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note_color=”#e8e8e8″]이글루스 블로그에 2011년 1월 14일 올린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NYC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는 Jay Rosen의 The Journalists Formerly Known as the Media: My Advice to the Next Generation을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하면서 가장 골치 아팠던 것은 먼저 제목인 The Journalists formerly known as the media와 이후에 나오는 The People Formerly Known as the Audience and the Audience Properly Known as the Public이었습니다. formerly나 properly를 원문이 주는 운을 맞추면서 번역하려니 난감하더군요. 처음에는 ‘한때 청중으로 여겨졌던 인민들…’ 이렇게 번역을 했다가 지금 이 구문이 뜻하는 게 ‘옛날엔 그랬는데 이젠 아니다’라는 뜻이 더 강하다고 여겨져서 ‘더는 청중이 아닌’ 식으로 고쳤습니다. public을 번역하기도 무척 난감했었어요. 어쨌든, 이제 읽어보시죠.[/note]
이 글은 2010년 9월 2일, 내가 프랑스 파리의 Sciences Po école du journalisme에서 공개 강의로 진행한 내용을 다듬고 보충한 것이다. 프랑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였지만 오늘날 저널리즘을 공부하고자 하거나 아니면 다시 공부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같이 디지털 세계에 깊이 연관된 교수들이, 여러분들처럼 이제 막 저널리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하게 되면 보통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 블로그를 해야 한다.
- 검색 엔진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 플래쉬는 물론이고 HTML5도 알아야 한다.
- Google analytics같은 웹 측정도구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 오디오 녹음이나 비디오 편집 정도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한다.
- 이젠 모바일은 기본이다. (“모바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니깐!”)
물론 이 모든 이야기들은 사실이고,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을 하고자 한다. 당신이 사용자들을 무엇이라 상정하느냐에 따라 저널리스트로서의 당신의 자질이 결정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권력의 이동
프랑스어에서는 ‘대중public’이라는 단어가 ‘청중audience’이란 단어가 동일해서, 내가 처음에 지었던 강좌명인 ‘더는 청중이 아닌 인민과 이제 공중이 된 청중The People Formerly Known as the Audience and the Audience Properly Known as the Public’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그래서 먼저 몇가지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 <네트워크>라는 1976년 영화인데, 하워드 빌이라는 미친 TV 뉴스 앵커가 생방송에서 자신의 광기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이해한 바로는, 감독이 우리에게 집단으로서의 청중mass audience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 공간에서 사람들을 배치하고 연결하는 특정한 방법 말이다. 시청자들은 거대한 규모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개개인끼리는 단절되어 있다. 내가 선호하는 표현으로는, ‘원자화atomized’되어 있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내가 예전에 쓴 Audience Atomization Overcome 참조). 그런데 하워드 빌은 이제껏 어떤 사람도 TV에서 시도한 적 없는 일을 벌인다: 그는 텔레비전을 통해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을 그만 보라고 외친다.
시청자들이 TV 앞을 떠나 창문으로 달려갈 때, 그들은 대형매체를 떠나 그간 단절되어 있던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것이다. 그들의 외침이 텅 빈 골목에 울려 퍼질 때서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TV 바깥에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하워드 빌이 이 오갈 데 없는 분노에 대해 외치기 전까지 그들은 각자의 원자화된 동시성simultaneity 속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경기 침체니 물가 상승이니, 러시아놈들이니 거리의 범죄니, 이런 것들에 대해 대체 뭘 해야 될지 모르겠수다! 내가 아는 건 일단 여러분들이 빡쳐 돌아야 한다는 거요!”
내가 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여러분들에게 보여준 이유는, 이게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거대한 사건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화된 ‘집단’으로서의 청중 개념 붕괴와 이에 수반된 권력의 이동. 만약 오늘날 누군가가 TV에 나와 하워드 빌이 하듯이 했다면 어떻게 될까? 마침 TV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즉시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이다. 누군가는 곧 유튜브에 그 동영상을 올릴 것이다. 블로거들은 전문비평가들이 무어라 논평하기도 전에 자신들의 코멘트를 달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날의 매체 세계는 변했다. 사람들은 대형매체에 연결되어 있던 시절 못지 않게 효과적으로 수평적인 연결을 구축하였으며, 이제 자신들의 손에 생산력을 쥐게 되었다.
