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사탕’의 가사에 대해 설명해보렴
—몇 푼이면 어느 가게에서나 살 수 있는 막대사탕을 좋아하는 소녀에 관한 것이죠. 그게 다죠, 아닌가요?
—그래, 그게 다지.(위 영상의 도입부에서)
프랑스 갈(France Gall)이라는 어린 여가수의 노래 <막대사탕(Les Sucettes)>을 가사(프랑스어 원문 및 영문 번역)와 함께 들어보면 어지간한 성인들은 깜짝 놀랄 테다.
막대사탕의 이미지와 “막대사탕이 목구멍을 타고 흐르면 애니(Annie, 노래에서의 화자)는 천국에 있네”, “몇 푼이면(pour quelques pennies, penny의 복수형이 penis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걸 생각해보자) 애니는 막대사탕을 가질 수 있어” 상당히 노골적인 은유가 천진난만하고 아름다운 소녀 프랑스 갈의 이미지와 섞여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966년에 발표된 이 곡은 당연히 발표되자마자 커다란 스캔들을 불러 일으켰다. 이 곡을 갈에게 써준 이는 바로 세르주 갱스부르였다. 매우 의도적이었으며 그 의도는 적중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프랑스 갈의 희생이 따랐다.
가족들이 모두 음악과 관련이 깊었던 프랑스 갈은 16세이던 1963년에 낸 첫 싱글 <Ne sois pas si bête> 으로 일약 히트 가수가 되었다. 갈을 눈여겨 본 세르주 갱스부르는 그녀의 두 번째 싱글 <N’écoute pas les idoles>을 써주었고 이듬해 이 곡은 프랑스 차트 1위를 했다.
갈의 가수로서의 커리어의 정점은 그 이듬해인 1965년이었다. 그녀는 갱스부르가 써준 <Poupée de cire, poupée de son>로 유로비전 컨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많이 긴장해서인지 표정도 많이 굳어 있고, 노래의 시작과 중간 중간에서 눈에 띄게 음정을 벗어난다.
이렇게 불렀음에도 그랑프리를 탔을 정도로 갱스부르의 곡이 심사위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1966년, 문제의 ‘막대사탕’이 발표되었다.
놀랍게도(?) 당시 18세였던 프랑스 갈은 노래 가사 속의 숨은 뜻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녀가 가사가 은유하는 것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일본 도쿄에서 투어를 다닐 때였다고, 갈은 훗날의 인터뷰에서 토로했다.
(관련 다큐멘터리 클립)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그녀는 한동안 집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막대사탕’의 스캔들(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프랑스는 사실 상당히 보수적인 나라이다. 1966년에는 물론 더했다)로 갈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고 오랜 세월동안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갈은 지금까지도 갱스부르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기를 꺼려하며 갱스부르가 써준 곡들은 절대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위의 다큐멘터리 클립을 보면, 프랑스 갈이 가사의 숨은 뜻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것은 거의 확실한 듯하다. 무엇보다도 ‘가해자’가 그 사실을 (웃으면서) 밝힌다. 이후에도 갱스부르는 순진한 소녀의 이미지를 자신의 음란함과 잘 버무려 상업적인 성공을 일구어내곤 했다.
세르주 갱스부르는 단연 훌륭한 음악가였다. 그리고 영악한 흥행사이기도 했다. 원래 쇼비즈니스가 다 젊고 싱싱한 영육들을 착취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프랑스 갈의 경우를 보면 좀 씁쓸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hat tip to Dangerous Mi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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