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생도, 그대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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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육사 생도 퇴학 사건에 대해 한겨레 토요판에 기고한 글입니다. 육사 측에서는 이 글에 거의 공감을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한 육사 관계자가 법원 판결에 대해 “원래 그 판사가 좀 삐딱한 사람이라더라”라고 말할 때에는 정신이 좀 아뜩했습니다). 반면에 또 다른 사관학교 출신의 군 관계자께서는 큰 공감을 표시해주셨구요. 군 내에서도 인식의 차이가 무척 크다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저는 이런 사안이 있을 때마다 기자 자신의 의견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에서는 기자 개인의 의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크게 경계합니다. 이건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언로’라는 것이 그리 다양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그런 방식이 옳았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죠. 단지 사실의 나열을 확인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창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상 사실을 어떻게 선별하고 나열하는지에도 작자의 시각이 은연 중에 매우 크게 반영이 됩니다. ‘민족정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는 입맛에 맞는 사실만 선별해 맥락을 마음대로 요리하고 있는 우리나라 언론들을 보세요. 때때로 기자들은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런 ‘전문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인용되기도 (우리나라 언론에 말고) 했었고요). 이런 현실에서 기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을 것을 요구하면 오히려 그게 위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론 부분을 정리하다 보니 결국 제가 국방 분야를 다루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는 군의 ‘철의 장막’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고, 군은 변화하는 사회가 군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제가 이 바닥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지난 2월27일 서울 노원구 화랑로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제69기 생도 졸업식이 열리고 있다. 2012년 11월 당시 육사 4학년에 재학중이던 ㄱ씨는 흡연과 음주, 혼인을 금지하는 육사의 ‘3금 제도’를 어겼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당했다. 뉴시스

[토요판] 뉴스분석 왜? 
<1> 사관학교, 섹스, 퇴학

▶ 최근 육군사관학교의 생도 퇴학 처분에 대해 법원이 취소 판결을 내려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문제의 생도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동침을 했고 이를 ‘양심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고 현역 입영을 통보받은 상태였습니다. 상당수 여론은 법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내밀한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까지 구속하는 교육으로 과연 육사가 21세기 민주사회의 리더를 키워낼 수 있을까요.

2012년 11월19일 오후 3시께, 한 민간인이 육군사관학교 생도대로 제보 전화를 걸어왔다. 생도대는 육사생도의 체육 및 훈육, 군사훈련 등을 담당하는 기구다. 제보의 내용은 육사생도 ㄱ씨(23)가 여자친구와 주말마다 육사 바깥에 있는 원룸을 드나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6일, ㄱ씨는 육사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당시 ㄱ씨는 4학년 2학기에 재학중이었고 3개월 뒤에는 육군 소위로 임관할 예정이었다. 훈육관이 생도의 진술을 받아 생도대 훈육위원회에 소견서를 제출하고, 훈육위원회가 다시 육사 자문기관인 교육운영위원회에 처분을 건의한 다음, 교육운영위가 심의의결한 내용을 바탕으로 육사교장이 퇴학 처분을 내리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딱 일주일이었다.

박남수 전 육사 교장의 ‘시범케이스’

지난 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ㄱ씨가 육사를 상대로 낸 퇴학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육사는) 퇴학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육사는 ㄱ씨에 대한 퇴학 처분 사유로 그가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갖고 이를 보고하지 않아 육사의 ‘3금 제도’를 어겼다는 사실을 내세웠는데, 재판부는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ㄱ씨가 약 4년간의 사관학교 생활을 대체로 성실히 해왔고, 졸업 및 임관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퇴학시킬 경우 현역으로 입영해야 한다는 점 등도 고려했다.

육사는 이에 대해 항소할 뜻을 이미 밝힌 상태이다. 육사가 항소를 계속할 경우, ㄱ씨는 최종적으로 승소하더라도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뒤가 된다. 임관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군 생활을 계속하기란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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