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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으로 외국어를 공부하려면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상 십자가처럼 지고 다녀야 하는 영어 외에 다른 언어를 공부할 마음이 생기면 그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영어 배우기는 참 쉽죠. 곳곳에 널린 게 학원이고 어학 서적이니까요. 하지만 그외의 언어, 흔히 제2외국어라고 부르는 언어를 공부하려고 하다 보면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저처럼 학원비가 아까워 (결국 그거 아껴서 술 먹곤 하지만) 독학을 선호하는 족속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에 (마음만) 진지하게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외국어 학습 방법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하는데, 예전에 우연히 구한 책에서 꽤 괜찮은 내용을 접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서 여러분들께도 알려드리려구요.

책 제목은 How to Learn Any Language: Quickly, Easily, Inexpensively, Enjoyably and On Your Own 입니다. 저자 Barry Farber는 미국의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이며 25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다고 합니다. 프랑스어, 노르웨이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는 거의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하고요, 한국어도 할 줄 안다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학원에 갈 시간이 없는 등의 이유로 독학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인 독학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책은 1, 2, 3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부는 외국어 학습에 대한 자전적인 경험을 담고 있고, 2부는 여러 언어를 습득하면서 자신이 개발한 효율적인 학습 방법을 소개하고 있고, 3부는 부록으로 자신이 익힌 언어에 대한 개괄과 문법 요소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습니다. 1부의 이야기는 재미있긴 하지만 기술적으로 도움될 내용은 별로 없습니다. 여기서는 2부의 내용을 주로 소개하고, 3부의 내용도 일부 정리하여 소개합니다.

외국어 학습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

  • 집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어학 테이프를 듣는다든지, 가요를 듣는 것 정도로는 결코 외국어를 제대로 익힐 수 없다.
  • 언어 학습을 시작했으면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느긋하게 했다가는 진전이 없다.
  • 어떠한 언어를 배우든지 난관에 부딪히게 마련인데, 이를 절대로 회피하면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언어의 알파벳 이름까지 다 익히기를 권한다. 나중에 네이티브와 대화할 때 단어의 철자까지 해당 언어로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억양이 완벽하지 않아도 뜻은 통한다. 그러나 보다 훌륭한 억양은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한다.

학습을 위한 도구

  • 기본서: 문법이 잘 다루어져 있어야 한다. 그 외의 것들은 다른 도구에서 얻을 수 있다.
  • 사전: 수록된 어휘가 다양해야 하고, 양방향(영한-한영)인 것이 좋다. 미리 신문 칼럼 등에서 가장 어려운 단어 몇 개를 적어서 그러한 단어가 있는지 살펴보라.
  • 여행용 회화책자: 저렴하고 가볍다고 무시하면 안된다. 실제로 네이티브와 회화를 하게 될 때에는 이만큼 유용한 게 없다.
  • 신문 또는 잡지: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처음부터 르몽드 1년치 정기구독을 하는 건 낭비. 우선은 딱 한 부만 있으면 된다. 해당 언어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접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 초등학생용 교재: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초보 단계에서는 유용하다. 신문/잡지 기사도 곧 익숙해질 것이니 구하기 어려우면 포기해도 된다.
  •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카세트 교재: 저자는 여기서 특히 Pimsleur 교재의 우수성을 강조함 (이제는 팟캐스트 등등 다양한 무료 교재가 있기 때문에 별로 필요없다고 생각해요)
  • 플래시 카드: 어휘 암기용 (요새는 Anki 같은 훌륭한 플래시카드 대용 앱이 있으니까 이걸 쓰시면 됩니다)

