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저널리즘 역사는 1인칭 서술법에 대한 매우 나쁜 선례들을 보유하고 있다. 근래의 가장 유명한 사례라면 역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논란에 편승한 동아일보 최영해 논설위원의 ‘채동욱 아버지 전 상서‘를 들 수 있다. 다시 읽어봐도 한숨 밖에 안 나오는 글이다.
저널리즘에서 1인칭 서술법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다. 저널리즘의 생명이라고들 하는 ‘객관성’이 들어설 여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저널리즘에서 1인칭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아마도 1인칭으로 쓰면 독자들이 더 읽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중앙일보가 작년 9월에 국산 어뢰 ‘홍상어’의 발사 실패를 다룬 ‘또… 홍상어 실종사건‘ 같은 기사가 그렇다. 이 기사를 읽자마자 내 머리 속에서는 이런 상황극이 펼쳐졌다:
– 부장님, 기사 송고했습니다.
– 어디 봐봐… 야, 이래 가지고 독자들이 무슨 말하는지 알아먹겠어? 그냥 네 얘기만 할 게 아니라 독자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고. 이제 우리나라 대통령도 여자분이신데 여자분들도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써야지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기사를 써야지 그때 그때 필요한대로 기사 막 쓰고 그러면 안되지 너 지금 이거 썼다고 퇴근할 거야 아님 독자들이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시 쓰고 갈 거야?
– …네, 다시 쓰고 퇴근하겠습니다 부장님.
(지난 9월에 내 페이스북에 중앙일보의 홍상어 기사를 링크하면서 썼던 것)
군 무기체계 개발 실패를 다루는 기사는 아무래도 일반 독자가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몸이 아프기 때문이다. 평상시엔 괜찮은데 물속으로만 들어가면 머리가 어지러워 앞이 안 보인다” 라든지 “사실 난 태어나자마자 아팠다” 같은 문장이 과연 독자의 이해를 돋울 수 있을까? 오히려 유치한 서술 방식으로 독자를 무시한다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오늘, 중앙일보의 이영종 차장님께서 대한민국 1인칭 저널리즘의 역사에 일획을 그으셨다. 이번 1인칭 서술 대상은 그 스케일이 가히 장대하여 아마 역사상 최초라는 표현을 해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바로 김정은이다.
‘김정은의 신년 독백‘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실상 김정은이 무슨 속내를 품고 있는지 보다는 이영종 차장 본인이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북한 저널리즘의 역사에도 길이 남을 명문이라, 내가 시간만 좀 된다면 필히 영문으로 옮겨 전세계의 북한 저널리스트들과 전문가들과 함께 읽고 싶다.
서른 살이다. 이젠 남조선 노래 ‘서른 즈음에’를 부를 수 있는 나이다. 애연가인 나로선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이란 대목이 제일 좋다.
초장부터 필살기가 들어간다. 김정은 또한 남조선의 문물에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며칠 전 마식령스키장 리프트에서도 줄담배를 피웠다. 고모부 장성택 때문이다. 후계자 시절부터 건성건성 대하며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눈에 거슬리긴 했다. 그래도 처형까지 한 건 좀 심했다며 꿈결에 나타나는 바람에 자꾸 밤잠을 설친다.
그래, 김정은도 인지상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젠 누구도 내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그저 머리를 박고 내 교시를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다. 공포정치로 권력기반은 훨씬 탄탄해진 듯하다.
처음엔 서울과 서방 언론은 나를 ‘미숙하고 어린 지도자’라고 얕봤다. 그렇지만 이설주라는 예쁜 부인도 있고 딸 둘을 둔 아빠라는 사실에 날 좀 어른스럽게 대해줬다. 장성택까지 치고 나니 “깔봤다간 큰일날 인물”이란 말도 나온다. 좀 마음이 놓인다.
섹스와 폭력은 남자를 “어른스럽게” 만든다. 적어도 이영종 차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신다.
입주기업과 국민여론에 떠밀려 ‘제발 공단을 열어달라’고 애원할 줄 알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깐깐하게 나오는 바람에 골치 아팠다.
이영종 차장의 아스트랄 프로젝션 세션에 잠시 혼선이 생겨 피용익 기자가 빙의된 듯하다.
피용익 기자의 애틋한 대통령 사랑 pic.twitter.com/YXItpwydNN
— ㅍㅍㅅㅅ (@ppsskr) December 5, 2013
오늘밤엔 2005년 평양을 방문했던 박근혜와 아버지가 나눈 대화 녹취록이나 들춰봐야겠다. 그때 배석한 장성택은 또 뭔 얘기를 했을까 궁금하다.
이영종 차장, 아니, 김정은의 애틋한 장성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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