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 서울 선언

Published

여긴 참 서울 안 같네.

서울을 다니다 보면 그런 이야기를 가끔씩 듣는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이문동 아파트 단지 옆을 조금만 걸어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거닐 때에도.

그럼 대체 어디가 서울 같은 곳인가? 모두들(특히 서울 산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일수록) 아파트 요새와 빌딩숲의 모습을 ‘서울다움’으로 취급하지만 실상 서울 곳곳을 다녀보면 ‘서울다운 곳’이 얼마나 예외적인 경우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전에 일했던 동아일보 출판국이 있는 충정로도 그렇다. 버스 중앙차로가 있는 대로변에는 큰 키의 빌딩들이 줄지어 있지만 (바로 맞은편에 그 유명한 충정아파트도 있긴 하다) 바로 안쪽 골목으로만 들어가면 뭔가 아직도 일제 시대 목조 건물 느낌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 보인다.

약간 욕심을 내서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면 안산으로 이어진다. 이미 조성돼 있는 ‘둘레길’을 따라가보면 독립문, 무악재 근방의 아파트 단지를 볼 수 있는데 단지의 10층 정도가 내가 서 있는 산턱의 높이다. ‘서울’에서 볼 수 있을성싶은 그런 광경이 아니다.

김시덕 교수의 신간의 제목이 왜 ‘서울 선언‘인지는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실은 이런 곳(들)이 바로 서울이다 라고 외치는 것이다.

남영역 인근을 사람들과 함께 답사 중이던 김시덕 교수(오른쪽 아래)의 모습

보다 정확히는 ‘대서울 선언’이라고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서울’이란 표현은 김 교수가 책에서 단지 행정구역상의 서울 뿐만 아니라 성남 등의 인근 지역까지 함께 아울러 이르는 표현이다.

영국에는 Greater London이란 개념이 있다. 런던도 점차 인근 지역을 흡수하면서 커졌고 그러면서 그레이터런던이 1965년에 실제 행정구역으로서도 인정을 받았다고 하니 ‘대서울’과도 비슷하다.

책에서 보여주는 서울에는 내가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보다도 훨씬 다채로운 역사가 담겨 있다. 그것도 그 대부분이 근현대의 역사다. 여전히 우리에게 역사는 조선시대 이상을 의미하지 못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책의 전반을 관통하는 정념은, 과거를 짓밟고 약자의 심장을 뜯어내 인신공양을 하며 질주해 온 대한민국이란 베르세르크의 발자취를 되짚는 안타까움이다.

광주대단지 사건이 그저 과거 대한민국의 흑역사라고 생각했다면, 2000년대에는 청계천 공구상들을 가든파이브로 강제 이주시켰던 이명박 서울시장이 있었고 용산 인근의 빈민촌을 두고 외국 국빈들 보이기 부끄러우니 가림막이라도 설치를 해야 한다는 기사가 버젓이 2018년 대한민국의 일간지 1면을 장식했다는 것을 저자는 상기시킨다.

후암동 답사 중 발견했던 한국적인 정감이 넘치는 벽보

나는 세 차례 가량 저자의 서울 답사에 동행한 바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은평한옥마을이었다. 은평한옥마을은 저자가 책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서울이 걸어온 가장 폭력적인 발자취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앞서 말한 약자에 대한 초토화다. 조선 시대 이전부터 공동묘지로 기능하던 곳이라 개발 당시 5천 구가 넘는 인골이 발견됐지만 (최소한 한반도 주민들의 건강 상태의 변화를 시대별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고인류학 자료가 될 수 있었다), 한옥은 소중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무덤들을 깡그리 없애고 조성한 한옥마을에 오직 전라·충청·경상도 출신 지배 계층들의 거주 양식만 존재한다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다.

저자는 오늘날 서울시 등이 각종 사업을 벌이면서 말하는 ‘역사’가 모두 조선 왕조의 복권만 말하고 있다며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 이후의 현대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이 갖고 있는 주제의식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내가 생각하는 대목을 옮겨본다.

[quote cite=”김시덕, 서울 선언 (파주: 열린책들, 2018), 383″]현대 한국 시민들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유물 유적을 이해타산 때문에 깨끗이 없애 버린 다음에, 다른 나라의 도시와 박물관을 보고 와서는 <한반도의 유물 유적은 빈약하다>라고 말합니다. (…) 남탓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탓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잊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역사에서 지워 버리는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고는 합니다.[/quote]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