생각할 줄 알게 된 대중
이런 류의 변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이번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근대적 공화정의 단초를 연 25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언론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대중이 존재하기 전, ‘여론’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전, 어떠한 종류의 정치적 저널리즘이 존재하기 전, 그 시절 정치라는 것은 왕의 업무에 불과할 뿐이었다. 모든 것은 왕의 소유 하에 진행되었고 정부의 모든 일은 비밀리에 진행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때에도 공개성publicity이란 것은 존재했지만 권력의 전당에서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표현을 빌자면, ‘선전이나 조작을 위해 연출된 공개성’이나 왕권과 국가의 영광을 돋보이게 하거나 아니면 그런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제의들에 불과했다. 절대주의는 왕좌에 정치의 소유권을 부여했으며 이는 국가 업무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포함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1764년, 프랑스 국왕은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해서도, 국가재정 개편에 대한 어떠한 것도 인쇄하거나 선전하거나 소문을 퍼뜨리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단지 언론의 자유가 없었던 것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이는 사실이지만 그보다도 왕의 비밀은 인민들이 신경쓸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국가의 업무는 그 인민들에게 속한다는 사상은 아직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러한 사상(오늘날에서라면 ‘국민의 알 권리’로 표현될) 없이는, 저널리즘의 실천이란 불가능하다. 보다 정확히는, 생각할 수 없는unthinkable 것이다.
그러나 1781년, 프랑스 국왕의 재무총감 자크 네케르Jacques Necker가 국가 재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간행한다. 간행 첫날 3000부가 팔렸다.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그가 당시 왕정이 얼마나 심각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데에 실패했으며 부채이자에 대한 부분을 숨겼다고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재정보고서를 간행함으로써 네케르는 새로운 관념을 심었다: 대중의 신뢰는 투명성을 요구한다. 여론은 무시될 수 없다. 이 궁궐 바깥에 대중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제아무리 왕이라도 그에 어필해야 했다.
그렇다면 1764년과 1781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복잡해서 그 내용으로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우리는 그런 책을 가지고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 변동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는 그러한 변화의 요인에 대해 간단히 나열만 하도록 하겠다:
- 인쇄도서 시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쇄물의 증가와 전파. 프랑스에서 인쇄하거나 판매하는 것이 불법인 책은 네덜란드에서 인쇄된 다음 밀수될 수 있었다.
- 정기간행물의 부상.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여 합법적으로 유통되거나 노골적인 표현으로 은밀하게 유통되던 신문과 소책자pamphlet들이 공공 부문에 대한 공개적 토론이란 개념을 퍼트렸다. 이는 억누르기 힘든 것이었다.
- 읽은 것들에 대해 문학 살롱에서 토론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유사한 방식으로 언론의 기사에 대한 논평을 달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선술집과 커피집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했다.
- 국제자본주의의 출현으로 하버마스가 공론장에서의 ‘전령carrier 계급’이라 이르는 지식 부르주아literate bourgeoise가 탄생한다. 이들은 ‘선전이나 조작을 위해 연출된 공개성’에 감명받진 않았으나 정부가 제때에 갚을 수만 있다면 프랑스의 채무를 구입할 용의가 있었던 상인, 무역인, 사업가 계층이었다. 네케르가 재무보고서를 작성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그가 여론을 두고 “어떠한 재물이나 군사력도 없이 도시, 법정, 심지어는 궁전에까지 스스로의 법을 부여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라 말했을 때, 이들을 염두에 둔 것이 틀림없다.
- 왕과 그 신하들이 아닌, 이성을 최고의 권위sovereign에 두는 계몽사상의 전파. 네케르와 같은 이들이 찬양했던 ‘여론’은, 많은 귀족들을 겁먹게 만든 폭력적인 소요가 아닌 합리적이고 원만한 의견을 뜻했다.
- 왕권신수설과 전제주의를 넘어선 권력의 근거authority를 찾기 위한 시도. 네케르는 ‘구체제ancien régime’의 마지막 시기를 프랑스 국왕을 위해 일하면서, 개혁을 추진함과 동시에 왕권을 합리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 근거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그는 여론을 ‘판관’에 비유하면서 “군주들 또한 이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가 키스 마이클 베이커Keith Michael Baker는 이러한 복잡한 변화를 “군주의 공민에서 공화국의 주권민으로From the public person of the sovereign to the sovereign person of the public”라고 표현했다. 저널리즘이란 것이 태동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변화를 필요로 했다. 사실 정기간행물의 부상과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대중의 등장, 그리고 군주들도 존중하게 된 여론의 힘은 어떤 특정한 사건의 세 가지 국면으로 묘사될 수 있을만큼 나란한 발전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들이 겹치면서 마침내현대 저널리즘이 가능하게 되었다.