학습법 – The Multiple Track Attack

    • 언어 학습법으로 유명한 찰스 벌리츠는 “단어나 문장을 단순히 50~100번 읽는 것보다 큰 소리로 10~20번 읽는 것이 더 유리하다”라고 말한 바 있음
    • 마찬가지로 문법책 하나만 가지고는 문장이나 단어를 50번 접해도 기억에 잘 남기가 어렵다. 그러나 똑같은 단어나 문장을 신문이나 잡지에서 읽거나 또는 영화나 방송에서 듣게 되면 보다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즉, 하나의 도구만 사용하지 말고 갖은 도구를 다 사용하여 여러 방향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 이 Multiple Track Attack의 요체.
    • 먼저, 문법책을 펴서 다섯 챕터 정도를 학습한다. 중간 중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연필로 표시를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적어두었다가 이후에 네이티브를 비롯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물어본다. 이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미국의 경우에나 가능할 것이고… 우리는 인터넷을 활용하면 되겠죠.
    • 당장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일단 넘어간다. 다섯번째 챕터를 익히기 전까지 다른 도구에는 손대지 말고 문법에 대해서만 학습할 것. 누가 뭐라 해도 문법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 신문 또는 잡지의 첫 페이지의 첫 기사를 읽는다. 모르는 단어에는 형광펜 등으로 줄을 긋는다. 십중팔구 첫 단락에 있는 거의 모든 단어에 줄이 그어졌을 것이다.
    • 이제 사전을 펼쳐 줄 친 단어들을 찾는다. 네 가지의 경우와 맞닥뜨릴 것이다:

      ① 찾던 단어 그대로가 사전에 있는 경우
      ② 단어의 시작은 같은데 끝 부분이 다른 경우(사전에 있는 단어가 동사원형)
      ③ (사전의 어휘 부족으로) 사전에 단어가 없는 경우
      ④ 아직 당신이 모르는 문법상의 변화로 해당 어휘를 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경우

    • ①과 ②의 경우에는 플래시 카드에 기록, ③과 ④의 경우에는 질문 카드에 적어두었다가 네이티브를 만나거나 할 때 사용
    • 출근길이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을 비롯한 생활 중간 중간 틈틈이 플래시 카드를 사용하라. 질문 카드와 플래시 카드는 따로 보관할 것
    • 기사를 읽다가 흥미가 떨어졌다고 해서 다른 기사로 넘어가지 말도록. 꾸준히 해야 한다.
    • 위의 방식으로 학습을 계속하면서 이제 회화책도 활용한다. 기초적인 대화와 발음을 익힌다.
    • 카세트 테이프 학습시에는 꼭 대본을 함께 보면서 듣도록. (핌슬러는 제외)
    • 기억술로 유명한 해리 로레인의 외국어 단어 기억술: 우리 학창 시절에 써먹던 드러운 방법(칼카나마 알아철리… 같은)을 놀라운 방법이라고 소개합니다 -ㅅ-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어떻게든 외우기 위해서 내러티브를 만드는 행위가 암기에 도움을 준다는 것.
    • 네이티브와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때를 위해서 “부목”이 되어줄 문장들을 미리 익혀두는 것이 좋다:

      “알아들겠어요?”
      “저는 당신의 언어를 잘 하지는 못합니다”
      “조금만 천천히 말해주세요”
      “다시 한번 말해주셈”
      “당신네 언어로 그걸 뭐라고 하죠?”“미안합니다.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에서부터
      “아직 초보자이지만 당신의 언어에 능숙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언어를 배우려는 사람을 위해 대화를 좀 나누어 주실 수 있나요?”
      “당신네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한만큼 언어도 쉬웠으면 좋겠군요” 같은 표현까지, 대화를 이어나가는 나름의 ‘루틴’을 개발하라.

