다.
어떤 정파의 개입만으로 문화전쟁의 판세가 뒤집히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의 현상은 그간 수십 년간 좌파가 연승을 거듭하던 문화전쟁에서 이제 추가 균형을 잡기 위해 반대로 움직이는 거라고 봐야 한다. 물론 그 가장 큰 원인은 좌파의 과도한 확장overstretch이다. 보통 ‘woke’라는 표현이 거의 멸칭처럼 많이 쓰이지만 존 그레이가 쓰는 ‘하이퍼 리버럴리즘’이란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미성년자에 대한 급진적인 성전환 치료 권장이나 국가정체성을 희석시킴으로써 국가를 ‘초탈’하려던 캐나다의 시도 등등에 대해 국민들은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이 생각에 더 큰 확신을 준 것은 최근 들어 4chan이 문학 애호가들의 터전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뭐랄까, 문학이라면 문화에서도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온라인 우파가 그런 터전을 제공하게 됐다니! 여기서도 그 근원은 좌파 스스로의 몰락이다. 대학 등의 좌파 기구들은 하이퍼 리버럴리즘과 캔슬 컬쳐에 매몰돼 순전히 문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에게 제대로 도움을 못 주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세한 ‘트렌드’는 개입과 조작으로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큰 흐름의 변화는 오직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미국 우파가 이 큰 흐름의 변화에 좀 더 잘 준비하고 대응했던 것은 사실이다. 정치 차원에서도 비전이나 전략이 결여된 한국의 우파가 문화에 대해 생각이 있을리 없다. 아직도 이승만 박정희 타령을 못 벗어난다.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은 기존의 우파가 아닌, 기성 좌파에 회의감을 느낀 ‘전직 좌파'(나 자신도 이런 범주에 포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들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 정치가 균형을 잡으려면 일단 건강한 우파가 자리잡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하는데 건강한 ‘문화 우파’의 양성도 그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웹으로 연결된 현대 문화는 그 흐름이 글로벌 차원으로도 확산되는 경우가 잦다. 한국에서도 누군가는 이 흐름에 편승하여 순풍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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