문 밖의 사람들
이 시기 영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다. 1750년 의회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귀을 기울여 보면 ‘문 안의 사람들’이란 표현을 종종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회기에 모인 의원들 스스로를 일컫는 표현이었다. 이 소수의 엘리트 그룹이 어떻게 영국 인민들을 대표하게 되었을까? 대중 선거를 통한 선출은 100년 이후에나 가능했다. 국왕이 의회와 상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의회는 스스로를 인민과 동일시하였고 국왕은 의회를 통해 나라 전체와 상의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허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당시의 지배적인 허구였다. ‘문 안의 사람들’은 그들이 모든 인민을 대표하는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문 밖의 사람들’이라는 표현 또한 사용하였다. 물론 이 표현은 그들 외의 다른 모든 이들을 일컫는다. 국왕은 이 문 밖의 사람들과 상의할 필요가 없었으며 이들 또한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사실 당시에는 의회에서 논의된 것에 대해 출간을 하거나 인쇄물을 통해 국왕을 공격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의사당 안에서 ‘문 안의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었다. 의원은 국왕의 정책에 대해 바보같다고 비난하여도 추궁받지 않았으나 같은 내용을 소책자에 담아 인쇄하는 사람은 바로 체포되었다. 여기서 인쇄업자이자 정치가인 존 윌크스John Wilkes와 의사록을 인쇄할 권리(1771년에 제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죄다 늘어놓을 생각은 아니다. 그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국왕과 각료, 그리고 의회의 전유물이었던 정치가, 신문을 통하여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논의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보다 열린 체제로 나아갔다는 것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대중을 무시하기란 점점 어려워졌고 투명성을 향한 제스처가 점차 일반화되었다. 온전히 발효하는 데에 긴 세월이 걸리긴 했지만, 인민 모두의 직무로서의 정치, 표현과 언론의 자유, 의회 의사록을 기록하고 이를 신문을 통해 발행할 권리와 같은 저널리즘 실천의 기본 권리가 제정되었다. 문 밖의 사람들은 점차 성장하여, 마침내 알 권리를 가진 대중이 된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저널리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들을 필요로 했다. 이것이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이다.
여론의 조작The engineering of opinion
나는 지금 개념 차원에서 이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에 대해 말할 수도 있을 테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는 모든 인민들… 그리고 그에 대한 공개된 논의… 이를 통해 형성된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의견… 그리고 이를 경청하는 위정자들… 허나 여태껏 이러한 묘사가 경쟁적 민주주의 하의 사회에 적용 가능했던 적은 없었다. 이를 보다 현실화시키고 보다 많은 인민들을 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들이 있었으며 지금도 투쟁은 계속 되고 있다. 우리의 현실과 이상향을 대조해 보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고찰이 필요한 끝없는 복잡함이 있다. 이를테면, 대중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조작과 선동의 수단이기도 하다. 근대 사회로 들어서면서 이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제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1919년의 파리 강화 회의 때로 들어가보자. 이전과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이전의 국제 회의에서 종전 처리나 국경 확정을 논의할 때에는 비밀리에 협상을 시작하여 몇 주 후에 결과를 들고 나와 본국에 전파하곤 했었다. 파리에서는 새로운 형태가 나타났다. 미국 협상단은 150명 이상의 특파원을 대동하고 나타났으며 외교가들에게 개막 회의 참관을 요구하여 충격을 주었다.
비록 요청은 거부당했으나 특파원들은 당시 회의의 진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느 나라에서 제안한 사항이라든지 각국의 논의 내용 등이 특파원들에게 알려지면 그들은 전신을 통해 본국으로 급보를 날렸고, 곧 다음날 신문에서 그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같은 회선을 통해 (방향만 반대로) 소식을 접한 대중들의 반응이 전달되었다. 이는 당시 파리에 모여있던 영국과 프랑스, 미국(승전국)의 정치가들을 압박하게 되었다. 결국은 본국에서 선거철을 맞이할 것이고 심지어는 불신임의 가능성까지 고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타블로이드 신문의 편집자가 파리에서 논의된 내용의 파편만 가지고도 런던에서 신문이 팔리기 충분하도록 손보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이었는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여론이 점차 강력해질수록, 이를 조작하여 얻는 이익도 커지게 된다.