  • 표현하고자 하는 게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말라. 언어를 익히는 것과 바로 떠오를 수 있게끔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일상 생활에서 모국어 회화를 할 때에도 해당 언어로 어떻게 표현이 될 지 고민을 해야 한다.
  • 최소 하루에 한번씩은 자신을 UN 통역관이라고 상상하며 상대방이 (모국어로) 내게 하는 말을 공부하는 언어로 통역해보자. 상대가 다섯 단어 이상을 말했는데도 잘 모르겠으면 그 즉시 그 말을 플래시 카드에 적고 사전을 찾아 연습한다.
  • 어족을 알면 추가로 다른 언어를 배우는 데에 도움이 된다. 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는 불가리아어와 70% 정도 유사하다. 러시아, 벨로루시, 폴란드, 우크라이나,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언어도 같은 어족에 속해 있어 유사하다.로마어족(이탈리어, 스페인, 포르투갈, 심지어 프랑스어까지)들끼리도 마찬가지.힌두어(인도)와 우르두어(파키스탄)은 거의 동일한 언어이다.네덜란드어는 독일어와 유사할 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에서는 주요 언어이고 벨기에에서는 프랑스어와 함께 주언어에 속한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언어별 개괄

영어 외에 다른 언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자신이 익힌 언어에 대한 촌평도 부록에 넣었습니다. 아직 무슨 언어를 배울지 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하리라 생각되어 함께 소개합니다. 여기서 소개한 것 외에도 다른 언어들(아랍어, 핀란드어, 중국어, 일본어, 이디쉬 등등)의 촌평이 있습니다만 (귀찮아서) 다 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 프랑스어: 영어 다음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외국어. 더는 외교어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지 못하지만, 캐나다, 아프리카,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 국가,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폴, 버마, 베트남 등지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여전히 사용한다. 난이도는 중간 정도. 문법은 상당히 간단한 편이나 정확한 발음과 억양을 익히기는 어렵다. 특히 프랑스인들은 발음과 억양에 까다로운 편.
  • 스페인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명실공히 영어에 이어 제2의 언어. 프랑스어처럼 발음이 까다롭지도 않다. 문법은 프랑스어와 유사함. 스페인어를 익히면 포르투갈어는 반값에 익힐 수 있다.
  • 포르투갈어: 브라질 덕택에 세계의 주요 언어로 남아있다. 발음은 프랑스어보단 쉬운 편이고 문법은 스페인어보다 조금 어려운 정도. 스페인어를 먼저 배운 사람에게는 포르투갈어가 약간 이상한 스페인어처럼 들릴 것이다.마찬가지로 독일어를 먼저 배운 사람에게는 네덜란드어가, 노르웨이어를 먼저 배운 사람에게는 덴마크어가, 러시아어를 먼저 배운 사람에게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가 그렇게 들릴 것이다.
  • 독일어: 독일, 오스트리아의 언어이고 스위스의 공식 언어 3개 중의 하나.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체코,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에서도 종종 통한다. 문법이 꽤 어렵지만 최고 난이도까지는 아니다.
  • 이탈리아어: 라틴어의 쉬운 버전. 프랑스어와는 달리 발음도 분명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발음만 익히면 바로 책을 읽어도 (네이티브가) 알아들을 수 있다. 영어보다도 발음이 규칙적이다. (똑같은 gh도 tough, weigh, night, though를 생각해보라. 예전에 이탈리아 출신 친구가 한국어도 쓴대로 발음되고 이탈리아어도 쓴대로 발음이 되는데 왜 영어는 이따위냐고 말했던 게 떠오릅니다)
  • 네덜란드어: 벨기에에서는 프랑스어와 함께 주요 언어로 통용된다. 벨기에에서는 공식적으로 Flemish라고 부르지만 네덜란드어와 다른 게 없다. 인도네시아는 400년 동안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여전히 교육받은 계층에서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한다고. 남아프리카 백인들이 쓰는 언어도 네덜란드어. 어순이 독일어보다는 영어에 더 가까워 영어를 익힌 사람에게는 독일어보다 배우기 쉽다. 독일어와는 40% 정도 유사.
  • 러시아어: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란 극도로 어렵지만 러시아인들은 어설픈 러시아어에도 익숙하다. 키릴문자가 매우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20분만 공부하면 다 익힐 수 있다. 진정한 장애물은 문법에 있다. 러시아어를 익히면 10가지 이상의 슬라브 어족의 언어를 쉽게 익힐 수 있다.
2011년 9월 이글루스 블로그에 썼던 글을 다듬은 것입니다.