20세기에 들어 우리는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케이블과 같은 현대 대중매체의 부상을 보았다. 이들 모두 매우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으며 국가권력에도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20세기의 혁명은 왕궁을 함락시키는 식이 아닌, 송신탑을 점거하는 식으로만 가능할 정도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는 대중informed public’과 최후의 보루the final court of appeal로서의 여론 개념이 사라진 적은 없었으나 곧 비슷한 유형의 개념과 경쟁해야 했다: 집단청중과 이들을 홀리는appealing 사업.
더는 매체가 아닌 저널리스트들
그러나 오늘날 집단청중mass audience는 무너지고 있다. 이제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내가 2006년에 <더는 청중이 아닌 사람들>이란 글을 쓴 이유이다:
한때 청중으로 알려졌던 이들은 각종 매체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한다. 또한 당신이 지금껏 들어온 매체의 판도platform가 변하면서 발생한 권력의 이동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어한다. 당신이 배의 선장이라고 가정해 보자. 당신 배에 탄 모든 이들이 각자의 보트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독자. 카메라를 든 시청자. 이전에는 원자화되어 있던 청취자들이 이제는 약간의 노력만 가지고도 서로 연결될 수 있으며, 세계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오늘은 이에 덧붙여 또다른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이제 더는 청중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 있는 저널리스트들도 더는 ‘매체’가 아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그러니까 다음 세대의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우리들을 새롭게 정의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디지털 혁명이 생산의 도구와 분배의 힘을 한때는 청중에 불과했던 인민의 손에 쥐어줌으로써 새로운 균형점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은 한때 매체로 기능했던 저널리스트, 전령 계급이 되어 저널리스트들이 생산하는 것을 수용하는 ‘문 밖의 사람들’에 대해 새로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앞으로 이어질 긴 투쟁의 또다른 장에 불과하다. 관심을 갖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스스로를 일깨우며, 무엇이 요구되는지 논의하는 민중이라는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투쟁.
내가 좋아하는 매체 연구에 대한 어느 저술을 인용하여 ‘더는 매체가 아닌 저널리스트’가 뜻하는 바를 더 명확하게 설명하여 보고자 한다. 대중매체 연구로 잘 알려진 영국의 작가이자 사회학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1921~1988)가 주창한 것으로, 그는 1958년에 “대중이란 건 없다. 오직 인민을 대중으로 보는 방식이 있을 뿐”이라고 썼다. 덧붙이자면, 윌리엄스는 지역 신문이 (같은 동네에서 살고, 학교, 직업, 걷는 길거리를 공유하며,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독자를 대하는 방식과 영국 전역에 팔려나가는 일간지와 타블로이드지가 독자를 대하는 방식을 비교했다.
인민을 대중으로 보는 방식은 대중 매체와 전문 매체 종사자들에 의해 지난 150년간의 번영기(185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를 거치면서 특화되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방식이 민중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일부에 집중되어 있던 어느 시기의 것에 불과함을 안다. 1920년대에 시작된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은 전적으로 이 시기에 태어나 성장했으나, 다시 말하거니와, 여러분들에게는 이것에서 탈출할 기회가 주어져 있다. 더는 매체가 아닌 저널리스트는 다른 방식을 특화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인민을, 스스로 매체를 만들 수 있는 민중으로 보는 방식.
나의 조언
이제 이 방식이 여러분 세대의 저널리스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 독자, 시청자, 소비자를 ‘사용자user’로 대체하라. 저널리즘의 수용자들을 무어라 일컫는 게 좋을까? 플랫폼 중심의 명명법, 그러니까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를 빌어 명명하는 대신, 그냥 이들을 사용자라고 부르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이는 데이브 와이너Dave Winer가 사용하는 방식을 내가 빌려온 것이다. 사용자는 보다 적극적인 주체이자, 모든 플랫폼에 통용될 수 있다. 내가 아까 말했듯, 사용자를 무어라 상정하는지가 저널리스트로서의 당신의 자질을 결정할 것이다.
- 사용자들은 당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음을 명심하라. 댄 길모어Dan Gilmor의 유명한 선언 “내 독자들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를 빌려온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수용측에 있는 사용자들은 일개 저널리스트로서의 당신보다 더 많은 지식, 인맥, 경험과 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언제나 사실이었고 심지어 1950년대에도 그랬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자신들의 지식을 가지고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게 (그리고는 가르칠 수도 있게) 되었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자: 뉴욕타임즈가 가진 가장 가치있는 것은 그 간판과 명성이다. 두번째로 가치있는 것은 그 필진들의 능력과 경험이다. 그리고 뉴욕타임즈가 ‘가진’ 세번째로 가치있는 것은 그 사용자들이 가진 지식과 교양sophistication이다. 만약 이를 잘 활용하여 기사를 개선시키지 못한다면 뉴욕타임즈는 자신들이 가진 거대한 전략적 이점을 이용하는 데에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뉴욕타임즈의 편집자들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 권력의 이동은 이미 끝났고 저널리즘의 상호화mutualization는 이미 진행 중이다. 이는 영국 가디언紙의 편집자인 앨런 루스브리저Alan Rusbridger의 아이디어(상호적인 뉴스 조직mutualised news organization)다.
그가 뜻한 바는…우리는 사람들이 신뢰하는 편집, 보도, 전문 분야, 접근법, 타이틀, 브랜드와 직업윤리, 그리고 매우 거대한 독자층community를 한데 모아 고려한다. 이 독자층의 구성원들은 이전에는 이러한 청중을 원할 수도 없었고 가질수도 없었다. 그들은 우리가 탐사보도를 할 때 그들의 참여가 없다면 상상할 수도 없었을 두터운 다양성과 전문 기술을 제공한다.
우리는 중요한 것들을 제안하며 사용자들도 마찬가지다. 고로 우리는 그들을 포함한다. ‘사람들을 공중public으로 보기’란 이를 뜻한다.
- 사람들의 참여를 도울 수 있는 방식으로 세계를 묘사하라. 참여할 때 사람들은 정보를 구한다. 정보제공자는 이 연관을 잘 파악해야 한다. 내가 이코노미스트紙에 기고한 것처럼,
나의 관점으로는, 저널리스트는 우리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묘사해야 한다. 그게 바로 저널리스트들이 존재하는 이유아닌가. 그러나 너무나 자주 그들은 우리를 멀찍이 거리를 두고 주변을 관찰하는 똘똘한 분석가로 만들곤 한다. 마치 우리가 우리 민주주의의 구경꾼이거나 동료 시민들을 조종하는 자인 것인양 말이다. 괴상하지 않은가?
이 기고문이 나간 후 이코노미스트紙의 한 필자는 “아마도 ‘정치’라는 단어는 불필요한 제한이다. 보다 일반적으로는 정치적, 지역적(원문에서는 local과 civic을 함께 나열하는데 우리말로는 둘을 구분하기가 난감하여 그냥 지역적 하나만 남김 -옮긴이), 문화적 등등 모든 측면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세상을 묘사하는 것이 저널리스트들의 일”이라고 썼다. 옳은 말이다.
-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두가 하지는 않는다. 넷에서의 사회 매체social media와 행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1%의 법칙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관측 가능한 이 법칙은,
요새 부상하고 있는 경험법칙으로서, 만약 100명이 온라인에 있다면 1명이 콘텐츠를 만들고 10명이 그에 ‘상호작용(의견을 달거나 개선을 제안하는 등)’하고 나머지 89명은 그저 구경만 한다는 법칙이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 온라인에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영화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의 대사를 빌자면, 당신이 야구장을 완성한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오겠지만, 현실에서 문제는 구장을 지어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내가 이 법칙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로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두가 하지는 않는다’이다. 그러나 누가 당신의 초대를 받아들일지 예측을 전혀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 법칙은 우리의 기대심리를 제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사람들을 공중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그들이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에 대해 망상하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더는 청중이 아닌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는지에 대해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 저널리스트는 그저 더 잘 알고 있는 시민일 뿐, 특별 계층이 아니다. 저널리즘은 뇌수술 같은 것도 아니고 보잉 747기를 조종하는 것도 아니다. 프로페셔널 저널리스트는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고,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하고 흩어진 사실들을 연결하는지를 안다. 이건 무슨 비의적이거나 특수한 기술이 아니고 그저 명석한 시민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것들이 보다 발전된heighten 것일 뿐이다. 시민들이 특파원을 대신하거나 토론 중 후보자들에게 질문을 던질 기회를 갖게 될 때 우린 이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들은 프로페셔널 저널리스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잘한다. 이것이 실마리이다.