Comments 4

  1. Pingback: ‘6개월 안에 외국어 배우기’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 | Subin Kim

  2. 혼자 영어공부를 하고있는데 덕분에 도움이될만한 정보를 알아갑니다. ^^

  3. Pingback: 32개 언어를 구사하는 남자 | Subin Kim

  4. 러시아어에 관한 평은 좀 과장되었는 것 같군요. 박신양, 손연재 둘 다 러시아어를 잘 구사합니다. 배울 기회만 있으면 새상 모든 언어가 다 거기서 거깁니다. 사실 발음은 러시아어보다 영어가 더 힘들지요.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젠 영어가 상류사회 언어가 되었습니다. 맥주는 아직까지 네델란드 흐롤스표를 많아 마시는데, 언제부터인가 미국산 버드를 많이 마신다고 카더라. 그래서인지 미국 출신 인도네시아 전문 외교관, 학자들이 속으로 인도네시아 사람들 (대통령, 노벨상 수상자, 4성 장군 포함)을 비웃늘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프랑스어가 상류사회 언어지요. 유럽사람들 사이에서 프랑스어를 쓰면 좀 귀족 비슷한 대우를 받습니다. 그런데 서유럽에서는 라틴어 문법만 잘 알면 귀족들 사이에서도 귀족 대우를 받지요. “He/she’s one of us,” – 유유상종이라고 해야할까? 프랑스어 잘 하면 중산층 사람들과 말을 섞고, 라틴어를 하면 진짜 귀족(영국,프랑스,독일에는 그런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들이 당신과 대화를 나눌 확률이 높아지지요. 한국 사람이 영어만 잘하면 결국 인도네시아 사람들처럼 속으로는 비웃음 당합니다. 프랑스어는 동사가 좀 난이도가 있습니다. 각 동사가 14가지로 변합니다. (1.present indicative, 2. passe compose, 3. passe simple, 4. plus-que-parfait, 5.preterit, 6. preterit perfect, 7. conditional, 8. conditional perfect, 9. future, 10. future perfect, 11. subjunctive present, 12. subjunctive past, 13. subjunctive past perfect, 14. subjective simple past.) 프랑스어를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될 수 있는데로 빨리 동사를 완성하는데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동사 70개를 선별해서 매일 14가지 변화유형으로 하나씩 손으로 종이에 적으세요. 제 1 일: 1. present indicative만, 동사별로 70번, 제 2 일: passe compose만, 동사별로 70번 쓰기 등등. 뜻은 알 필요없고 그냥 쓰세요. 자전거 타는 법 배우는 거랑 같은 원리입니다. 백독이 불여일필. 이렇게 강행군하면 14 안에 프랑스어 동사를 완성할 수 있지요. 다음은 대학교에서 쓰는 1학년 교재를 열공하면서 완독하기. 동사는 벌써 아니깐 교재를 동사의 변화 원리를 이해하고 기초 단어 암기 목적으로 이용하세요. 하루 한 찹터, 한 2 주일 이면 완성합니다. 다음은 좋아 하시는 프랑스 소설을 원본으로 구입하셔서 그냥 읽으시면 됩니다. 레미제라블이 고전 중에서는 가장 읽기가 쉽지요. 하루 30분, 한 3년 열심히 읽으시면 귀가 뚫릴 겁니다. 그리고 한 17년 더 지나면 프랑스 말 참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7살 난 프랑스 소녀에게 이 동양 사람 프랑스어 참 잘한다는 소릴 듣고 자괴감이 느껴지더군요. 내가 7살 난 애한테 칭찬 받으려고 20년을 허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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