- 여러분의 권위는 “난 현장에 있고 당신은 그렇지 않으니, 내가 이야기를 해주겠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만약 ‘누구나’ 매체를 생산하고 세상에 공유할 수 있다면 프로 저널리스트를 특별하게, 귀기울일만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기자 출입증이나 기사 끝의 서명, 대형 매체회사에 고용되어 있다는 사실 따위는 아니다. 아마도 프로 저널리스트로서의 권위는 제임스 케리James W. Carey가 ‘보도의 개념’이라 이른 것에서 계속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사용자들에게 “난 현장에 있고 당신은 그렇지 않으니, 내가 이야기를 해주겠다” 혹은 “나는 당시 시위 현장에 있었고 당신은 아니었다. 내가 경찰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이야기하겠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또는 조금 말을 바꾸어 “나는 당시 석유 시추시설이 폭발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일꾼들을 인터뷰했다. 당신은 그렇지 않으니, 그들이 무어라 증언했는지 내가 이야기를 해주겠다” 혹은 “나는 이 문서를 읽어봤고 당신은 그렇지 않으니, 내가 뭘 찾아냈는지 이야기 해주겠다”고 하는 것도 가능할 테다. 당신의 권위는 당신이 일할 때 세워진다. 같은 일을 아마추어나 블로거가 해도 그와 똑같은 권위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을 공중으로 본다는 것은 이 사실을 아무런 유감없이 받아들임을 뜻한다.
-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경청하고, 어떻게든 그들이 어떻게 요구해야 되는지 모르는 것들을 알려주어야 한다. 웹은 별다른 노력없이도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무얼 하는지 기록한다. 그래서 사용자들의 행동을 측정하기 용이하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찾고 있는 것, 무엇을 클릭하고 무엇을 보게 될지를 곧바로 알 수 있다. 영리한 저널리스트라면 이 ‘생동감 넘치는’ 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까? 방금 말했다시피,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경청함은 물론이고 그들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요구하고 있지 않은 그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 사실 원하는 것과 아직 잘 몰라 원하고 있지 않은 것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 당신이 그들의 요구에 귀기울일수록 그들도 당신이 요구할 때 귀기울일 것이다.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이게 중요하다거나 흥미롭다고 생각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하다.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다. 조회수를 의식한 편집은 다른 의미에서 바보같은 일이다. 이 양자 사이에 있는 사용자들을 고려해야 한다.
- 신뢰를 얻고 싶다면 공평무사를 가장하지 마라. 대신 여러분이 어느 편인가를 밝혀라. 사람들을 공중으로 대한다는 것은 그들 ‘위에서’ 떠다니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관점을 갖고 있지 않으며 공평무사하다는 (학술적인 표현을 써서 미안하지만) 가정된 자아situated self를 상정하지 마라. 당신이 어느 편인지를 사용자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으라. 데이빗 와인버거David Weinberger가 말하듯, “투명성이야말로 새로운 객관성이다.” 공평무사함을 가장하지 않고 자신이 어느 편인지를 밝히면 오히려 신뢰를 얻기가 쉽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비평가로서 그렇게 하고자 한 나의 시도이다)
- 토크빌이 말한 “신문이 조합association을 만들고 조합은 신문을 만든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라. 프랑스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은 1830년대에 미국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토크빌은 자신의 저서에 “신문은 조합을 만들고 조합은 신문을 만든다”고 썼다. 내게는, 사람들이 공동의 관심사를 갖고 있으며 그에 대하여 토론하고 싶어한다면 언제나 명석한 저널리스트에겐 기회가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것이라면, 비슷한 관심사, 고민, 취향을 가진 이들이 서로 만나고 정보를 공유하며 그 결과를 발표하는 데에 드는 비용이리라. 넷은 점차로 이러한 일을 일상적으로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 의학으로 고치기 어려운 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넷을 통해 자신들의 증상을 논의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조합을 만든 셈이다. 명석한 저널리스트라면 여기에 주목하고 이것이 기사감이라는 걸 깨달을 것이다. 온라인에서 유용해지고 싶은가? 그럼 이전까지 원자화되어 있던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집단을 찾아 서로 연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라.
나의 결론은 이렇다: ‘지식을 갖고 참여하는 공중an informed and engaged public’의 이상을 현실화하려는 투쟁은 계속된다. 기술과 시장이 변하면서 그 투쟁에서 새로운 것들이 가능하게 된다. 저널리즘 또한 그 발전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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